판타스틱 엔딩 1

by 킥더드림

1
『민구야, 생일 축하해! 못 본지 오래 됐는데 우리 언제 한 번 보자.』
3월 1일 민구 생일날, 톡으로 짤막한 생일 축하 메시지가 왔다. 등록이 안되어있는 아이디로부터 온 톡이다. 오랜 시간 연락하지 않은 전화번호도 모르는 누군가가 문득 생각이 나서 뜬금없이 생일축하 메시지를 보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럴만한 사람은 없다. 축하해 줄 만한 몇 안 되는 사람은 이미 다 메시지를 보내왔다. 스팸이나 피싱 같은 메시지임에 분명하다.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작년 생일에도 이런 비슷한 톡을 받았던 것 같다. 민구는 메시지를 차단하려다 생각을 바꿔 그냥 삭제만 했다. 공휴일이면서 생일인 날, 회사에 나온 것만으로도 짜증나는데 이런 이상한 메시지까지 받으니 기분이 별로이다. 요즘 따라 유난히 스팸 메시지를 많이 받는다. 한 눈에 봐도 수상해 보이는 도박, 주식, 대출 같은 홍보 메시지는 스팸으로 등록해도 종종 온다. 며칠 전에는 서울지검 사이버 수사대라고 하면서 전화가 왔다.
“서울지검 사이버 수사대입니다. 이민구씨 전화 맞죠?”
“네 맞는데요. 어떤 일로?”
“혹시 통영에 사는 이철호씨라고 아시나요?”
“아니요. 처음 들어봤는데요. 누구길래 서울지검에서 저한테 물어 보는 거죠?”
“뚜 뚜 뚜” 모른다고 하니 상대가 전화를 끊었다.
전화가 끊기기 전까지 민구는 정말 서울지검에서 온 전화인 줄 알았다.
‘보이스피싱을 저렇게 허술하게 해도 걸려드는 사람이 있나 보네. 분명 통영 어딘가에 이철호라는 사람이 있을 거고, 누군가는 그 사람을 알 수도 있을 테니..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무작위로 전화해서 걸려 드는 사람이 있나? 민구라는 이름이 좀 예스러워서 통영에 사는 이철호라는 사람을 알 수도 있다고 생각한 걸까?’
최근 안 좋은 일이 많은 민구는 별거 아닌 일에도 짜증이 나고 예민해진다. 어떻게 된 게 삶에 좋은 소식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민구는 오후까지 회사에 남아있고 싶지 않아 새벽같이 사무실에 나왔다. 일찍부터 부지런을 떠는 바람에 바랬던 대로 해야 할 모든 업무를 오전에 마무리했다. 민구 말고도 출근해서 일하는 사람이 몇 명 더 있다. 그들을 뒤로 하고 먼저 퇴근하니 그나마 휴일에 일한 우울함이 위로가 된다. 회사를 나서면서 ‘혹시 실수한 건 없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일 일찍 출근해 팀장 보고 전에 다시 한 번 검토하기로 하고 그냥 나왔다. 민구는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회사 근처 대형 쇼핑몰에 왔다. 쇼핑몰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휴일이어서 그런지 혼자인 사람은 잘 눈에 띄지 않고 대부분 가족, 연인, 친구와 함께 다니고 있다. 모두들 표정이 밝다.
‘표정만큼이나 저 사람들의 실제 삶도 밝을까? 겉으로 다정해 보이는 저 커플은 얼마나 서로에 대한 확신이 있을까? 둘 중 한 명은 바람 피우고 있을 수도 있다. 엄청 친해 보이는 저 친구들 중 몇몇은 언젠가 소원한 관계로 변할 것이다. 유모차를 함께 끌고 가는 부부는 어젯밤에 서로를 죽일 듯이 싸웠을 수도 있다.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가는 저 청년은 카드 빚에 허덕일 수 있다. 보이는 것이 전부 실재하는 건 아니다. 이 쇼핑몰 안은 사람의 뇌 신경망에 침투해 판타지를 불러 일으키는 무색무취의 가스로 가득 차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의 표정이 저렇게 한결같을 수 없다.’
민구는 수많은 환한 미소 속에 섞여 홀로 표정 없는 얼굴로 의류 매장이 늘어서 있는 긴 쇼핑몰 길을 걷고 있다. 여기저기 둘러보다 한 SPA 브랜드 매장에 들어왔다. 남성 의류 코너 한 쪽에 걸려있는 다양한 디자인의 셔츠를 하나하나 꼼꼼하게 본다. 지금 가지고 있는 셔츠는 대부분 패턴이 있어 단색 셔츠에 관심이 간다. 입고 있는 셔츠도 검은색 깅엄체크 패턴이다. 흰색과 옅은 파란색 셔츠를 골라 피팅룸에서 입어 본다. 둘 다 민구 몸에 핏이 딱 맞고 색도 잘 어울린다. 매장에 진열 되어있는 블레이저 몇 벌을 위에 걸쳐 본다. 기본 색상 셔츠이다 보니 어떠한 디자인과도 매치가 잘 된다. 가격 대비 원단도 꽤 좋아 보인다. 비싼 브랜드가 아니어서 부담 없이 편하게 입을 수 있다는 생각에 셔츠 두 개 다 사기로 결정했다. 계산을 하고 매장을 나오는데 여성 의류 코너에 눈길이 간다. 매혹적인 표정을 지으며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는 세 명의 여성 모델 사진이 한 쪽 벽면 전체를 메우고 있다. 대중의 인지도가 어느 정도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다 아는 모델들은 아니다. 세 명 중 가장 유명한 모델인 반수겸은 민구의 친구이다. K대학교 컴퓨터공학과 동기이고 대학원도 같이 다녔다. 민구는 매장 밖으로 나가면서 사진 속에서 누군가를 유혹하는 듯한 눈빛을 쏘는 친구를 쳐다본다.
수겸과 마지막으로 연락한지 한 8년 정도 되었다. 지금은 연락하고 지내지 않지만 대학 다닐 때는 꽤 친했다. 수업도 같이 듣고 친구들과 어울려 함께 술도 자주 먹었다. 수겸은 남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공대생이었다. 모델을 할 만큼 큰 키에 얼굴도 매력적이고 예뻐서 눈에 확 띄는 외모였다. 같은 과에서 수겸을 좋아하지 않는 남자를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물론 인기는 같은 과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민구도 수겸을 보고 매우 매력적이라고 느꼈지만, 친구 이상으로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아마 호감이 순간적으로 잠시 스치고 지나간 정도는 있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겸은 뭐든지 잘하고 열심히 하는 친구였다. 공부도 열심히, 놀기도 열심히, 연애도 열심히 했다. 민구에게 이런 수겸은 판타지 영화 속에 나올 법한 인물처럼 보였고, 평범한 자신이 다가 갈 수 없는 상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 모델이 된 수겸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볼 때면 전혀 환상 속 인물 같다는 생각이 안 든다. 모델이 되어 실제 환상 속으로 들어가버리니, 수겸이 갖고 있던 환상적 이미지가 오히려 사라졌다. 수겸은 민구보다 대학원을 먼저 졸업했고 그 이후로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두 세 번 정도 연락을 주고받은 것이 전부다. 학교를 졸업하고 1년 정도 지났을 무렵 수겸한테서 갑자기 연락이 왔다. 수겸은 뜬금없이 민구에게 소개팅 할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수겸은 자신이 직접 아는 사람은 아니고 한 다리 건너 아는 사이라고 했다. 그렇게 소개팅을 했고 민구는 그때 소개받은 사람과 결혼했다. 결혼 전에 수겸에게 연락도 하고 청첩장도 보냈다. 수겸은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꼭 가겠노라고 했지만 결혼식에 오지 않았다. 그게 마지막 연락이었다. 마지막으로 연락이 닿았을 때만해도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어떻게 된 건지 지금은 꽤 유명한 모델이 되었다.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지만, 너무 오래 연락을 하지 않아서 불쑥 전화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수겸이가 소개해준 지금의 아내와는 이혼을 앞두고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낯선 행성으로의 추락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