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스틱 엔딩 4

by 킥더드림

4
“너 기억나?” 수겸이 물었다.
“음..” 민구가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생각한다. “그런 일이 있었나?”
“넌 기억도 못하는 구나! 나 그때 너무 섭섭했어. 도서관 같이 가주는 게 그렇게 힘든가?”
“내가 두 번이나 거절했다는 거지?”
“응. 그것도 2주 연속으로.”
“네가 도서관 같이 가자고 한 거까지는 기억이 안 나고. 같은 수업 마치고 나오면서 우연히 몇 번 만났던 거는 기억나.”
“도서관 가자고 한 거는 전혀 기억이 안 나?”
“응, 그거는 기억이 안 나. 비 오는 날 만나서 너한테 우산 준거는 기억나. 그때가 독서 모임이 있었구나.”
“맞아. 독서모임. 그래도 기억을 전혀 못하는 건 아니네.”
“그리고 그 다음주에 또 같은 시간에 만나서 네가 우산 돌려줬던 것 같은데, 맞지?”
“응, 맞아.”
“완전 잊고 있었던 일인데 너랑 얘기하다 보니 기억이 조금씩 나네. 그럼 우산 돌려줄 때도 도서관 같이 가자고 했어?”
“아니.”
“그때는 왜 도서관 같이 가자고 안 했어?”
“그때는 도서관 가는 길이 아니었어.”
“그럼 어디 가는 거였어?”
“그러게 어디 가는 길이었을까? 너무 오래 돼서 그거까지는 기억이 안나.”
“섭섭했다면 미안해.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네. 도서관에 같이 갈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지.”
“그러니까, 너 너무했어.”
“지금 생각해 보니까 당시에 우리학교에서 제일 잘 나가는 반수겸이 가자고 하는 거였는데. 미래의 잘 나가는 모델이 될 친구가 가자고 한 걸 내가 거절한 거였네. 다른 남자 애들은 같이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거였을 텐데.”
“야, 이민구! 너 지금 나 놀리는 거야 뭐야?”
“놀리는 거 아니야. 진짜로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래.”
“넌 학교 다닐 때 다른 공대 남자애들하고 좀 달랐어. 남자 애들은 보통 게임 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너는 영화랑 책 좋아했었잖아.”
“각자 취향이 있는 거지.”
“너 때문에 나도 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거 알아?”
“아니. 전혀 몰랐는데. 그랬어?”
“응 너랑 우연히 영화 얘기를 했는데, 네가 나한테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그녀에게’를 강력하게 추천해줬었어.”
“그랬었나? 전혀 기억이 안 나네. ‘그녀에게’ 내가 엄청 좋아하는 영화야. 거기에 나오는 음악도 좋아하고.”
“맞아. ‘쿠쿠루쿠쿠 팔로마’라는 노래. 그때도 네가 너무 좋다고 말했어. 네가 이 영화 좋다고 열정적으로 설명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 너 덕분에 ‘그녀에게’를 보게 됐지.”
“그랬구나. 너랑 그런 얘기한 게 전혀 기억이 안나. 그때 ‘그녀에게’ 재미있게 봤어?”
“그럼 완전 재미있게 봤지. 처음 봤을 때 이런 영화도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어. 좋은데 왜 좋은지를 모르겠더라고. 그래서 여러 번 봤어. 다시 봐도 좋았어.”
“또 봐도 재미있지. 좋은 영화는 다시 볼 때 새로운 장면이 보이잖아.”
“맞아. 그리고 너 혹시 ‘쿠쿠루쿠쿠 팔로마’가 다른 어떤 영화에 삽입곡으로 쓰였는지 알아?”
“아마 왕가위 ‘해피 투게더’에도 나오지?”
“오! 역시. 너랑은 대화가 되네.”
“영화 좋아하면 남자친구랑 영화 자주 보면 되겠네.”
“가끔 보기는 하는데 남자친구는 영화를 나만큼 좋아하지 않고, 보는 취향도 좀 달라.” 수겸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네가 좋아하는 영화 같이 보자고 해 봐.”
“그래 봤지. 영화 보고 영화에 대해서 같이 얘기도 하고 싶은데 그런 게 전혀 안 돼. 그냥 재미없어하더라고.”
“그래서 아까 남자친구랑 얘기하면 재미없다고 했구나.”
“응, 맞아.”
“또 반복해서 얘기하지만 처음에는 재미있더라도 언젠가는 재미없어 지는 순간이 온다니까. 그건 연애도 결혼도 마찬가지야.”
“그건 네 말이 맞아. 그런데 재미도 재미지만, 내가 진짜 남자친구를 사랑하고 있는..” 수겸이 손목 시계를 보며 말하다 화제를 바꾼다. “민구야, 우리 지금 여기서 4시간 동안이나 얘기했어. 시간가는 줄도 몰랐네.”
“진짜? 4시간이나 됐다고? 시간 엄청 빨리 갔다.”
수겸이 서두르면서 말한다. “그러게 얘기하다 보니까 시간이 후딱 갔다. 나 남자친구랑 저녁 약속 있어서 가봐야 돼. 지금 일어나지 않으면 늦을 것 같아.”
수겸과 민구는 카페에서 나왔다.
“민구야, 너 뭐 타고 왔어?’
“나는 지하철 타고 왔어.”
“그렇구나. 나는 차를 가지고 와서 주차장으로 가야 해. 민구야 오랜만에 봐서 반가웠고 얘기도 너무 재미있었어. 그럼 또 연락하고 다음에 보자.”
“그래 나도 반가웠어. 다음에 보자. 수겸아.”
수겸과 민구는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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