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logue
1년 후.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 진호가 수능을 마치고 시험장을 나왔다. 고등학교 3학년 때보다 시험을 잘 본 것 같다. 그래도 작년까지 다녔던 학교를 다시 들어갈 수는 없을 것 같다. 혹시 그 학교를 갈 수 있는 점수가 나오더라도 그 학교에는 가지 않을 생각이다. 결과와 상관 없이 기분이 뿌듯하다. 시험을 본 학교 정문에는 시험을 보고 나오는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들로 북새통이다. 어머니는 오늘 바빠서 못 오신다고 했다. 진호는 버스를 타기 위해 인파를 뚫고 걸어간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진호를 부른다.
“진호야!”
진호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무심코 뒤돌았다. 현지가 꽃다발을 들고 활짝 웃으며 서있다. 진호는 멍한 표정을 지으며 현지를 바라본다. 현지가 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진호의 입가에 조금씩 미소가 번진다.
“현지야, 어떻게 여기..”
“어떻게는 너 수능 보는 날이니까 왔지. 수능 다시 본 거 축하해!”
현지가 진호에게 꽃다발을 건넸고 진호는 어색한 자세로 꽃다발을 받아 안는다.
“고마워.”
현지와는 1년 만에 만나는 거다.
현지가 진호에게 팔짱을 끼며 말한다. “시험도 끝났는데 우리 즉석떡볶이 먹으러 갈까? 작년에 못 먹었잖아.”
“즉석떡볶이 완전 좋지. 우리 튀김만두 추가로 넣어서 먹자.”
“하하. 그래 만두 더 넣어 먹자. 즉석떡볶이의 꽃은 당연히 튀김만두지. 하하. 그나저나 어머니는 오늘 안 오셨어?”
“응. 엄마 바빠. 일도 바쁘고 일 끝나면 남자친구 만난다고 하더라고. 얼마 전에 남자친구 생겼어.”
“진짜? 잘 됐다. 그런데 엄청 신기하다.”
“뭐가 신기해?”
“얼마 전에 우리 아빠도 여자친구 생겼거든.”
“와! 잘 됐네. 진짜 잘 됐다.”
현지와 진호가 웃으면서 걸어간다. 맑은 하늘에 작고 하얀 불빛이 반짝거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현지와 진호는 반짝거리는 불빛을 보지 못했다. 이때 진호의 스마트폰에 톡이 오는 알림이 울린다.
“뭐지? 이상하네.” 톡을 확인한 진호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왜 그래?” 현지가 물었다.
“모르는 사람한테 톡이 왔는데, 아무 내용도 없고 동그란 얼굴에 활짝 웃는 이모티콘 있잖아. 그것만 왔어. 누가 잘 못 보냈나 봐.”
“정말 이상하네. 문자도 아니고 톡을 어떻게 모르는 사람에게 잘못 보낼 수가 있는 거지?”
“그러게 말이야.”
진호는 톡을 삭제하고 발신자를 차단했다. 갑자기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현지와 진호는 하늘을 올려다 본다.
“뭐야? 하늘이 맑은데 어떻게 눈이 내릴 수 있지?” 진호가 말했다.
“그러니까. 날이 이렇게 맑은데,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래? 이럴 수도 있는 건가?”
현지와 진호는 눈이 내리는 맑은 하늘을 바라본다.
“에이, 모르겠다. 눈이 오든 말든 배고픈데 우리 얼른 즉석떡볶이나 먹으러 가자.”
“그런데 현지야, 나 같이 나쁜 사람을 다시 만나기로 한 거야?”
현지가 고개를 끄덕인다. “응. 1년 동안 기다리느라 힘들었어. 그리고 나도 그렇게 좋은 사람만은 아니야. 진호야, 우리 덜 나쁜 사람이 되도록.. 아니, 우리 나쁜 사람이 되지 않게 최선을 다하면서 살자.”
“그럼 당연히 그래야지. 그런데 나쁜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진호가 현지에게 물었다.
“나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음.. 생각을 멈추지 말아야지. 그리고 자기 자신을 이상화하지 말아야만 해.”
“맞는 말이야. 생각을 멈추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해. 생각을 해야 해! 계속 생각해야만 해! 생각을 해야 한다고..” 진호가 반복해서 읊조렸다.
현지와 진호는 팔짱을 끼고 빠르게 걸어간다. 두 사람 위로 더 많은 눈이 내린다. 맑은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바로 녹아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