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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월 Jan 10. 2024

부표

부표에 관한 고찰

 전날 과식한 음식물을 밀어내기라도 하듯, 위장에 음식을 가득 채운 오후에 나는 사유한다. 떠오른 심상을 살펴보니 부표라는 글자가 눈에 띈다. 그것에 삶을 빗대어 몇 줄 문장을 적어내볼까.


 나는 정말이지 삶이 만들어 내는 역동적인 파도에 속수무책이다. 끝도 없이 밀려오는 파도에 떠올랐다가, 내려가기를 반복한다. 차라리 떠밀려 해안가에 닿으면 불가사리처럼 바싹 말라 죽기밖에 더 하겠냐마는, 내 삶은 부표처럼 고정되어 파도를 맞아야만 한다. 바닷물의 소금기는 나를 서서히 녹여간다. 내 몸과 마음은 스티로폼처럼 찢겨 떨어져 나가고 철처럼 부식되어 녹물을 뱉듯 한다.

 그러나 얼마나 다행인가! 파도 위에 이르렀을 때야 비로소 시야가 넓어지는 것은.  파고의 아래에서는 푸르다 못해 검은 심연만 보일 뿐, 무한히 닥쳐오는 파도를 볼 수는 없다. 만약 그것을 본다면 나는 참으로 까무러치고야 말 것이다. 나는 대체 얼마나 많은 파고를 넘어야만 하는 것인가! 얼마나 더 많은 심연을 들여다봐야만 하는 것인가! 그럼에도 이 삶이 지속되는 이유는, 파도 위에서 잠깐 맛보는 환희가, 앞으로 밀려올 파도를 악재가 아닌 희망으로써 맞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삶이란 것이 견디어 낼 만하다고, 살아갈 만하다고.


 어쩌면 우리 모두가 부표와 같다는 생각을 하여본다. 나란히 떠있는 저 부표가 높이 떠있을 때면, 나의 낮은 위치가 참으로 초라해 보이고 서러워진다. 반대로 내가 남들보다 높이 떠있을 때면 우월감이란 환상이 나를 더욱 높은 곳으로 데려다준다. 그래봤자 파고만큼의 차이인데. 새의 시선으로 바라본 우리는 하나의 띠, 선일 뿐이다. 우린 서로를 사슬로 묶은 채 함께 표류한다. 그럼에도 서로의 차이를 비교하고, 헐뜯고, 미워한다. 부표는 참으로 외로우면서 포박된 존재들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위해 띄워진 존재들이다. 지나가는 배의 길잡이가 되기 위해, 너무 멀리 헤엄쳐 온 아이에게 위험을 알리기 위해, 또는 내 옆의 부표를 꽉 잡아두기 위해. 몸에 묶인 쇠사슬이 없을지라도, 우리는 무형의 결박끈으로 강하게 묶여있다. 그것은 의무감, 책임감, 우정, 가족애, 동료애라는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심연을 깊이 들여다본 나는 이제 고개를 들어 다시 정면을 바라볼까 한다. 오르막에서는 청명한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 어쩌면 하늘을 응시하기에 오르막에 이르는 걸지도 모른다. 차라리 망망대해가 얼어붙는 한파가 오지는 않을까 기대하며 나는 오늘도 부동항에서 위아래로 진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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