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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승준 Jul 15. 2019

같지만 다르다.

'장애인식 개선'이라는 이름을 건 캠페인이나 카피 문구를 보면 어떤 곳에서는 '그들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라고 말하고 또 다른 곳에서는 '다름을 존중해 주세요.'라고 붙여놓는다.

같은 선에서 경쟁하고 싶다고도 하고 적절한 배려가 함께 사는 아름다운 사회라고도 말하는 이들을 보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내게 무엇이 옳은 것인지 물을 때가 많다.

의외로 정답은 간단하다.

같은 부분도 있고 다른 부분도 있다. 당신과 나처럼 말이다.

그런데 다른 부분을 같다고 하면 우리는 다르다고 하는 것이고 같은 부분을 다르다고 하면 우리도 같다고 하는 것이다.

보통의 비장애인들은 스스로가 가진 장애 없는 신체의 상태에 대해 특별한 우월감이나 자부심 같은 것을 느끼면서 살지 않는다. 그와 마찬가지로 장애인들도 스스로가 가진 신체의 부족한 상태에 대해 항상 고민하고 살아가지는 않는다.

그런 면에서 두 집단의 일상을 대하는 태도는 유의미한 차이 없는 같음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아무 음식이나 잘 먹는 다수의 사람들이나 각자의 신념이나 사정에 의해 채식만을 먹는 사람들이 각자의 식사법에 대해 우월감이나 열등의식 느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만약 뭐든 잘 먹는 사람들이 채식만을 먹는 사람의 식사법을 부족함이나 이상함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평가한다면 그것이 바로 인식의 왜곡이고 삐뚤어진 시선인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식사를 하고 있을 뿐이다.'라는 구호가 생겨날 것이다. 그렇지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하나도 다르지 않은 것은 아니어서 때때로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은 겪지 않는 어려움이나 불편함을 경험하게 된다.

나 같은 경우 낯선 길에서 길을 잃거나 갑작스러운 안내문이 일반 프린터로 전해질 때가 그런 때이겠다. 

채식주의를 하는 사람들도 동물성 단백질의 섭취를 하지 않는 이유로 때때로 불편함을 느끼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것이 다름이고 그때 필요한 것이 적절하고 적당한 배려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고기 먹는 사람들이 채식하는 사람들에게 영양보충의 이유로 육식을 강요하거나 그들의 방법대로 가르치려 한다면 그것은 도움이나 배려가 아닌 폭력이 되는 것이다.

그럴 때 사람들은 '다름을 존중해 주세요.'라는 모터를 만들 것이다.

사람이라는 같은 종으로 구별되는 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같음을 공유한다.

그런데 작은 다름 들을 근거로 많은 사람들은 우열을 논하고 고하를 정한다.

피부색이 그랬고, 성별이 그러했고, 신체의 다름이나 생각의 차이마저도 그런 기준이 되고는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각자의 식사법처럼 약간의 다름일 뿐 절대로 우열을 논할 근거가 될 수 없다.

다수의 문화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의 구조에서 소수의 식사법을 가진 사람들은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그럴 때 우리는 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다수의 힘으로 소수의 불편함을 함께 풀어내야 한다.

그것이 건강한 복지이고 함께 있는 의미이다.

우리는 모두 다르기 때문에 언제 어느 순간 각자의 다름을 근거로 소수집단에 속하게 될지 모른다.

어떤 나라에서는 나의 식사법이 불편함으로 동작할 수 있고 어느 집단에서 인가는 나의 사상과 생각이 인정받기 힘든 독특함으로 여겨질 수 있다.

각자가 완벽한 주체적 독립체라면 그것은 무언가의 다름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그 다름으로 인한 소수가 될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다름을 인정하고 약간의 다름으로 큰 같음을 왜곡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는 특별히 다르지 않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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