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는 데 2초, 되묻는 데 20분
얼마 전 우연히 "RoQ?"라는 표현을 알게 됐습니다.
"RoQ?"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땐 무슨 암호인가 싶었습니다. 알고 보니 'Reason of Question'의 줄임말이더라고요. 그 회사에선(어딘지 다시 찾을 수가 없네요...) 질문의 의도가 불명확할 때 Slack에서 이 표현을 쓴다고 합니다. '이걸 왜 물어보신 거죠?'를 공손하게, 짧고 간단하게 되묻는 방식이죠. 처음엔 재치 있는 커뮤니케이션 습관이라 생각했는데, 곱씹다 보니 이 네 글자가 꽤 많은 걸 말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우리도 그런 경험 많지 않나요? 누가 갑자기 “이거 가능한가요?”라고 대뜸 물으면, 머릿속이 잠깐 멈춥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맥락으로, 왜 궁금한 건지 알 수 없으니까요. 답변을 하려다 말고, 다시 질문을 하게 되죠. “혹시 무슨 목적인지, 언제까지 돼야 되는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때부터 대화는 삐걱대고 길어지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질문에 맥락을 생략하는 이유는 두 가지쯤 되는 것 같아요. 첫째, 시간이 없어서. 둘째,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서. 요점만 말하는 게 더 효율적일 거라 생각하지만, 실제론 그 반대가 되기 쉽습니다. 짧게 묻고 길게 되묻는 일, 생각보다 자주 일어납니다.
질문에 맥락을 담는 건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닙니다. 상대방에게 "이해해 줘"가 아니라 "함께 생각해 줘"라고 건네는 거예요. 맥락 있는 질문은 더 좋은 답을 끌어낼 뿐 아니라, 상대를 단순한 응답자가 아닌 대화의 파트너로 만듭니다. 결국엔 그게 팀의 문화가 되고, 일하는 방식이 됩니다.
그렇다고 매번 말 잘하기가 정말 쉬운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저도 머릿속 생각이 정리가 안 될 때가 많아요. 종종 시간에 쫓기면 맥락은 없고 막무가내 본론으로 시작 되는 Slack 메시지를 입력 창에 줄줄줄 쓰고 있더군요. 그래서 요즘은 질문하기 전에 세 가지만 떠올려 보려고 합니다.
지금 어떤 상황인지
내가 정확히 뭘 알고 싶은지
기대하는 답이 있다면 그 방향까지
이걸 나침반처럼 삼으면 말이 훨씬 덜 돌아가더라고요. 물론 이걸 꼭 지켜야 한다는 건 아니에요. 그냥, 던지기 전에 한 번쯤 머릿속에서 되새겨보는 거죠.
그리고 질문도 상황 따라 달라져야 한다는 걸 요즘 더 많이 느낍니다. 회의 중 핵심을 짚을 때는 구조적으로 묻는 게 좋고, 동료와 1:1로 이야기할 땐 여백을 남기는 게 더 낫더라고요.
예를 들어 컨설팅 쪽에선 'SCQA'라는 틀을 씁니다. 상황(Situation), 복잡성(Complication), 질문(Question), 답변(Answer). 이 흐름대로 말을 풀면 듣는 사람도 맥락을 놓치지 않게 되죠. 아주 기본적인 5W1H도 여전히 유용합니다. '무엇', '왜', '어떻게'만 정확히 해도 대화가 훨씬 수월해지니까요. 코칭 상황에선 'GROW' 같은 구조도 있어요. 목표(Goal), 현실(Reality), 선택지(Options), 앞으로의 행동(Will). 이런 건 특히 상대방이 스스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돕는 데 좋습니다.
그리고 저는 늘 ChatGPT의 도움을 받습니다. 일단 생각나는 대로 써놓고, "이걸 맥락 있게 정리해 줘"라고 하면 깔끔하게 다듬어줍니다. 문장을 잘 구성하고 쓰는 것은 이제 AI에게 맡기는 것이 효율적인 것 같습니다. 인간은 더 본질에 집중하고요.
결국 좋은 질문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에서 시작되는 것 같아요. 나부터 '이 질문 왜 하지?'를 한 번 생각해 보는 거. 그게 RoQ를 줄이는 첫걸음일지 모릅니다.
질문 하나로 일이 쉽게 풀릴 수도 있고, 관계가 부드러워질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함께 성장하게 됩니다. 반대로 질문 하나로 오해가 시작될 수도 있죠. 그래서 오늘도 묻기 전에 잠깐 멈춰봅니다
이 질문, 어디서 왔지? 어디로 가고 싶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