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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Jun 23. 2022

우리 집 보물, 캡슐 커피 머신

커피에 관심이 많던 남편은 신혼 초에 주말마다 드립 커피를 내렸다. 커피 원두를 갈아 거름종이에 넣고 주둥이가 길고 뾰족한 주전자로 끓는 물을 살살 부어 정성스레 커피를 내리는 과정이 내가 보기엔 상당히 번거로웠지만, 그는 즐거워 보였다.  


그다음엔 에스프레소 머신을 구매하겠다고 했다. 그는 눈을 반짝이며 "카페에서 먹는 커피를 집에서 먹으면 얼마나 맛있고 좋겠어?"라고 말하며 나를 설득시켰다.

(그는 새로운 물건을 사기 전에 눈이 반짝반짝 빛나곤 한다.)

번잡스러운 걸 싫어하는 나는 캡슐 커피가 낫지 않겠냐고 살짝 물어보았지만 커피에 대한 열정으로 한창 불타고 있던 그를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그래. 그럼 맛있게 내려줘."라고 하는 수밖에.

남편이 2012년 차려준 브런치 (남편이 직접 구운 프레즐)


그는 커피 원두를 갈아서 넣고 꾹 누르고 기계에 끼워서 커피를 내렸다.

"이 크레마를 봐! 어때? 진짜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 같지?"

"응, 그렇네. 진짜 맛있네."

이미지 출처: 드롱기(Delonghi) 홈페이지


에스프레소 머신을 한동안 (남편이) 잘 썼으나 남편도 내심 귀찮았던지 캡슐 커피를 사자고 했다. 보통 새로운 물건을 사자고 하는 쪽은 남편이고 반대하는 쪽은 나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캡슐 커피라면 나도 편하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에스프레소 머신은 다른 커피 애호가에게 판매하고 네스프레소 캡슐 커피 머신을 구매하였다.



캡슐 커피 머신이 편리하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막상 구매를 하고 보니 커피의 맛과 향까지 우수하여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게다가 함께 구매한 에어로치노(우유 거품기)로 우유를 데우면 따뜻한 카페라떼까지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맛있는 커피를 집에서 마실 수 있다는 이점은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실시하던 시기에 빛을 발했다. 남편과 나는 아침과 점심에 커피를 한 잔씩 내려 마셨다. 캡슐은 불티나게 소진되었다. 캡슐 구매 비용이 어마무시하게 나갔지만 그래도 카페에서 사 마시는 것보다는 훨씬 저렴하니 이 비용을 아까워하지 않기로 했다.



남편은 작년 글램핑을 갈 때도 캡슐 커피 머신을 챙겨갔다.

"캠핑 가서 맛있는 커피가 고플 텐데, 딱 내려 마시면 얼마나 좋겠어?"

"너무 짐 되지 않겠어?"

"우리 차는 SUV니 다 실을 수 있지."

남편 말대로 캠핑장에서 마시는 커피는 기가 막혔다. 번거롭게 챙겨 올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올해 동생네 가족과 글램핑을 가게 되었을 때, 남편은  캡슐 커피 머신을 챙겼다. 작년의 좋은 기억이 있어서 이번엔 나도 남편을 막지 않았다.

"우리 커피 머신도 싸왔다? 근데 너랑 제부는 커피 안 마시지?"

"어, 그래? 난 안 마시는데 민이 아빠는 요새 커피 마셔. 민이 아빠! 언니네가 커피 머신 싸왔대."

"오! 이따가 한 잔 부탁드립니다."

챙겨 온 커피 머신을 주섬주섬 꺼내어 조립하고 코드를 꽂으려는데 뭔가 허전하다.

"잠깐. 자기야, 캡슐이 없다?"

"뭐라고? 설마!"

그렇다. 커피 머신만 챙겨 오고 정작 중요한 커피 캡슐은 챙겨 오지 않은 것이다.

"이럴 수가! 충격....."

커피를 대접하려던 우리는 제부에게 카누를 얻어먹어야 하는 굴욕을 당했다. 크흑!

(남편은 캡슐 커피를 사려고 대부도 편의점과 하나로마트를 샅샅이 뒤졌지만 구할 수 없었다는 슬픈 사연.)



캡슐 커피 머신을 어느새 10년 가까이 사용했다. 초창기엔 조용한 소리로 우아하게 에스프레소를 내리던 녀석이 이제는 중장비 소리처럼 커다란 소리를 내며 에스프레소를 뽑아낸다. 오랜 기간 동안 우리와 함께 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우리 부부가 산 가전제품 중에 가장 잘 써먹고 있으니, 커피 캡슐 머신은 우리 집 보물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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