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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Nov 04. 2021

사춘기였나 봐요

"사춘기가 뭐예요?"

작년엔가 디즈니 만화영화 인사이드아웃을 보고 난 후 아이들이 물었다.

"사춘기는... 뭐라고 해야 되지? 어린이가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괜히 엄마 아빠 말 듣기 싫고 화가 나고 뭐 그런 시기야."

"왜 괜히 화가 나요?"

"글쎄, 왜 화가 나는지도 모르게 화가 나나 봐."




10살 큰 아이는 요새 자기가 10대가 됐다며 자신감 뿜뿜인 상태다.

원체 작았던 아이가 제법 커서 이제 또래들 키만큼은 되는 것 같아 "키 많이 컸다!" 해주면 "저 많이 컸죠?" 하고,

학교와 학원 스케줄을 시간 맞춰 스스로 잘 다니는 것에도 "저 다 컸죠?" 하며 자부심을 느낀다.


큰 아이와 작은 아이는 각자 스케줄이 달라서 학원을 같이 다니지 못 하는데 마침 오늘 학원 시작 시간이 같았고 나도 쉬는 날이라서 아이들을 데려다 주기로 했다. 큰 아이는 5시부터 미술 수업 시작이었고, 작은 아이 역시 5시부터 피아노 수업 시작이었다. 7살 유치원생 작은 아이는 아직 어른이 데리고 다녀야 해서 학원에 같이 가기로 했는데 큰 아이가 동생을 데리고 가겠단다.

"건이야, 그럼 규 피아노학원에 들어가는 거 보고 미술학원에 들어가."

"그냥 엘리베이터에서부터 헤어지면 안 돼요?"

"규는 아직 유치원생이라 학원 앞까지 데려다 줘야 해. 건이 시간 늦을 거 같으면 엄마가 같이 상가로 갈까?"

"아니에요. 제가 데려다 줄게요. 끝날 때도 제가 데리고 올게요."

"끝나는 건 둘이 시간이 달라서 안 돼. 엄마가 규 끝나는 시간에 데리러 갈 테니까 건이는 알아서 와."

"네."


핸드폰 배터리가 얼마 없어서 충전을 하고 집안일을 하며 왔다갔다 하다 보니 큰 아이에게 문자가 와 있다.

엄마, 규 데리러 오지 마요. 

시간을 보니 학원에 들어가기 직전에 보낸 것 같다.

규가 너보다 먼저 끝나서 데리러 갈 테니 건이는 알아서 와.


작은 아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피아노 학원 앞으로 갔다. 작은 아이는 날 보자마자 말한다.

"엄마, 오지 말라고 했잖아. 형아 만나기로 했다구!"

"형아를 어디서 만나? 형은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약속 장소에서 만나기로 했어. 놀이터에서 조금만 놀고 있으면 형 끝날 시간 된다고 했어."

"아니, 너는 아직 유치원생이라 어른이 데리러 오지 않으면 먼저 나갈 수도 없어. 그리고 형 끝날 때까지 40분이나 기다려야 하는데 깜깜해지고 추워서 40분은 혼자 못 놀아."


놀이터에서 좀 놀다가 저녁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서 먼저 집에 왔다. 잠시 후 큰 아이가 화가 나서 전화했다.

"엄마, 규 데리러 오지 말라고 했잖아요. 내가 데리고 간다고 했는데 왜 데리고 갔어?"

"응, 안 그래도 얘길 들었는데 규가 혼자 40분을 어떻게 기다려? 누가 데리러 가야지..."

나는 좋게 설명을 하고 있었는데 큰 아이는 전화를 홱 끊어 버렸다.

아무리 화가 나도 통화 중에 이렇게 전화를 끊는 건 안 된다 싶어 다시 전화를 했더니 전화를 안 받는다.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어요. 문자로 연락해주세요.

후우... 지금 당장 전화 안 받으면 전화를 사용 중지시키겠다고 문자 보내고 싶은 마음을 자제하였다.  


큰 아이는 집에 오자마자 방으로 휙 들어가서 문을 잠가 버렸다.

"엄마랑 잠깐 얘기 좀 할까?"

"싫어. 엄마랑 얘기 안 하고 싶어."

"배 안 고파?"

"배는 고픈데 나가긴 싫어."

"알았다."


맘에는 안 들었지만 아이의 기분이 좀 진정되길 바라며 좀 기다렸다. 작은 아이 저녁을 먼저 챙겨주고 큰 아이 방으로 가보니 그 새 잠갔던 문은 풀어놨다.

"건이야, 잠깐 얘기 좀 할까? 건이가 규를 데리고 오고 싶었는데 못 해서 화가 났어?"

"응, 규가 끝나면 나 기다릴 수 있다고 했단 말야."

"규는 아직 유치원생이라 시계 볼 줄도 모르고 40분이란 시간이 얼마나 긴지도 몰라."

"아니, 내가 오래 걸릴 거라고 했는데 규가 할 수 있다고 그랬어! 놀이터 가서 친구도 사귀고 놀고 있겠다고 했단 말야."

"그래. 그렇긴 한데 규가 얼마나 오래인지 감이 안 왔을 거야. 규는 아직 어리니까 학원에서 규를 혼자 내보내지 않아. 누가 데리러 가야 해. 그리고 혼자 나갔다고 하더라도 춥고 어두운데 혼자 기다리긴 힘들었을 거야. 핸드폰도 없으니 연락도 못 하고."    

"알겠어. 알겠는데 아직 화는 안 풀렸어."

"일단 배고프니까 밥은 먹고 화가 풀리면 이따가 얘기해."

 

큰 아이는 엄마랑 눈 마주치기 싫다며 모자를 눈까지 눌러쓰고 나왔다. 동생한테 났던 화는 어느 새 풀렸는지 둘이 같이 낄낄대며 저녁을 먹었는데 나랑은 눈 마주치기가 싫단다.


얼마 간 시간이 흐르자 큰 아이가 나에게 다가왔다.

"엄마, 미안해요."

"응, 그래. 이제 화 풀렸어?"

"아까 엄마가 문자를 바로 안 본 것도 짜증났어. 오늘 하루종일 내가 전화해도 엄마는 자꾸 안 받고 문자도 제때 안 보잖아. 그럴 바엔 전화기가 왜 있어?"

"아, 낮에도 엄마가 전화를 잘 못 받았는데 그거부터 화가 났었구나."

"응, 그리고.... 엄마가 규 데리러 나가면 피곤하니까 내가 규를 데리고 집에 오고 싶었어."

"아이고! 우리 건이가 엄마 생각해서 그런 거였구나! 고마워!!! 그렇지만 화가 난다고 통화하다가 전화를 그렇게 확 끊는 건 안 돼. 그건 전화 예절에 안 맞는 거야. "

"응, 알았어요. 엄마, 나 아까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나 사춘기였나 봐."


그래. 사춘기 연습 미리 했다 치자.

오늘도 한 뼘 자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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