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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Aug 30. 2022

웃기고 싶어서 쓴다

남편의 바지를 입고 나간 사연

올여름에는 반바지를 거의 입지 않았다. 최근 몇 년간 반바지를 사지 않아서 입을 만한 반바지가 없기도 했거니와 나이 탓인지 반바지를 입는 게 조금 부끄러웠다. 그렇게 긴 바지와 칠부바지로 여름을 버티다가 여행 전, 여름이 끝나갈 무렵에 저렴한 반바지를 하나 샀다. 기장이 그리 짧지 않은 바지라 입는 데 크게 무리는 없을 것 같았다.


택배로 도착한 바지를 입어 보니 약간 큰 듯도 했지만 아래 사이즈는 품절되어 없었고 교환이나 환불이 귀찮으니 그냥 입기로 한다. 예쁜 것보다는 편한 게 우선이다. 그리고 이 반바지는 여행 가서 잘 입었다.

새 반바지 입고 다보탑 앞에서 인증샷


여행에서 돌아와서 이틀간은 빨래가 산더미였다. 빨래를 돌리고 개켜서 제자리에 넣는 게 평소에도 귀찮은 일이지만 여행 후에는 귀찮음이 배가된다. 앉아서 빨래를 착착 개어 내 옷을 위로 쭉 쌓는다. 그 옆에 남편의 옷, 그 옆에 큰 아이의 옷과 작은 아이의 옷을 쌓은 다음에 옷장에 갖다 넣는다. 2~3일만 고생하면 여행 짐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진다. 물론 빨래는 새로 나온다. 인간이 먹고 (입고) 산다는 것은 끊임없는 노동을 야기하는 것인가.



아이 하교 시간에 맞춰 아이를 데리러 황급히 옷을 갈아입었다. 바지가 약간 크다는 느낌이 여전하다. '그때 환불을 했어야 하나? 아니야. 여행 가서도 잘 입었잖아.'


서둘러 집을 나선 덕에 제법 시간의 여유가 있다. 교문 앞에 서서 얼굴을 아는 엄마들 몇 명과 담소를 나누었다. 방학은 잘 보냈는지, 아침저녁 서늘한 공기에 대해 얘기를 하였다. 마침 날씨가 좋아서 아이를 놀이터에 가서 놀게 하였다. 곤충에 관심이 많은 우리 아이와 친구들은 뛰어 놀기보다는 쪼그려 앉아 논다. 개미와 송충이를 구경하며 한참을 놀았다.  


아이를 데리고 집에 왔다. 집에서 일하던 남편이 나가려고 옷장에서 바지를 꺼내서 내게 묻는다.

"이거 자기 바지 아니야? 내 옷장에 있던데."

음... 그래? 그게 이번에 산 바지인데, 내가 오늘 입고 갔는데. 그럼 지금 입고 있는 바지는 뭐지?


"야, 네가 입고 있는 게 내 바지네."

"그래? 어쩐지 좀 크더라. 아니, 근데 두 개가 되게 비슷하게 생겼네."

"그래. 비슷하긴 하다. 나도 내 거인 줄 알고 입어봤는데 약간 미세하게 달라서 물어본 거야."


그러니까, 바지가 뭔가 헐렁하다는 건 나만의 착각이 아니었다. 사실이었다. 교문 앞에서, 놀이터에서 남의 바지를 얻어 입고 온 것 같은 내 모습을 보신 분이 있다면 그건 사실이다. 남의 바지를 얻어 입고 갔으니. 여행 짐을 한꺼번에 빨고 개면서 비슷한 남색 바지의 분류를 잘못한 것이었다. 그렇게 잘못된 행선지로 들어간 남색 반바지.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




손현의 <<글쓰기의 쓸모>>에는 "글을 왜 쓰냐는 질문에 자신만의 답이 있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손현 작가는 "자발적으로 블로그나 브런치, SNS 등에 올린 걸 토대로 살펴보니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고 한다.

  첫째, 감정이 움직일 때 글을 쓴다. 생애주기에 따라 감정이 더 짙은 채로 풍성해지는 순간이 있다. 좋을 때보다는 슬프거나 아쉬울 때, 괴롭거나 감정적으로 사무칠 때 글을 쓰고자 하는 욕망은 내면 깊은 곳에서 무언가를 터뜨린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홀로 떠난 여행의 고충, 결혼 후 아내와 치른 크고 작은 전투들이 아이러니하게도 글감이 되었다.
           (중략)
  둘째, 내가 보기에 좋은 것, 남도 알았으면 싶은 걸 알릴 때 글을 쓴다. 써보면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알리려는 대상에 대한 내 생각이 온전히 정리되었는지 아닌지 말이다. ‘그냥 좋으니까’라고만 적어도 충분할 때도 있겠지만, 그 감정을 더 자세히 관찰하고 살피다 보면 ‘내가 이걸 왜 좋아하진?’ ‘왜 굳이 글까지 써서 알리려고 하지?’에 대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 손현, <<글쓰기의 쓸모>> p. 83~85


'나는 왜 쓰는가?'에 대한 나만의 시원한 답을 아직 찾지는 못했다. 그러나 하나 분명한 건 나는 내가 실수한 이야기는 간절히 쓰고 싶다. 글 쓰는 이유 중 하나, 웃기고 싶어서 쓴다.


그나저나 오늘 글도 웃기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안 웃기면 어쩌나, 란 조바심이 든다. 다음 기회에는 웃길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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