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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May 12. 2023

우여곡절 '깊이에의 강요'

지난주부터 지역 평생학습관에서 '독서동아리 리더 양성 과정'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매주 화요일 오전 두 시간씩, 8회 차로 진행 예정이다. 독서모임을 해본 적도 없으면서 독서동아리 리더라니. 그래도 재미있을 것 같아 기대가 많이 된다.


수업에 필요한 책들이 있다. 그중 하나인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를 대출하러 수업 후에 자료실로 내려갔다. 파트리크 쥐스킨트라니 반갑다. 고등학교 때 파트리크 쥐스킨트를 좋아해서 <좀머 씨 이야기>, <향수>, <콘트라베이스> 등 웬만한 책은 다 읽었다. 지금은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데 그때는 그 작가 작품이 좋았다. 왜 좋았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난다. 기괴하고 특이해서 좋았나? <깊이에의 강요>를 읽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읽어보면 알겠지. 자료실 컴퓨터에서 책을 찾아보니 이미 대출 중이다. 미리 신청했어야 하는데 늦었다.

 


다른 도서관에 가볼 수밖에. 주민센터 작은도서관에 갔다. 책꽂이를 쭉 둘러봤지만 찾기 힘들었다. 작은도서관에는 검색 컴퓨터가 없다. 하는 수 없이 일하시는 분께 검색을 부탁드렸다. 여기서 일하시는 분들은 자원봉사자다. 연세가 많은 분도 있고 비교적 젊은 분도 있다. 오늘은 연세가 좀 있으신 분이 계셨다.


자원봉사자에게 책 제목을 말씀드렸다.

"깊이에의 강요예요."

"뭐요? 책 제목 이거 맞아요?"

"네, 맞아요. 깊.이.에.의.강.요. 요."

"안 나오는데 제목 이거 맞아요?"

"네, 맞는데요. 여기에 없나요?"

"아예 안 나와요. 작가 이름은 뭐예요?"

"파트리크 쥐스킨트요."

"타...트...리...크"

"아, 타트리크가 아니고 파트리크요."

"타...트..."

"타가 아니고 파예요. 파!"


혈압이 오르기 시작한다. 나는 분노하려 하고 있다. 화를 가라앉히자. 이 감정은 지나갈 것이다. 차분히 생각해 보자. 그래, 이 책을 모를 수도 있다. 이 세상에 책이 얼마나 많은데. 모든 책을 알 수는 없지.


맞는 책 제목을 말했음에도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니냐는 듯 물어본 봉사자의 질문부터 빈정 상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분노할 거리는 아니다. 그럴 수도 있지, 뭐.


"파트리크 지스킨트요?"

"아, 지가 아니고 쥐예요."

"지?"

"지가 아니고 쥐예요, 쥐."

"파트리크 쥐스킨트. 나오네요. 우리 도서관엔 없고 다른 도서관에 있어서 상호대차하면 되는데, 이 사람 책이 많네. 가만, 책 이름이 뭐였죠?"

"깊이에의 강요요."

"안 나오는데요. 이 책 제목 맞아요?"


봉사자가 검색한 창을 자세히 살펴보니 '깊이애의강요'라고 쓰여있다. '애'를 보는 순간 겨우 가라앉힌 마음이 다시 폭발하려 한다. 혈압이 오르고 심장이 빨리 뛴다.

"애가 아니라 에요. ㅓㅣ요."

'깊이에의'를 '깊이애의'로 쓰니 결과가 안 나오지. 화가 나고 어이도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찾은 <깊이에의 강요>. 타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다고 했다. 상호대차는 한 번도 신청해본 적이 없어서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아 상호대차를 신청하였다. 감사합니다, 인사하고 밖으로 나왔는데도 마음의 진정이 되지 않는다. 모를 수는 있는데, 자신이 모르는 걸 상대가 잘못 안 것처럼 몇 번이나 얘기한 게 내 마음을 상하게 했던 것 같다.


그래도 그분의 도움으로 상호대차를 신청했으니 목적은 달성했다. 내가 하나 알고 그가 하나 모르고, 내가 하나 모르고 그가 하나 알고 그랬으면 됐다. 이제 책이 도착했다는 연락만 기다리면 된다.

구립도서관 통합 사이트 검색 결과 ('상호대출가능'일 경우 상호대출을 신청하면 가까운 도서관으로 배송된다)



이틀 후 문자가 도착했다.

***님 신청하신 자료가 발송거절 되었습니다.
사유: 대출중(방문이용자가 우선대출한 도서입니다.)


구립도서관 통합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깊이에의 강요>가 어제 대출된 것으로 나온다. 해당 도서를 보유하고 있는 도서관에 전화하여 문의를 하였다. 내가 신청한 건 그제 점심이었고, 방문자는 어제 대출해 갔는데 상호대차가 우선인 건 아닌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문의 결과, 방문 대출이 우선이었다. 화요일에 상호대차를 신청했으면 수요일이나 목요일에 해당 도서를 직원이 찾아서 발송하는데, 그 도서를 찾기 전에 방문자가 대출을 하면 어쩔 수 없다는 것. 도서관 직원이 상호대차 신청 목록을 모았다가 시간을 정해서 일괄적으로 찾아 발송하는 절차라는 것으로 이해했다. 시스템으로 상호대차 신청을 한 도서는 대출할 수 없도록 막아두면 좋지 않을까, 란 아쉬움은 있었다. 그럼 방문자가 책을 눈앞에 두고도 현장에서 대출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져 또 다른 불만을 야기하겠지만.



하아, 어쨌든 <깊이에의 강요> 구하기 참 어렵다. 다시 구립도서관 통합 사이트에 들어가 검색했더니 타 도서관에 비치중이라 나온다. 검색 결과를 보자마자 길을 떠났다. 같은 강의를 듣는 분들이 먼저 대출할 수도 있으므로 서둘러야 했다. 낯선 동네를 걸어 도서관을 잘 찾아갔다. 그리고 드디어 우여곡절 끝에 <깊이에의 강요>를 빌렸다!!!   

<깊이에의 강요>, 깊이'애'의 강요 아님 주의


분량이 짧아서 단숨에 읽었다. 읽고 나니 예전에 읽었던 게 기억난다. 결론은 '입을 잘못 놀리면 안 된다'로 보면 되나? 고등학교 때도 제대로 이해 못 하고 읽었는데 40대가 돼도 마찬가지다. 이 내용으로 어떻게 발췌하고 질문을 만들어야 할지 엄두가 안 난다. 일단 이 책은 다음 주 과제니 한켠에 미뤄둔다.


이번 주 과제는 김연수 작가의 <진주의 결말>을 읽고 발췌와 질문을 준비해 가는 건데, 그건 더 어렵다. 아무래도 내가 너무 무모하게 수강 신청을 한 것 같다. 나 좀 큰일 난 것 같다.

(초심자의 애교 발사로 상황 모면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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