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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Aug 22. 2023

졸리거나 자거나

알람 없이 일어날 수 있다고?

아이가 저녁에 숙제하려고 책을 찾다가 말했다.

"나 왜 이리 깜빡깜빡 하지? 아까 놀이터에서 놀고서 가방을 안 들고 왔네!"


아이의 가방을 찾을 겸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겸 나선 동네 산책길.

9시가 넘은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그중 어떤 남녀가 지나가면서 다음과 같은 대화를 했다.


남: 나는 알람을 맞춘 적이 없어. 알람이 없어도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날 수 있어.

여: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남: 새벽 4시에 약속 있어도 알람 없이 일어나.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가! (나도 저 여성분처럼 몇 번이고 묻고 싶었다.)

나는 다음 대화가 너무 궁금하여 이 남녀를 뒤쫓아 가고 싶었지만 손에 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게 우선이었으므로 아쉽지만 그들을 떠나보냈다.



잠은 내 평생의 고민거리이다. 잠이 많은 편이라 초중고 학창 시절에 늘 잠과 싸워야 했다. 자는 시간이 그리 적지도 않았건만 매일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었다. 수업 시간에 집중하려 해도 고개가 젖혀지고 눈이 뒤집히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오죽하면 수능 시험 끝나고 가장 하고 싶은 일이 하루종일 자는 것이었을까?


대학생이 되어서도 나는 늘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었다. 아침만 힘든 것도 아니고 하루종일 잠과의 싸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대규모 강의든 소규모 강의든 조는 일이 다반사였다.


직장인이 되어서는 새벽 4시나 5시에 일어나야 할 때도 있었다. 나로서는 극한의 상황이 펼쳐진 셈인데 밥벌이가 중요해서인지, 졸 수 없는 환경이어서였는지 졸지 않고 잘 버텼다. 그러나 하루종일 정신이 멍했다. 아침이든 낮이든 저녁이든 졸렸다. 그래서 생각했다. 나는 '졸리거나 자거나' 둘 중의 하나구나.


그나마 잠시 생생한 건 저녁이나 밤이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야 해서 저녁에 일찍 자려고 해도 이른 시간엔 잠이 오지 않는다. 아침형 인간이 한창 유행했을 때 '나는 저녁형 인간이라 성공하긴 글렀네' 라며 넘겨야 했다.



요즘은 휴직 중이라 새벽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다. 1시에 자더라도 8시(아이들 학기 기준)나 9시(아이들 방학 기준)에 일어난다. 스트레스가 없어서 잠을 푹 자고 7시간 이상을 자주니 낮에 졸음과의 사투를 벌이지 않아도 된다. '졸리거나 자거나'의 상태를 벗어나 비로소 '안 졸린 상태'도 존재하는 세상이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깨어 있는 시간만큼은 비교적 또렷한 정신으로 살고 있다. 삶의 질이 확 올라가는 기분이다.  


어떤 이는 잠을 줄여가며 많은 일을 한다.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야 뭔가를 이룰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또 다른 이에게 잠은 중요하다. 충분한 수면 시간이 확보되어야 삶의 의욕이 바로설 여지가 생긴다.


정신력이 나약한 걸까, 체력이 부족한 걸까. 어찌 되었든 확실한 건 하나다. 난 알람 없이는 절대 일어날 수 없다. 내 생체 리듬을 믿고 일어났다가는 훤한 대낮에 일어나게 될 것이다.


아까 그 남자는 도대체 어떻게 알람 없이 일어날 수 있을까? 뒤늦게 그 비결이 듣고 싶다. 음식물 쓰레기고 아이 가방이고 간에 무작정 그를 쫓아갔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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