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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Aug 29. 2023

슬기로운 방학 생활 결산

초등학생 여름방학 이야기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아이들의 여름 방학이 끝났다. 방학을 이용하여 학기 중에 못했던 학습을 추가로 하는 것도 의미 있겠으나, 아이들이 학기 중에 바쁘게 살아왔던 만큼 방학에는 여유롭게 보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그래서 방학 계획을 빡빡하게 잡지 않았다.


초5, 초2 아들의 여름방학을 결산해 보려고 한다.

(결산이라고 하기엔 딱히 한 일이 많지 않아 민망하지만)



도서관(독서 및 필사)


이번 방학을 맞아 나는 단 한 가지 활동만 제안하였다. 1주일에 한 번은 인근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마음에 드는 구절을 짧게 필사하는 활동을 하자는 것. 예상하겠지만 남자아이들은 글씨 쓰는 걸 싫어한다. 이미 학교 과제로 독서록과 글쓰기를 하고 있는데, 별도로 엄마가 시키면 반발심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그냥 '이런 활동도 있다'는 맛보기 정도로만 했다. 또한 필사한 구절을 서로 읽어보며 댓글 쓰기도 했다.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은 큰아이는 초반에 흥미를 가지며 열심히 참여하더니 마지막 날엔 다소 심드렁한 표정으로 "독서 활동 꼭 해야 돼요? 그냥 책만 읽으면 안 돼요?"라며 필사를 거부했다. (그동안 열심히 했으니 봐준다...)

반대로 새로운 것에 저항이 큰 작은아이는 초반에는 이거 왜 하냐고 툴툴대더니 마지막 날엔 "엄마, 나 길게 써도 돼?"라고 하더니 가장 길게 열심히 썼다. (이렇게나 둘이 성향이 다르다)


가장 재미있는 포인트는 내가 쓴 필사에 대해 작은아이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댓글을 일관되게 썼다는 점이다. 성인 도서니 아무래도 초등 2학년인 아이가 이해하기는 어려웠겠지.


이 활동의 의의는 어쨌든 책을 읽었다는 데 있다. 각자 마음에 드는 책을 선택하여 한 시간 이상 읽었다는 것. 아이들이 어떤 책을 골라 오든 그것에 대해 터치하진 않았다. 단, 만화책은 집에서 많이 보기 때문에 (=집에선 만화만 보기 때문에) 만화가 아닌 책으로 골라오도록 하였다. 선택도 연습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책을 가져왔다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책을 골라 왔다. 작은 도서관에서는 책을 착착 골라 오던 아이들이 큰 도서관에 갔더니 오히려 책이 많아 선택이 어려웠는지 읽을 책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이런저런 책을 제안해 주었으나, 엄마의 제안은 결국 먹히지 않고 그들 마음대로 골랐다.


나 개인적으로는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식이라도) 다양하게 책을 읽으려고 노력한 것에 박수를 보내고 싶지만, 다양하게 읽으려는 시도에서 그치고 끝까지 다 읽지 못한 건 아쉬움으로 남는다. 반은 도서관에서 읽고 나머지 반을 집에서 읽으려고 대출해 왔으나, 결국 제대로 읽지 못하고 반납한 책들이 많았다.



박물관(서대문형무소역사관)


큰아이는 4학년부터 5학년 초까지 한 달에 한 번 역사 수업을 했다. 암사동 선사유적지, 한성 백제 박물관을 시작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용산 전쟁기념관, 각종 궁, 서대문형무소,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등 다양한 장소에서 역사 이야기를 듣고 박물관 전시를 보았다. 역사 수업은 끝났지만, 이번 방학에 자신이 갔던 박물관을 가족과 함께 가고 싶다고 큰아이가 제안하였다.


그러나 역사라면 질색인 작은아이의 반발이 심했다. 작은아이에게 저 장소 중 한 군데를 간다면 어디를 가고 싶은지 물었더니 서대문형무소를 골랐다. 학교에서 3.1 운동과 유관순 열사 등에 대해 배워서 다른 역사 장소보다 관심이 가는 것 같았다. 고문 기구와 사형장 등도 있어서 아이가 무서워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막상 가서 보니 별로 무서워하진 않았다.


우리가 현재 우리나라에서 자유롭고 안정되게 살 수 있는 건 조상들의 희생 덕분이라는 사실을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했다. 그리고 과연 우리였다면 혹독한 고문과 열악한 투옥 생활을 견딜 수 있었을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서대문형무소 사형장 근처에는 큰 나무가 누워 있었다. 사형선고를 받은 독립투사들이 조국 독립을 끝내 보지 못한 채 생의 마지막 순간 이 나무를 부여잡고 울었다고 해서 ‘통곡의 미루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작년 태풍이 왔을 때 나무가 쓰러진 것이다. 나무가 쓰러진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팠다. [관련 기사]



컴퓨터(엔트리 코딩)


아이들이 방학 동안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컴퓨터였다. 코딩의 기초를 접할 수 있는 블록 코딩 사이트인 '엔트리'를 활용하여 게임이나 스토리 등 이것저것 만들고 다른 사람들이 만든 작품을 보는 데 자유 시간을 거의 할애했다. 또한 엔트리 코딩을 더 잘하고 싶다는 큰아이는 엔트리 관련 책도 많이 읽었다.


엔트리는 입력어를 직접 입력하는 것이 아니라 명령어가 들어 있는 블록을 넣어 만드는 코딩 프로그램이다. '시작', '흐름', '움직임', '생김새' 등의 영역이 있고 그 안에 세부 블록들이 있다. 예를 들어 '움직임' 안에 '이동 방향으로 ○만큼 움직이기'라는 블록이 있는 거다. 굉장히 직관적으로 만들 수 있고 한편으로 블록의 순서가 틀어지면 캐릭터가 이상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논리적 사고도 필요하다.


큰아이가 나에게 이론과 실습을 겸한 강의를 해주었음에도 나는 여전히 엔트리를 못한다. 한 시간에 걸쳐 아이에게 배운 나의 작품을 공개한다. (음향이랑 기타 효과는 다음 시간에 알려준다고 했으나, 수업은 한 번에 그치고 말았다.)


http://naver.me/GSUsKtY6


방학 동안 "영감이 떠올랐어!"라며 엔트리 창작열을 불태운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시간 제한이었다.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에도 엔트리를 하려고 해서 아침에 할 수 있 요일은 월금으로 정했다. 나머지 요일은 숙제 등 할 일을 다하고 오후나 저녁에 하기로 했다. 신나게 두세 시간을 보냈으니 이는 방학을 맞이한 자들의 특권이리라!


아이들은 다 만든 엔트리 작품을 엔트리 사이트에 올렸는데, 이 또한 SNS의 일부인지라 신경이 쓰였다. 좋아요 수에 연연하고 팔로잉과 팔로워 수에 환호하는 아이들에게 '팔로잉 수를 남과 비교하지 말 것, 신경 써서 만든 작품에 좋아요 수가 적다고 실망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 (자녀 교육 어렵다 어려워...)



특별히 내세울 것 없는 평범한 방학 생활이었지만 한 달간의 방학을 편안하게 보내서인지 아이들은 개학식 날 즐겁게 등교했다. 아이들이 아무쪼록 2학기도 즐겁고 순탄하게 생활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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