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집 - 미사강변도시 30평 아파트 15층 1
우리의 생에 첫 집에서 두 아이가 태어났다.
기준금리가 떨어지고 정부의 여러 가지 정책 때문에 부동산 가격이 미친 듯이 올라갔다. 경기도는 물론, 서울은 더 심했다. 남편이 자꾸 집을 갈아타야겠다고 한다. 바로 옆 고덕동 아파트를 이야기한다. 우리 집보다 평수도 작은데 이미 몇 억이 더 올라있었다.
결혼 전에는 아빠 지방발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사한 것을 포함해서 29년 동안 다섯 번 이사를 했다. 지금 결혼한 지 고작 4년 되었는데 또 이사를 가자고? 그것도 돈 벌려고?
나는 부동산이나 돈에 대해 크게 생각도, 욕심도 없었다. 외벌이가 되었기 때문에 생활비에 부담이 있기도 했다. 무엇보다 내 집에서 편하게 살면 그걸로 만족한 사람이었다. 부동산을 돈 버는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라시움은 평수가 작아져서 싫다고 했더니 미사강변의 다른 아파트를 제시했다. 지금보다 넓은 평수에 브랜드도 좋고 멋진 단지이긴 했다. 그래도 난 내 집이 좋았다. 반대했다. 그렇게 기회가 지나갔다.
정부에서 새로운 부동산 대책이 나왔고 남편이 이야기한 고덕동 아파트도, 미사 아파트도 가격이 올라갔다. 실망감 섞인 남편의 얼굴을 볼 때마다 미안했다. 사실 나도 조금 아깝긴 했다. 다음에 매매한다고 하면 들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도저히 가만히 있지 못하겠는지 다시 분양권을 사겠다는 도전장을 내밀었다. 마지못한 척 승인해 줬다. 우리 집보다도, 갈아타려고 했던 아파트보다도 인지도가 낮은 건설사였다.
그래도 고! 다.
입주 시까지 전세로 사는 것을 조건으로 우리 집을 매도하고 분양권을 샀다. 시세차익을 얻었다. 갑자기 생긴 큰 수익이 신기하긴 했다.
전세금을 받아야 하는데 새로운 세입자가 잘 안 구해졌다. 워낙 전세 물량이 많던 시기였다. 전세금 돌려받는 것에 대한 절실함을 처음 느껴봤다. 신생아 키우면서 집을 열다섯 번은 넘게 보여주었던 것 같다. 매수한 노부부의 간섭 때문에 계약이 잘 성사되지 않았다. 막판에 남편이 내용증명까지 보내가며 겨우 마무리가 됐다. 내용증명 보냈다고 할머니한테서 욕은 내가 먹었다.
2019년 2월 27일.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란 우리의 첫 집에 2년 9개월 살고 네 번째 이사를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