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어린이집도 지하 주자창으로 다닐 수 있다. 커뮤니티에 있는 헬스장에서 PT를 받고, 카페에서 동네 친구들을 다시 만났다. 그 사이에 도서관도 생겨있다. 역시 이 단지가 최고다.
하지만 나는 나그네.
1년 반만 살고 떠나야 한다.
좁은, 오래된 강남으로.
행복은 잠시.
코로나가 시작되었다. 첫째 어린이집을 겨우 졸업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가정보육이 시작되었다. 넓은 집은 위안이 되었다. 재난 지원금으로 받은 돈을 아이들 책과 장난감에 쏟아부었다. 넉넉한 공간에 보지도 않을 책과 교구들이 자리를 잡았다.
23층, 탑층이었다. 거실 창으로 저 멀리 롯데타워가 보인다. 미세먼지는 창문으로 확인했지만, 미세먼지보다 무서운 코로나는 우리를 집에 묶어 놓았다. 그래도 늘 하늘을 보며 살았다. 숨통이 트였다.
아랫집에는 노부부가 살고 계셨다.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아랫집 드레스룸에 누수가 생겨 올라온 적이 있다. 이사하면서 뭘 건드려 물이 샌다고 확신에 찬 얼굴이었는데, 결국 아랫집 스프링클러 배관에서 누수가 있던 거였다. 의문의 1패를 하셔서 그런지, 그날 집 전체에 깔린 두꺼운 매트를 보고 가셔서 그런지 소음에 대한 컴플레인은 다행히 없었다. 좋은 분이었겠지.
탑층은 층간소음의 피해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혀 그렇지 않다. 밤이 되면 아랫집 소리가 올라온다. 주말마다 손주가 놀러 오는 것 같다. 우다다다. 소리도 지르고 밤늦게까지 시끄럽다. 우리 아이들을 철저히 단속시켰지만, 꺼낼 비장의 카드가 있어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였다.
외출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을 차에서 좀 재워야겠다 싶으면 늘 일원동으로 갔다. 매수한 아파트 단지 앞 2차선 도로에 차를 세워놓고 우리가 이사 갈 집을 올려다보았다.
방이 너무 좁아서 큰일이라는 나와, 생각보다 작지 않다며 어떻게든 살게 된다는 남편.
복도 끝집이니 저기 창고를 만들면 된다고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남편의 머릿속에는 진작부터 인테리어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래 이미 벌어진 일. 어떻게든 되겠지.
일 년만 있다가 생각하자.
남편은 경기도 신축 30평대에 살다가, 서울 구축 20평대에 살 생각에 내심 고민이 많았다한다.내색은 할 수 없었을 거다. 본인이 저질러 놓은 일이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