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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AGE Aug 02. 2024

역전세난에서 겨우겨우겨우 살아남았다.

일곱 번째 집 - 94년생 31평 아파트 1층 4



아이들이 학교 간 사이 몇 시간 만이라도 일을 찾아다녔다. 가용 시간이 얼마 없기도 했고, 아이들이 유치원이나 학교 가 있는 시간에는 다른 아이들도 집에 없으니 돌봄 수요 자체가 얼마 없었다. (이걸 생각 못했다....ㅠ) 다행히 정기 수업이 생겨 월 몇 십만 원 정도는 수익이 생겼다.


오피스텔 만기일이 다가왔고 우리는 또다시 목돈이 필요했다. 리가 살던 집 임대이야기해서 보증금을  내리고 월세를 올렸다. 그러다 결국 이사를 결심했다.


같은 단지의 작은 평수로 이사하자 결정하고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전에 매매했던 동의 14층 집이 나왔다. 보증금과 월세 모두  차이는 없었다. 하지만 로열층이라 해가 잘 들고 1층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우리의 니즈와 맞았다. 평수는 작아지지만 관리비 역시 줄어들 테니 1년 이상만 살면 이사비는 나올 것이란 판단을 했다.


보즘금이 7천만 원 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전세대출을 70프로 받겠다는 말에 임대인 흔들렸다. 계속 의심의 눈빛.

그간의 월세 납입 내역을 뽑아 보내고 남편 명함을 찍어 보내고 상황을 설명하고.. 몇 번의 설득 끝에 계약서를 쓸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도곡동 소유주인데 비참하다...)


전업주부도 전세자금대출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신용카드 사용 내역을 수입으로 인정해 준다. 상담 당시 70프로까지 가능하다고 했다. (많이 쓰긴 했구나..ㅎㅎ) 철석같이 믿고 이사와 대출 과정을 진행했다.

그런데 막상 대출 실행을 하려고 하니 50%가 안 되는 금액만 가능하단다. 멘붕..


어쩔 수 없이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마침 중도금 갚을 돈이 통장에 막 들어와서 은행에 보내려던 참이었는데 내가 그때 딱 전화를 했다고 한다. 이자를 드리는 조건으로 우리가 빌리기로 했다. 아예 망하게 되지는 않는구나.




겨우겨우겨우 살아남았다.

아이들뛰어도 스트레스 없고, 살 방법도 찾아가며 나름 만족했던 1층 생활을 정리하게 되었다. 시원섭섭했다.

아이들은 친구들이 많이 살고 있는 동으로 이사 간다고 오히려 좋아했다. 엘리베이터도 드디어 탈 수 있다면서! (서로 버튼 누르겠다고 싸울 게 뻔했으니 나는 한숨만 나왔지만.)


31평에서 24평으로 갈 준비를 시작했다.

이사 갈 집의 레이아웃을 찾아 가지고 갈 가전과 가구를 추려봤다.

10년 이상 고집한 통돌이 세탁기를 드디어 드럼으로 바꾸기로 한다. 넉넉하게 사용했던 냉장고와 김냉도 콤팩트한 사이즈로 바꾸고.


아이들 2층침대를 사주고 야심차게 구입한, 1년도 안된 퀸 침대를 버리고 남편 혼자 잘 싱글 침대를 구입하기로 했다. (나는 퀸 침대에서 두 번 정도 잤나 보다..) 생각보다 가전 가구 구입비가 많이 든다. 이런.


다 비웠다!


소파는 깨끗이 포기, 아이들 교구며 책 장난감도 반은 물려주고 팔고 버렸다. 이제야 세 번의 이사동안 그저 바리바리 싸들고만 다녔던 물건들을 모두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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