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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AGE Aug 09. 2024

후기와 평점의 비밀을 알아내다!

여덟 번째 집 - 94년생 아파트 24평 14층 2




띵동~


아침 8시. 이사 차량이 도착했다. 현장에는 남편이 있고,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이사할 집에 가 있기로 했다. 편에게서 전화가 온다.


"어, 난데. 침대 버려야겠는데.. 헤드를 분해하다가 여길 부셔뜨렸네.."


가구는 버리려면 다 돈이다. 멀쩡한 가구들은 리사이클링 업체에 미리 무료 수거를 요청해 두었다. 침대도 가져가기로 했는데, 버리게 만들어 다. 뭐, 그럴 수도 있지. 매트리스까지 2만 원이 넘는 돈을 경비 아저씨께 갖다 드렸다.


을 다 뺐다고 연락이 왔다. 빈 집에 가서 둘러봤다. 뭐지.. 인덕션 안 가져갔는데?!

전화를 하니 부랴부랴 뛰어온다.

버리려고 했던 소오븐은 이사트럭 앞자리에 실려 있다.




짐을 생각보다 일찍 뺐다. 점심 안 먹고 바로 넣겠단다. 14층에서 이사업체 사람들을 만났다.

팀장 한 명 빼고 다 외국인이다.


분명히 가구를 해 조립하기 위해 남자 팀원 한 명을 더 투입하기로 했었다. 남편 말을 들어보니 짐 뺄 때 분해를 딱 하나 했단다. 2층 침대의 난간 하나.

옆에서 보니 가까운 데는 분해 안 하는 게 제일 좋다며, 2층 침대를 어떻게 어떻게 문 밖으로 빼내더란다. (뒤늦게 생각해 보니 분해/조립하다 망가질 일 없어서 더 나은  하긴 했음.)


큰 가구 가전의 위치를 잡아 고 현관문 앞에 서서 상황을 살폈다. 안을 슬쩍슬쩍 보는데 생각했던 그림이 아니다.

뭐지, 정리가 제대로 되고 있긴 한 건가?


아직 집이 어수선한데 바닥에 깔아 둔 매트를 접고 상자를 담아 사다리차에 실어 내린다. 일단 수습한 다음에 정리하려 건가, 기다렸다.

가장 어려 보이는 직원이 나를 부르더니 못을 박아주겠단다. 액자와 시계를 걸었다. 나보고 혹시 위치를 옮겨야 할 짐이 있냐고 는다.


분명 하얀 플라스틱 상자에 '베란다 세탁기 뒤편에 쌓아달라' 메모를 적어뒀는데, 베란다 한가운데 덩그러니 여있다.

아... 한글을 못 읽는구나. ㅠㅠㅠ

이걸 저기 안에 차곡차곡 쌓아달라 부탁했다.




난감한 표정으로 안방을 살피는 중이었다. 팀장이 오더니 마무리가 되었다며 나머지 금액을 입금하면 된단다.


"사모님! 저희가 최선을 다했습니다. 어떻게, 마음에 안 드십니까? 사모님께서 한번 정리를 하셔야겠습니다."

 

키는 180에 이사로 다져진 덩치. 까무잡잡한 얼굴. 다나까 말투.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말을 할 수가 없다.


"아... 네......"


입금을 하고 있는 동안 찻장을 열더니 사진을 하나 찍어 나에게 보낸다.


찻장에 안들어 가는 식기류는 건조대에 다 쌓아두고 갔다....


"사모님, 저희가 평점으로 먹고 삽니다. 제가 방금 사진 하나 보내드렸는데 이걸로 후기 하나만 지금 바로 좀 부탁드립니다!"


"아.... 좀 있다가 쓰려고 하는데...."


"안됩니다! 사모님! 저희가 평점이 중요해서요. 한 번 부탁드립니다. 지금 바로 숨고 들어가셔서 후기 부탁드립니다!"


거구가 옆에 지키고 서 있는데.. 이 사람 내 집 주소 전화번호 다 알고 있는데... 안 쓸 수도, 쓰고 나중에 고쳐버릴 수도, 지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후기 126개 평점 만점의 비밀이 풀렸다.




분명히 책장을 고대로 옮기면 되게끔 정리해 두었는데... 여기 책이 저기 가고, 저기 책은 쩔로 가고, 쩌기 장난감은 여기 올려져 있다.

장롱 내부도 위치 그대로 옮기면 되는데 안방 옷이 작은방에 가있고 아이들 옷, 내  섞여있다.



침대 커버와 이불... 저렇게 두고 간 거 무슨 일.


부엌은 가관이다. 딱 한 군데, 팀장이 찍어 보낸 찻장만 깔끔하다. 자리를 못 찾은 전자레인지는 바닥에 덩그러니, 에어프라이어가 그 위에 올라 타있다. (자리를 모르겠으면 물어보던가!)


작은 방 책상 의자는 왜 거실에 있는 건지.

면전에서 컴플레인하지 못했다.


억울한 마음 가득 가지고

분노의 키보드질만 할 뿐.....



사차한시가 안되어 났다. 남편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당신 말 듣고 하던 데서 할걸. 내가 책임지고 수습하겠 했다.


정말 다행스럽게 이사 전에 찍어둔 사진을 보며 책장부터 정리했다. 부엌 가전 자리를 찾아주고 가지런한 찻장의 그릇들을 전부 빼내어 다시 정리했다.


오후 다섯 시경, 모든 정리를 끝마쳤다.

역시 이사의 베테랑 답다.




새로운 보금자리.


평수는 작아졌지만 아이들은 행복하다. 가족들끼리 더 가까이 붙어 있으니 좋단다.

청소 시간이 반으로 줄었다. 식탁 의자에 앉아서 손만 뻗으면 냉장고며 싱크대다.

2월 난방을 딱 두 번 돌렸다. 베란다에는 해가 질 때까지 햇살이 계속 들어온다.


밖이 깜깜해지기 전까지 커튼을 열어둔다. 고개만 돌리면 파란 하늘과 푸른 산이 보인다. (물론 바로 앞동이 베란다 창의 80%는 차지하고 있지만.)


이제 반년 살았다. 겨우 반년밖에 안 지났냐며, 이야기할 때마다 신기하다. 우리 집 보다 더 우리 집 같다.



결혼 13년 차, 여덟 번째 집에서

우리는 행복하게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 그동안 관심 가지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는 에필로그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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