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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지 Aug 11. 2019

작은 목소리를 위하는 일에 대하여

2017년 2월 

                                                                                                                                                                            누군가 나에게 도대체 뭘하고 싶냐고 물었다. 그에 대한 '짧은' 대답이다. 

2017년 2월에 썼다. 




[작은 목소리를 위하는 일에 대하여] 

저는 목소리가 작은 사람들을 위하여 일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하여 시작했지만, 그를 위해 생각한 ‘방법’ 이 다른 이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고민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목소리가 작은 사람은 누구일까요. 아니 그 존재를 어떻게 인지할 수 있을까요? 잘 들리지가 않는데 말이죠. 


저의 첫 인지는 멕시코 한인 후손들이었습니다. 2005년 한인이민 100주년 당시, 멕시코시티(수도)에서 진행되는 천편일률적인 공공이벤트들을 보며, 그 아래에 여러 마을에 살고 있는 후손 2,3,4세대의 진짜 목소리가 묻혀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들의 목소리는 이 곳 한국까지 닿을 수 없었죠. 저는 카메라와 필름을 챙겨 그들의 목소리를 담으러 멕시코로 날아갔습니다. 그들의 소리를 들으려면 친구가 되어야했기에, 풍물, 민요, 한지공예, 드라마/영화 프로그램 등을 준비해갔지요. 5개 도시를 다니며 그들과 함께 먹고 자고, 한지 접시도 만들고 서로의 음악도 배워가며 소깔로(광장)에서 춤도 추고 거리 공연도 했습니다. 


그들이 마음을 열고 해준 이야기를, 그들의 목소리로 수집하였고, 이를 한국에 알려서 ‘할아버지의 나라’ 에 대해 호기심을 안고 있던 멕시코 한인 후손 청년들이 정식으로 한국에 방문하여 연수, 뿌리 찾기 등을 할 수 있게끔 도왔습니다. 


즉 제가 이야기하는 ‘목소리’란 상징적인 것이지만, 실제적인 힘을 갖습니다. ‘목소리’에 대한 관심은 사운드와 공간에 대한 탐구를 하며 증폭됐습니다. 도시의 아케이드 공간이 시각적 경험에 의한 여정을 이끌었다면, 도시에서의 ‘소리’는 어떠한가요? 도시 사회에서 목소리가 갖는 파장은 권력의 정도를 계측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발언권은 자본에 의해서 편성되고 송출되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BTL이 강력해지던 시기인 석사시절 저는 미디어학, 영상학, MBA, 퍼블리시티 관련 수업들을 들으며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확산에 주목하게 됐습니다. 산채로 무덤에 갇혔던 종류의 목소리들이 확산될 수 있는 기술로서요. 그래서 석사 연구주제로 다양한 목소리들이 위계질서 없이 보여지는 APP을 개발하기로 했습니다. 이 APP에서는 누구든 지도 프로젝트를 개설하고, 다양한 관점을 누구나 올릴 수 있죠. 그래서 ‘다양체 지도(Rhizome map)’라는 이름을 붙여 다양한 지역, 주제로 작업을 해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다양체 지도를 활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 4대강 답사팀, 지역커뮤니티(평창 감자꽃마을축제)등과의 협업, 대학(카이스트) 혹은 예술계(한국실험예술제)와의 공동 프로젝트도 진행해보았습니다. 


이때의 경험을 기반으로 저는 ‘작은 목소리’를 키우고 조명하는 작업들을 지속해 나갑니다. 국외입양인들의 이야기를 SNS를 활용하여 듣고, 알려서 한국투어나 친생부모찾기 등을 하도록 도울 수 있었습니다. 또 한국에서 살아가지만, 한국 친구가 전혀 없었다는 외국인 근로자, 결혼이주여성, 중도입국청소년들을 찾아가 그들과 함께 친구가 되어 노래를 만들고 공연하는 프로젝트도 실현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는 한국의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의 이야기를 조명하는 플랫폼으로서의 ‘책 + 디지털콘텐츠’ 를 제작 중입니다. 


만약 제가 단 한 사람만을 도울 수 있는 제한조건 하에 일을 한다면, 저는 선한 뜻을 갖고 꿈을 품고, 목소리가 작은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한 청년을 돕겠습니다. 

저는 최근 봉사활동에 대한 고민을 하는 자리에서 ‘체험가치’와 ‘효율가치’의 적절한 선택과 믹스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어떤 액션을 할 때 우리는 ‘빛(긍정적효과)’를 비추려고 하지만 반드시 그늘은 생긴다는 것이죠. 김장을 몇천포기를 함께 담그는‘체험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수많은 일회용 쓰레기, 배송비, 포장비 등이 발생하는 ‘그늘’이 있듯요. 


저는 한 사람을 돕더라도, 그 사람이 가질 ‘체험가치’가 확장성을 가지고 재생산될 수 있는 ‘효율가치’를 고려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 청년이 저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더 나은 방법으로, 많은 목소리들을 ‘발견하고’, 마음으로 ‘이해하고’, 그들에게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켜 사회의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그가 고민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을 지원하고, 그 ‘공간’의 고민이 디지털 기술을 통해 일파만파 확산될 수 있는 ‘온라인플랫폼’을 지원하고 싶습니다. 


이 한 청년을 도움으로써, 이 공간은 현장의 공간과 디지털의 세계를 이어가며 다양한 목소리들이 발언권을 가지고 이해될 수 있게끔 성장해 나갈테니까요. 그러므로 작은 목소리를 수집하고 공유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은, 곧 씨앗을 뿌리는 일과도 같겠죠. 농경시대에 빗대어보자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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