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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 Apr 01. 2016

원래부터 정해진 건 없다

규정짓지 마라

책 한 권이 한 사람의 인생의 바꿔놓는 경우가 있다. 



나에게도 그런 책이 몇 권 있다. 위의 글에서 소개했던 같은 제목의 <오만과 편견>이 나의 비판적 사고를 키워줬다면 고등학교 때 푹 빠져서 살았던 <비뢰도>라는 무협 소설은 삶을 대하는 방식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 소설의 작가는 대학교를 다니다가 다른 학교에 다시 입학해서 철학과를 다닌 것으로 유명한데, 그런 작가의 삶만큼이나 소설 곳곳에 작가가 생각하는 삶의 철학이 여기저기 묻어있었다. 내가 철학과를 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도 이 작가의 영향이 아니었을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본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 구절은 '사람들이 각자 자신 안에 그릇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제한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어린 나이에 저런 사고방식은 굉장히 색다르고 큰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오랜 시간이 지나 그 의미만 남아 있어서 정확한 문장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래도 그 의미는 여전히 남아서 나 스스로를 '무엇인가'로 규정짓는 것을 항상 경계해왔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자면, 내가 사학과이기 때문에 '역사와 관련된 직업을 구해야'된다거나 혹은 문과대생이기 때문에 '기술 쪽에 관심을 가져서는 안돼.'라는 등의 자기규정은 내 보폭을 지나치게 좁게 만든다. 그래서 사학과지만 창업 동아리를 선택했고, 제대하고 영어를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되자 스페인으로 떠났다. 


나는 '특정 단어'로 규정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결국 어른이라는 존재가 수많은 자기규정으로 정의된 삶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는 분명히 장래희망이라는 칸에 '대통령', '과학자', '외교관' 등의 꿈을 적어냈을 그들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누군가의 남편 혹은 부인이고, 부모이고, 자식이며, 회사에서는 대리, 과장, 차장, 혹은 부장의 직함을 달고 있고, 고객사를 만나면 어떤 회사의 직원이 되는 수많은 역할과 가면을 쓰고 어른이 된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 무엇 하나 당연한 일은 없다. 다만 고민하지 않으면 점점 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일 뿐. 내가 나를 어떤 사람으로 규정 지을지는 전적으로 나의 몫이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지옥 같은 출퇴근 시간 뚫고 회사 생활을 하거나, 아니면 회사원이나 안정적인 공무원이 되기 위해 준비하거나, 혹은 포기하거나' 이 세 가지 이외에도 다양한 선택지가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누구나 무료에서 혹은 몇 만원으로 온라인에 내 가게를 차릴 수 있는 시대이다." 

"대기업은 축소가 되고 프리랜서의 시대가 올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원격 근무를 허용하는 회사가 늘고 있다."

"프로그래밍을 모르면 오늘날 영어를 모르는 사람과 비슷할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계속해서 하는 이유는 삐삐를 쓰던 시대에 스마트폰을 상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우리 앞에 펼쳐진 너무나 명확한 미래를 보고 있지 못한 사람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먼저 시작해서 흐름을 선도하느냐, 혹은 흐름에 휩쓸려가느냐는 전적으로 개인의 몫이다. 하지만 삐삐가 스마트폰으로 바뀐 것은 단순한 소비재의 변화라고 치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노동의 변화는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것이다. 더 유연해져야 한다. 기계가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면서 기계를 파괴한 러다이트 운동*을 기억하는가? 생각보다 미래는 가까이 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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