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
아래는 <출퇴근 없는 삶>의 목차이자 시리즈 첫 글
그를 만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뽀얀 피부에 다부진 체격, 그리고 1년 내내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고 운동도 좋아하던, 성격도 남자답고 서글서글했던지라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는 그런 친구였다. 그러면서도 남의 말 잘 듣지 않는 반골 기질은 나랑 닮아서 둘이 교무실에 가서 같이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야자를 도망가기도 했고, 같이 선택했던 제2외국어 독일어 수업에 독불장군 같던 선생님에게 같이 치를 떨기도 했다. 그렇게 2학년 생활이 끝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함께 서울로 올라왔고, 서로 서울 살이에 정신 없었터라 제대하고 나서야 서로의 안부를 다시 물을 수 있었다. 살면서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술을 많이 마신 기억 중에 두 번은 이 친구와 함께였으나, 이젠 나이도 들었다고 서로 건강 챙기느라 맥주 한 잔 기울이면서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9개월의 스페인 생활을 마치고 브라질로 넘어와 상파울루에서 지내던 무렵이었다. 코이카를 통해서 볼리비아에 경제 직렬로 볼리비아의 코트라 같은 기관에서 2년 간 생활하게 되었다고 연락을 받았고, 마침 같은 남미에 있었기에 시간을 따로 내서 그를 방문하기로 했다. 한참 유럽의 저가항공에 맛이 들려있던 터라, 남미의 터무니없는 항공료에 나는 지상 교통을 통해서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즈(La Paz)로 가기로 결심했다. 그땐 이게 얼마나 엄청난 결정인지 미처 알지 못했다.
비행기로 5시간, 자동차로 계속 달려도 38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를 나는 세 번에 걸쳐 이동했고, 3일 만에 라파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첫 번째 버스는 심지어 상파울루에서 볼리비아의 국경까지 버스로 23시간을 달리는 엄청난 이동이었다. 그런데 그때까지만 해도, 그나마 길이라도 잘 닦여있는 브라질 땅을 달리는 것이 행복한 일이라는 걸 몰랐다. 국경에서 갈아탔던 한 번의 기차와 다른 한 번의 버스는 왠지 교통수단이 지나다녀서는 안될 거 같은 곳을 계속 지나다니는 통해 식겁했다. 아래와 같은 풍경을 스쳐 지나가며, 볼리비아 치안이 안 좋다는 소리에 벌벌 떨며 오른쪽 사진의 가족에게 동행을 요청해서 안전하게 라파스로 도착할 수 있었다.
라파스에 도착해서는 친구의 안내로 이곳 저것 다녀볼 수 있었고, 버스인지 택시인지 구분이 안 되는 봉고차 버스를 탔고, 볼리비아에서 제일 좋다는 지역에 가서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끽하기도 했다. 하지만 볼리비아에서의 압권은 단연 죽음의 도로라고 불리는 자전거 코스였다. 4~5시간 이어지는 자전거 코스는 유튜브에서 자동차가 절벽으로 굴러 떨어지는 동영상으로 유명한 곳이었고, 바람을 가르며 달려 내려가는 것은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모험이었다. 나는 거의 목적지에 다 도착해서 자전거 타다가 굴러 떨어져서 브라질에 돌아와서까지 한동안 손목을 제대로 못 움직였지만, 자전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 타볼 것을 추천한다. 타다 피곤하면 뒤에 따라오는 차에 타고 내려가면 된다.
그 후 친구는 2년의 생활을 털고 한국에 돌아왔다. 남미 현지에서 현지 농산품을 해외로 수출하는 업무를 도맡아 했던 터라, 한국에 들어와서도 관련 프리랜 싱 업무가 끊이지 않았다. 최근에는 세계은행에서도 프로젝트 베이스로 일을 하고 있다고 하니, 한참을 다시 재교육의 시간을 들여서 프로그래머가 되어 겨우 프리랜서가 될 수 있었던 나보다 훨씬 희소성 있는 업무를 맡고 있다. 그 친구가 볼리비아에 있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에 치아시드를 들여오기로 결정했다. 2년 간 쌓아놓았던 탄탄한 네트워크는 그만이 가진 무기가 되었고, 믿을 수 있는 공급처에서 들여와서 한국에서 재가공해서 비바치아라는 이름으로 한국 최초로 HACCP 마크까지 달아서 공급하고 있는 친구를 보고 있자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수입에서 시작해서, 통관, 검역, 패키징, 마케팅까지 모든 업무를 척척해내는 모습을 보면 결국 정말 똑똑한 사람은 자기 사업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정말 잘할 수 있고, 그걸로 훨씬 더 많은 보상을 얻을 수 있다면 자기 일을 하는 것이 맞다. 지금껏 출퇴근 없는 삶을 통해서 주로 프로그래밍을 통한 프리랜 싱이나 창업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이런 방법도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직접 내 손을 통해 만들어낸 상품이나 서비스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사용자에 도달하고 그 반응을 지켜보는 그 일련의 과정은 환희 그 자체다. 나는 그가 고되겠지만 그 즐거움을 온전히 느끼고 있으리라고 믿는다.
제품 디자인이 확정되고 첫 패키징 된 제품이라며 들고 왔길래 우유와 두유에 넣어서 2~3분 정도 뒀다가 꼭꼭 씹어 먹어봤는데 씹는 맛이 장난 아니다. 특히 먹기 편하게 커피 믹스처럼 스틱으로 된 제품(아래 이미지 참고)도 있는데, 부인도 마음에 들었는지 매일 아침에 한 스틱씩 뜯어서 도시 여자의 감성을 즐기곤 했다. 현지에서 직수입해서 한국에서 유일하게 살균처리로 HACCP 마크를 붙여서 판매하는 제품을 책상 위에 올려놓는 건 어떨까? 생각만 해도 힙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힙한 남자의 힙한 치아시드가 어떤 반응을 이끌어 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