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그 어려운 걸 또 해냈습니다
아래 링크는 <외국어 덕후의 학습법> 첫 글이자 목차
한국에서는 대학교 도서관 열람실도 답답해서 가지 않는 나였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조용한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걸 좋아했던 것 같은데, 대학교에서는 카페에서 공부를 하는 걸 좋아했다. 그런데 스페인은 전혀 카페에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일단 대다수의 스페인 카페는 길게 '바'가 있는 형태가 많았고, 조명도 너무 어두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카페는 대화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두가 매우 크게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주로 공부를 할 일이 있으면 집에 앉아서 했는데, 기간이 기간이니만큼 시험 준비를 위해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곳을 찾기로 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떨어져 있던 대학교였다. 마드리드에서 가장 유명한 꼼쁠루텐세(Complutense)라는 대학교 안에서도 내가 전공하고 있는 역사학부의 도서관을 찾아갔다. 굉장히 웅장한 느낌이 잘 살아있는 곳이었는데, 놀라운 사실은 저녁 9시면 문을 닫는다는 것이었다. 한국은 보통 일반 열람실도 자정까지는 열려있고 24시간 열람실을 따로 운영해서 공부하려는 학생들을 지원하는데, 공부하러 갔더니 9시에는 문을 닫는다니 당황스러웠다.
위의 이미지는 꼼쁠루텐세의 사이트에서 가져온 시간표인데, 여전히 도서관을 9시까지만 운영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심지어 주말은 9시부터 오후 1시까지만 운영을 한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오전 수업을 마치고 반 친구들과 간단히 점심을 먹든지 혹은 입에 샌드위치를 물고 도서관으로 달려가서 9시까지 공부를 하다가 돌아와서 저녁을 먹었다. 그래도 정말 빠듯한 시간이었다.
스페인에서 벌써 8개월가량 시간이 흘렀고, 이제 어느 정도 편하게 말하고, 거의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시험을 준비하면서 정말 어려웠던 것은 작문과 어휘였다. 레벨이 C1까지 올라가자, 독해에서는 논문 수준의 글이 나왔고, 작문에서도 신문 사설 수준의 어휘를 요구했다. 고작 8개월을 스페인에 있었던 사람에게는 너무 힘든 요구였다.
그래도 불평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프랑스의 '르몽드'는 한국에도 번역되는 유명한 신문이다. 스페인에는 그와 유사하게 주요 일간지 '엘 빠이스(El país)'와 '엘 문도(El mundo)'가 있다. 굳이 번역하자면 '엘 빠이스'는 '국가'라는 뜻이고, '엘 문도'는 '세계'라는 뜻이다. 나는 아침에 학원 수업을 들으러 가면서, 매일 한 부씩 신문을 샀다. 그리고 전체 기사를 보면서, 흥미가 가는 부분들은 단어를 찾아서 외우고 내용을 깊이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사설 중에서 하나를 골라 매일 한 개씩 문장을 그대로 옮겨 쓸 수 있을 정도로 외워버렸다.
신문을 읽고 옮겨 쓰면서 좋았던 점은, 우선 자연스럽게 어휘를 외울 수 있었고, 그리고 고급 문장 구조를 습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스페인어는 공식적인 글쓰기가 일상 회화와 많이 다르다. 영어에서도 어휘 수준과 어투를 다르게 해서 비즈니스 글쓰기를 차별화하지만, 스페인어는 그보다 조금 더 문법적인 차원에서도 구분을 해서 작성을 해야 한다. 신문의 사설 옮겨 쓰기는 고급 문장을 구사하는 작문을 준비하기 위한 매우 훌륭한 연습이 되었다.
시험 일주일쯤 남았을 무렵, 가까이 지내던 한국인 친구들과 평소에 가지 않던 다른 도서관에 모여서 공부하기로 했다. 다들 델레를 준비하고 있던 처지라 같이 밥도 먹고, 모르는 것도 알려주었다. 스페인에서는 보통 수돗물을 그냥 마시는데, 물통을 따로 챙겨가지 않았던 나는 도서관 화장실 세면대의 물을 별 생각 없이 마셨다. 그다음 날부터였다. 정말 미칠듯한 복통에 시달렸다. 학원에도 겨우 나가서 쉬는 시간이면 화장실에 달려갔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더 심해져서, 4일쯤 되던 날 마드리드에서 처음으로 학생 보험을 통해서 병원에 찾아가서 약도 처방받았다. 그리고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서 약을 먹고 이틀을 내내 잤다.
그러고 나니 시험 날이 왔다. 몸이 정말 좋아도 아슬아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실 어느 정도는 포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첫 과목인 말하기 시험에 들어갔는데, 지난 한 달간 나를 가르쳐줬던 선생님이 면접관으로 들어와 있는 게 아닌가? 물론 면접관은 질문만 하고 뒤에 감독관이 채점을 하기 때문에 결과와는 무관 했겠지만, 몸이 너무나 지쳐있는 상태에서 아는 사람이 내 눈 앞에 앉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면접을 마쳤고, 잘하면 잘 끝낼 수도 있겠다는 자신감이 조금 생겼다. 그리고 어떻게 풀었는지 기억도 잘 안 나게 읽기, 듣기, 쓰기 시험을 차례대로 마쳤다.
내가 결과를 확인한 것은 3개월이 지난 브라질 땅에서였다. 그리고 그 날 너무 기뻐서 혼자 방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내 스페인 생활 9개월의 결과로 DELE C1를 한 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외국어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영어, 스페인어, 일본어 공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