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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 Mar 01. 2016

프리랜서 개발자의 일하는 하루

그가 일하던 어느 날

아래는 <출퇴근 없는 삶>의 목차이자 시리즈 첫 글




08:00


검은색이다. 하지만 칠흑 같은  검은색은 아니고,  붉은색과 회색 빛이 도는 그런  검은색이 눈 앞을 가린다. 눈이 건조해서 왼손으로 왼쪽 머리맡에 둔 인공 눈물을 더듬어서 찾고, 눈도 뜨지 않은 채로 눈에 인공 눈물을 넣는다. 넣고 나면 시원한 느낌이 드는 인공 눈물을 눈에 한 가득 넣고, 눈을 감고 눈알을 좌우로 굴리다 보면 어느덧 빛에 적응이 되고 눈을 뜰 수가 있다. 혹시나 옆에서 자고 있는 부인님을 깨울까 봐 조심스레 몸을 옆으로 틀어서 발을 땅바닥에 내려놓는데, 어째서인지 열에 아홉은 부인님께서 따라서 일어나신다. "좋은 아침이에요."라는 말과 함께 모닝 키스를 하고 일어나서는 빨래통에 빨래가 많지 않은지 확인한다. 오늘은 따로 세탁을 돌리지 않아도 괜찮겠다.


09:30


아침에는 밑반찬으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부인과 함께 집을 나서서 나는 주변의 카페로 향한다. 주로 가는 곳은 집 근처의 스타벅스나 엔제리너스, 그리고 사람들이 잘 모르는 동네 카페다. 세 곳 모두 걸어서 채 5분도 걸리지 않는 곳이다. 동네 카페가 조용하고 좋은데 오전에는 열지 않아서 스타벅스로 향한다. 날씨는 추워서 입은 두꺼운 외투의 지퍼를 턱밑까지 잠그고, 스타벅스 1층을 바로 가로질러서 2층으로 올라간 다음에 좋은 자리를 물색한다.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서 매번 같은 사람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침 일찍부터 좋은 자리에는 사람이 다 앉아있다. 개발자에게 좋은 자리라 함은 편하게 등을 댈 수 있고, 노트북을 안정적으로 충천할 수 있는 자리다. 그리고 등이 벽을 향해 있으면 더 좋다. 스타벅스 앱을 열고 사이렌 오더로 주문을 넣는다.


노트북을 켜고 출근하신 클라이언트 님과 카카오톡을 나눈다. 기왕이면 기록도 남고 나중에 검색도 하기 쉽게 이메일로 보내줬으면 좋겠는데, 매번 이야기해도 카카오톡이 보내기 쉽다며 카카오톡으로 보낸다. 카카오톡이 왜 카카오 메일은 만들어 주지 않는지 모르겠다. 얼추 작업이 다 되어가는  마무리되어가는 상황이라 임시로 서버 세팅을 마치고,  확인할 수 있는 링크를 보냈더니 폭풍 같은 피드백이 쏟아진다. 아주 공손하게 '이렇게 카카오톡으로 보내주시면 나중에 확인하기가 힘드니, 스크린샷 찍어서 피피티에 피드백 만들어서 보내주세요.'라고 이야기하니 알겠다고 연락이 온다.


1시간쯤 폭풍 코딩을 하고 있다 보니, 클라이언트가 피드백을 보내왔다. 카카오톡이 날아오기 전에 내가 먼저 보내주신 이메일 잘 받았고, 확인해서 회신하겠다고 연락을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신속한 답변이 생명이다. 어차피 클라이언트는 내가 무슨 작업을 하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그러니 반드시 최대한 빠르게 답장해주고, 꼼꼼하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 이번 클라이언트는 다음 클라이언트를 소개해주기 가장 쉽다.


13:00 


정신없이 코딩을 하다 보면, 생산성 높은 오전 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간다. 크게 배가 고프지 않아서 2시쯤 밥을 먹어도 될 것 같은데, 주위에 대학교 친구가 온다고 해서 점심을 함께 먹기로 했다. 눈이 온다고 버스가 느리게 움직인다고. 조금 늦는다고 해서, 30분 정도 브런치에 글을 쓰다 보니 계단을 올라오고 있는 친구가 보인다. '미리 연락하면 내려간다고 했더니.' 그 어렵다는 기자로 일을 한 지 6개월 된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서 점심을 먹으면서 사는 이야기를 한다. 진실을 전하는 직업이라고 근사하게만 생각했더니 그것도 쉽지만 않단다. 신입 기자들을 경찰서에서 먹고 자게 하는데, 하루에 2~3시간 밖에 못 자면서 지내는데 6개월쯤 되니 몸이 적응하더라며 씁쓸하게 웃는다. 진실을 쓰겠다고 기자가 된 친구가 신문사 내의 신입 기자에 대한 악폐습에 몸도 마음도 지치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된다.


14:30


식사를 하고 이제는 문을 연 동네 카페로 같이 향했다. 기자 친구도 할 일이 있다며 커피 한 잔 시켜놓고 같이 열심히 노트북을 두드린다. 날씨도 추운데 갑자기 나가서는 신문사 선배에게 보고하고 왔다며 30분 뒤에 들어오는 친구에게 이거라도 좀 먹으라며 쿠키를 건넨다. 친구와 드문드문 이야기하며 만들고 있는 강의 사이트와 강의 콘텐츠를 잠깐 살펴보느라 한 두 시간쯤 정신없이 보내고는 다시 클라이언트 프로젝트로 돌아온다.


신문사로 복귀한다며 그 친구는 떠나고, 남자 카페 사장이 남직원에게 맨스 플레인(Mansplain, 주로 나이 있는 남성의 아는 척 말하기를 지칭)을 시전 한다. "이건 이렇고, 이건 저렇고, 이건 왜 이런지 아니?" 같은 특유의 가르침 화법을 듣고 있으면, 저걸 매일 듣고 있을 카페 직원에게 연민의 감정이 생긴다. '얼른 대학교 졸업하시고 하고 싶은 일 하세요.'  


개발은 정말 많은 집중력이 필요하다. 한 번에 여러 가지를 생각하면서 작업하다보니 한 번 흐름이 끊어지면 다시 이 파일, 저 파일 열어야 하는 일이 많은데, 누구도 나에게 말 걸지 않는 카페에서 일하면 그럴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정말 3시간 정도는 잠깐 정신을 놓으면 지나간다. 그렇다고 그 세 시간을 낭비하면서 보낸 것도 아니고, 완벽하게 집중한 상태에서다. 그렇게 하루 목표량을 채우고 나면, 그 때부터는 책도 읽고 글도 쓴다. 그리고 내가 만들고 싶은 서비스도 만든다. 물론 가끔 카페에서 라이브로 드라마를 찍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정도 소음은 크게 신경 쓰이지도 않는다.


18:30 


부인님이 퇴근해서 집에 도착하실 시간이다. 이제 집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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