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책]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한 권에 135페이지 밖에 되지 않는 김영하씨의 소설을 다 읽고 나니, 덮은 책 마지막 뒷표지에서 피비릿내가 났다. 호평과 악평으로 극명하게 갈린다는 이 김영하씨 초기 소설은 스페인이나 프랑스의 예술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끈적끈적한 무거움이 끝까지 따라다녔다. 주인공은 자살의 징후가 있는 사람을 찾아다닌다. 전화 통화 속에서, 길거리에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사람을 찾아서 그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만든다. 하지만 그는 '살인'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손으로 위해를 가하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그는 죽음 앞에서 망설이는 그의 의뢰인에게 지금은 때가 아니라며 따스하게 안아준다. 그리고 의뢰인이 자살을 결심하고 다시 돌아왔을 때 그제서야 웃으며 의뢰인을 떠나게 돕는다. 항상 모든 것은 자살인 것처럼 구체적으로 유서를 써야한다. 기왕이면 지인의 이름을 실제로 거론하면 좋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소설로 써서 이름을 붙이지 않고 출판사로 보낸다. 소설 전체의 무거움에 주인공의 무미건조함이 겹쳐져 재미있는 향기를 낸다.
최근에 읽은 김영하씨의 산문 3부작의 마지막 책인 <읽다>에서 "아직은 서툰 작가들이 작가가 글을 출고하고 밀려오는 질문에 자신의 의도를 '아마추어'처럼 표현해버리고 만다"고 이야기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의 소설이 프랑스에 출간될 무렵 프랑스 편집자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읽다> 속의 그의 표현이 사실 처음 등단한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스피드에 중독되어 매번 교통 사고를 내며 '정치적 자살' 행위로 쓴 글이 너무나 유명해져, 지금은 교통 위반 과태료가 내는 것이 무서워졌다는 그의 말은 왠지 조금은 쓸쓸하게 들린다. 내가 쓴 글을 10년 후에 다시 만나게 되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