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한 번 올 때마다
겨울을 건넌 꽃나무들은 화르르 봄을 피워올렸다.
늘 그러하듯 봄은 꽃의 속도로 북상하기 시작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꽃의 시절이
아직 도착하지는 않았으나
추워서 발 한번 디디지 못했던 베란다에도
어느새 훈기가 돌고 죽은 줄만 알았던 화분들
곳곳에서 새 잎을 피워 올린다.
수선화는 구근 어딘가에
숨겨 두었던 꽃대를 밀어 올리고,
수국은 초록 잎사귀를 펼치며 영토를 넓혀간다.
한 겨울 내내 죽어있는 듯 했던
그 줄기와 잎새 어디에 저 초록이며,
꽃잎들을 숨어 두었던 것이었까
하냥 기특하고 신기해 자주 들여다 보게 된다.
저 좁은 베란다에 깃든 작은 세상에도
겨울을 건너는 식물들이 있고
차고 시린 겨울을 건너지 못하는 생명들이 있다.
하물며 사람의 생각과 말들이랴..
코로나를 건너며, 모든 일들이 멈추어 있는 시간..
어떤 생각과 문장은 코로나의 차고 시린날들을 버티고 새 잎을 피워올리고
어떤 말과 글들을 져물고 시들어
겨울을 건너지 못했다.
서랍 속에는 시간을 건너지 못하고
마른 잎이 되어 버린 글월들의 몸피가 수북하다.
코로나 0년, 1년...
이 고립과 무원의 날들을 호명하는 낯선 언어들에
마음을 붙이려 애쓰며 다른 시간의 문을 여는 봄..
가만히 심기워진 삶의 자리에서
시절을 따라 피고 지며,
뿌리의 속도로 살아가는
식물의 여행을 익혀가야 겠다고
생각의 구근을 마음 한 쪽을 묻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