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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키너 Oct 28. 2018

요리를 책으로 만들다.

조리학과 신교수의 식탁 일기


부부가 되고 나면 늘 새롭던 같이하는 즐거움들이 일상이 되고, 새로움보다는 익숙하고 편한 관계로 숙성되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래서 결혼기념일의 저녁식사는 특별한 한 끼를 선호하게 되는데, 늘 먹는 음식이 아닌 '특별함'이 선물과 같은 역할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 생각됩니다. 새로운 음식을 접한다는 것은 연애초 서로에게 새로움과 신비함을 느끼는 것처럼 설레고 호기심도 생기는 감성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서양인들도 결혼기념일에는 중국음식이나 타이음식 등의 에스닉 음식을 선호한다고 하는 걸 보면 낯선 음식이 일상과는 다른 경험을 제공해주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부에게는 여행이 필요하고, 새로운 경험이 필요한가 봅니다.


결혼기념일의 주말이라 늘 먹던 집밥이 아닌 새로운 한 끼를 만들어 봅니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와인과 케이크도 준비했습니다. 청양고추와 마늘을 듬뿍 넣은 집사람 취향의 파테 앙 크루트(pate en croute, 프랑스식 고기 파이)와 비프 부르기뇽(Beef bourguignon)을 만들어 프렌치풍 저녁 메뉴를 준비합니다.


프랑스 음식과 와인은 왠지 로맨틱함을 선사합니다.


기욤 티렐(필명 타이유방)이 쓴 최초의 프랑스 요리서적 '르 비앙디에(le Viandier)' 15세기 판 표지


지중해 연안의 온화한 기후에서 자라는 풍부한 과일과 채소, 너른 풀밭에서 자라는 소와 양, 지중해에서 걷어 올린 싱싱한 해산물, 치즈와 포도주를 생산하는 길드와 수도원까지 프랑스는 일찍부터 요리가 발달하기 위한 식재료와 인력까지 필요한 충분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프랑스는 중세부터 지금까지 요리서가장 많이 출간된 나라인 만큼 프랑스는 요리를 하나의 학문으로서 정리하고 발전시켜 왔습니다. 르네상스 시대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필사본으로 존재하던 프랑스의 요리에 대한 지식이 인쇄본 책으로 출간되기에 이릅니다.


인간의 역사에서  문서로 확인되는 요리는 르네상스 시대 이전에는 찾아보기 힘든 분야였습니다. 리케이온에 도서관을 만든 당대의 최고 지식인 아리스토텔레스마저 그의 저서 정치학에서 '요리는 인간의 지식 중 종속적인 분야이고 노예에게나 알맞은 기술'이라고 서술한 걸 보면 고대의 요리에 대한 시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모든것을 기록으로 남겼다는 로마시대에도 다르지 않아 인류 최초의 요리책으로 기록되는 당대의 유명한 미식가인 아피치우스(Apicius)의 레시피 모음집  '데 레 코퀴나리아(De re coquinaria, 요리에 대한 모든 것)'가  겨우 남겨져 있습니다. 

이후에도 기독교 중심의 세상에선 7대 죄악(The Seven deadly sins)중의 하나인  '탐식'은 폭식을 포함한 식도락까지 그 범주에 끼워 넣어 음식에 대한 연구와 저술을 발전하는 큰 장애물로 작용합니다. 르네상스 시대 인쇄술의 발전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요리책은 아피치우스가 유일하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요리에 관한 저술적 의의에 큰 변혁을 가져다 준 도서가 탄생되니 그것이 바로 기욤 티렐이 14세기에 쓴 '르 비앙디에(le viandier)'라는 프랑스 최초의 인쇄본 요리서 입니다. '르 비앙디에'는 '음식을 공급하는 자'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셰프(Chef)'라는 단어가 없던 시절의 요리사를 이야기합니다. 식사와 요리에 대한 관습이 변화하는 시절 이 책은 1486년과 1615년 사이에 25번이나 재발행되었으니 그 인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르네상스 시절 요리사는 '가드 망저 (Garde manger, keeper of the food)'로 불렸으며, '음식 저장소를 지키는 사람'으로 불리었습니다. 인문주의가 도래하면서 요리는 영양학과 건강 사이에서 관련성이 깊어지면서 학문으로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요리는 건강한 식단과 미각이라는 관점으로 해석되어, 그제야 문서화되고 보존하는 작업에 착수하게 됩니다.


1651년, 프랑스 루이 14세 때 프랑수아 피에르(필명은 라 바렌, La Varenne)가 쓴 '프랑스 요리사(Le Cuisinier francois)'는 건강과 영양학적 충고에 부수적인 방법을 계몽하는 요리책이 아닌 맛을 내는 방법과 조리법에 대한 기술을 다룬 최초의 책이었습니다. 요리책 '프랑스 요리사'는 초판 출간 이후 총 30판이 발행되며 영어, 이탈리아어, 독일어로 번역되어 유럽에 알려지고, 프랑스어로 된 요리 언어를 유럽에 소개하면서 요리는 곧 프랑스라는 인식을 만들게 됩니다. 


프랑스 왕정시대, 태양왕 루이 14세부터 프랑스 대혁명으로 막을 내린 루이 16세까지의 프랑스 요리는 엄청난 발전을 이룩하게되니 이때를 프랑스 음식문화의 대변혁기라 칭합니다. 라 바렌이 막을 연 프랑스의 요리는 '오트 퀴진(Haute Cuisine, High cooking)'이라 불리는 왕족과 귀족들을 위한 요리들이 발전합니다.  이 시기 대략 100년의 역사에서 프랑스 음식문화 발전의 가속이 너무도 빨라, 루이 14세는 루이 16세가 먹었던 음식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전해 집니다.

  

19세기, 요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한 종속 분야가 아닌 학문의 한 분야로 발전하기에 이릅니다. 


프랑스혁명 이후 나폴레옹 시대에 이르러 왕의 요리사로 불리는 앙토넹 카렘(Antoine Carême)은 오트 퀴진(Haute Cuisine, High cooking)을 완성하고 프랑스 음식이 가장 맛있는 고급 요리라는 인식을 세계에 전파합니다. 그는 조리법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저술했으며, 특히 요리백과사전인 '프랑스 요리 기술('L' Art de la Cuisine Française 전 5권)' 저술하고 수많은 조리법 외에도 메뉴 및 풍성한 테이블 세팅, 프랑스 요리의 역사, 주방 구성 지침까지 프랑스 요리의 방대한 자료를 정리합니다.

나폴레옹 시대 카렘의 후계자인 유르반 뒤부아는 궁정 요리의 서비스 방식을 차가운 음식과 뜨거운 음식을 한꺼번에 테이블에 차려놓고 음식을 서비스하는 방식이 아닌 전채부터 수프, 메인 요리, 샐러드, 디저트 등 순차적으로 음식을 먹는 방식인 러시아식 서비스 방식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이때부터 모든 서유럽의 음식은  순차적으로 음식을 먹는 코스요리 서브 방식으로 정착되고, 현대 서양 코스요리 메뉴의 표준이 됩니다.



 

 

      

1899년 파리의 리츠 호텔에서위 오귀스트 에스코피에(사진  왼쪽 첫번째)


레스토랑이 산업으로서 발달하면서 '오귀스트 에스코피에(Auguste Escoffier)'가 등장합니다. 그의 저서 '요리 안내(le cuisine culinaire)'에서 주방 조직을 체계화하고 정리하여 주방 책임자를 '셰프 퀴지너(Chef cuisinier)'라는 이름으로 명명합니다. 조리교육의 체계적인 교육법을 세우고 주방장인 셰프를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으로서의 지위를 올려놓으며 '요리의 왕'이라는 칭호를 얻습니다.   

그의 저서 '요리 안내(le cuisine culinaire)'는 오늘날까지 현대요리의 성경으로 불리고, 바흐의 평균율과도 같은 지위를 가지며 오늘날에도 가장 애독되는 요리서입니다.

이때부터 '셰프(Chef)'는 주방장을 칭하는 용어로 전 세계에 알려지고, 프랑스 음식은 요리에 있어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합니다.


이 시대에는 미식학이라는 장르도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그대 무엇을 먹는지 말하라, 그러면 나는 그대가 누군지 말해보겠다."라는 명언으로 유명한 브리야 샤바랭은 미식학(Gastronomy)을 학문으로 발전시킵니다.  

그의 저서 '미식 예찬'(원제는 미각의 생리학, Physiologie du goût)은 미식학 장르의 경전급이 된 책으로 현대에도 가장 많이 읽히는 음식 인문학의 고전입니다.


산업혁명 이후 자동차와 여행이 생활화되면서 지도와 레스토랑 가이드가 필요한 시대가 다가옵니다.

프랑스의 타이어 회사인 미슐랭 사는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여 '미슐랭 가이드'를 창간하기에 이릅니다.



1900년에 시작된  미슐랭 가이드는 숙박과 식당에 관한 ‘레드가이드’, 유럽 각 지역의 지도와 박물관, 자연경관 등 관광정보를 제공해주는 ‘그린가이드’를 만들어 유럽 여행과 B&B산업의 현대화를 추구합니다. 그린가이드의 지도는 얼마나 정확한지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공식 지도로 쓰이기도 합니다.

프랑스의 타이어 제조 회사인 미슐랭이 매년 봄 발간하는 '미슐랭 가이드'는 한국어 표기법 공식 명칭에 ‘미쉐린 타이어‘라고 등록되어 한국어 공식 명칭도 '미쉐린 가이드'로 결정되어 불리고 있습니다.


미쉐린 가이드의 별의 가치는 별의 숫자에 따라 달라지는데, 하나부터 셋까지의 별이 부여됩니다.

★ : 요리가 훌륭한 식당( Very good cooking in its category)     

★★ : 요리가 훌륭하여 멀리 찾아갈 만한 식당(Excellent cooking, worth a detour)     

★★★ : 요리가 매우 훌륭하여 맛을 보기 위해 특별한 여행을 떠날 가치가 있는 식당(Exceptional cuisine, worthy of a special journey)     


이를 해석하자면, 아래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별 한 개(★)는 여행할 해당 지역을 방문하면 들러볼 가치가 있는 훌륭한 음식점이라는 뜻입니다.

별 두 개(★★)는 우회(detour)할 가치가 있다는 뜻으로, 본래의 여행지에서 다소 떨어진 지역이더라도 우회로를 택해 방문해볼 가치가 있다는 뜻입니다.

별 세 개(★★★)는 여행(journey)할 가치가 있다는 뜻으로, 오직 이 음식점을 방문하기 위한 목적만으로도 해당 지역을 여행할 가치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별이 셋인 식당은 여행 자체를 의미하니 셰프들에게는 영광과 부담을 동시에 부여합니다.


미쉐린 가이드의 별을 받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어서 어떤 식당이 미쉐린의 별을 부여받았다는 것은 곧 스타 셰프의 탄생을 의미합니다. 미쉐린 가이드 별 하나만 받아도 미디어와 SNS에 회자되고, 그 식당의 셰프는 연예인급의 인기를 구가하게 됩니다.

별 하나를 받는 일은 천부적 재능과 주변의 도움, 화제가 되는 메뉴 등이 필요하지만 미쉐린 별 3개를 받는다는 것은 음식만 잘해서는 되는 일이 아닌 그 식당의 시설, 취향, 지배인과 소믈리에의 품격과 주방장의 미식 철학 등 각 분야의 고도로 숙련된 기술적 내공과 지식이 필요한 일입니다.

미쉐린 3 스타의 레스토랑은 그 분야의 대가가 되는 일로 요리사들에게는 평생의 목표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현역 요리사 시절 항상 회장님과 사장님들이 '전국에 소문이 나서 찾아와 먹을 수 있는 메뉴'를 만들어야 한다며 독려해주시고 채근하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미쉐린 별 3개 정도 되는 레스토랑을 만들자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그런 메뉴를 만드는 일은 '자 이제 만들어보자' 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닌 평생을 그 한 가지 요리에 혹은 좋은 식당을 만들기 위한 마지막 순간으로 축적의 시간이 필요한 작업입니다.


미쉐린 별들에 가려 우리가 잘 모르는 미쉐린 가이드 '빕 구르망'이라는 맵도 있습니다.(빕은 미쉐린 타이어 아이콘 타이어 형상의 인형인 '비벤더'의 애칭입니다.)

빕 구르망이란 3만 5천 원 이하의 식당 중 추천 식당으로 우리가 흔히 가보았고, 역사와 전통을 지켜온 식당들이 포함되어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보다 더 선호하는 식당들입니다. 빕 구르망에 등록된 식당들은 보통 2대째는 물론이고 3대째까지 물려 내려온 처음의 맛을 지키고 개발하여, 오랜 시간의 축적으로 발전해 내려와 오늘날에 이르는 식당들입니다.

그래서 미쉐린 가이드를 포함한 식당 평가지 등에는 새롭게 등장하는 스타 셰프도 있지만, 그 자리를 오랫동안 지켜온 '노포'들이 좋은 평가를 받습니다.


올해 미쉐린 가이드 '빕 구르망'에는 제가 좋아하는 명동칼국수부터 하동관까지 우리가 익히 들어본 48곳의 식당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미쉐린 가이드는 대도시 위주의 편협한 식당 평가라는 비평과 함께 미슐랭 가이드에 별을 따기 위한 비밀거래가 있다는 등의 설이 퍼져 별의 가치에 대한 위상이 절하되는 위기도 맞기도 합니다.

철저한 비밀 평가와 광고 스폰서 등으로 투명성이 의심되기는 하지만 미쉐린 가이드에 선정된 레스토랑의 면면을 보면 '여기는 진짜 아니데...' 하는 식당이 없는 걸 보면 나름 공정성에는 심사를 많이 하는 듯합니다.




부드러운 메쉬 포테이토는 비프 부르기뇽에 잘된 찰진 밥과 같은 존재입니다.

감자를 찜기에 올려 포슬포슬할 때까지 잘 쪄서 체에 곱게 내립니다. 아낌없이 버터를 넣고 부드럽게 될 때까지 잘 저어 줍니다. 버터향이 살짝 올라오면서 혀끝으로도 부서질 정도로 부드럽다면 잘된 메쉬 포테이토입니다.

3시간 정도 푹 삶아준 소고기 엉덩이살은 찰진 근막이 먹기 좋게 풀어져 씹히는 맛을 더해줍니다. 와인 한 병을 아낌없이 넣은 탓에 와인향이 듬뿍 배어 들어 향긋한 당근과 채소들의 하모니도 좋습니다. 오늘 비프스튜 맛이 참 좋다고 집사람이 좋아합니다.


'이렇게 맛있는 레시피를 만들고 보존해온 선배님들의 노고에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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