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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하라 강변 Dec 27. 2020

19 이토록 솔직한 산문집

- 이석원, <2인조>

나는 과학교육과 99학번과 법학과 00학번을 두루 거쳤다. 일명 반수라는 것을 했다. 그런데 대학이 다른가 하면, 그렇지 않다. 결론적으로만 보면 대학 내 전과라는 제도를 이용하면 되었을 텐데, 입학금을 2번이나 내고 동일한 대학에 2번씩이나 입학한 것이다. 아주 열혈 동문이 나셔서(?) 어려서부터 입학금으로 나마 기부 아닌 기부를 실천한 셈인데, 부모님이 이를 사전에 아셨더라면 등짝 스매싱 몇 번을 당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그러나, 물론 처음부터 동일한 대학의 반수를 목표로 한 것은 당연히 아니었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이제와 '그래서' 좋았던 점을 생각해보니, 99학번과 00학번 '친구'들을 두루 사귄 점(한 살 차로 '언니'라고 불리는 것이 촌스럽다고 생각해 '친구'가 되었다), 이미 학교 구석구석이 익숙해서 교양과목을 주로 듣는 1학년 때 건물 간 지름길을 잘 알고 있었던 점, 사정이 그렇다 보니 고등학교 동문회 '회장'이 되어 다양한 전공을 가진 선후배들과 어울려 여러 '즐거운 경험'들을 도모할 수 있었던 것 등이다.


99학번 기숙사에서 만난 친구 중에 학과는 달랐지만 '정서'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밴드를 좋아했었다. 그렇게 '언니네 이발관' 음악을 처음 알게 됐고, 가끔 대학 축제나 공연장 같은 곳에서 만나기도 했던 것 같다.


그 친구와는 연락이 끊어진 지 한참 되어 소식을 알지 못하지만, 아마 교수나 연구원이 되어 있을 것 같다. 언니네 이발관의 보컬 '이석원'이 '작가'가 되어 첫 산문집 <보통의 존재>를 내었는데, 그 책이 무려 몇 년 동안 베스트셀러였다. 그래서 처음 읽게 되었던 것 같다. 솔직하고 진솔한 그의 글은 단숨에 읽히고 뭔지 모를 묘한 매력이 있었다.


두 번째 산문집 <언제 들어도 좋은 말> 역시 빠져들어 읽었는데, 그 글은 분명 산문으로 알고 읽었는데 '소설일지도 모를' 또는 '소설이 일부 섞여 있는' 글이어서 다 읽은 뒤 조금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난다.(아, 설명할 방법이 없네. 이직접 읽어 봐야 그 느낌을 안.) 여담으로, 몇 년 전 석촌호수 플리마켓에 참여해 내 중고 물품(책, 액세서리, 신발)을 판매한 적이 있었다. 물품을 가지런히 정리해 놓고 오픈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베라는 남자>, <살인자의 기억법> 등 유수한 유명 작가들의 책들을 제치고 오픈하자마자 1순위로 팔린 책이 바로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었다.


얼마 전 이웃 작가님의 브런치에서 이석원 작가의 신간 산문집 <2인조>가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반가운 마음에 책을 주문해 두었다가, 여유가 생긴 이번 주에 읽게 되었다. 역시 홀리듯 빠져드는 글이었다.


말하듯이 쓰는 문체, 집요하게 솔직한 일기 같은 글.

강박적이다 싶을 정도로 자신을 관찰해서 이토록 솔직하게 쓴 글이라니. 나라면 이렇게까지 솔직한 글을 쓸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물어보니, 아마 어렵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번 책에서도 공감되는 문장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공유합니다.


모두 따뜻한 연말 되시기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나이가 들수록, 타인이 나를 구원해주길 기다리기보다 나 자신과 둘이서, 다시 말해 스스로 삶을 헤쳐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더 중요하고 좋은 자세라는 생각이 든다. 내 안에 또다른 내가 있는, 우리는 누구나 날 때부터 2인조 아닌가.



누군가를 두려워하는 것과 존중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

그 어떤 순간에도 '나'보다 중요한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


비록 그게 가족이나 다른 어떤 중요한 존재라 할지라도.



행복은 어디에서 올까.

편안함은 어디에서 오며

나를 사랑하는 법은 무엇일까.


지금 그 모든 것에 대한 나의 답은 하나다.


솔직함에서 온다.

솔직할 수 있는 자유로부터.


남의 시선으로부터의 자유로부터.

나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는 용기로부터.



나는 그때 알았다.

정말로 좋아하면 고민하지 않게 된다는 걸.




중요한 건 내 편을 만드는 거지

나를 믿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려 애쓰는 게 아니라는 것.


언제나

오직 나를 위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




내 나이쯤 되면 의사로부터 언젠간, 살고 싶으면 밀가루와 설탕을 끊으라는 말을 듣는 순간이 온다. 하지만 밀가루와 설탕을 끊으면 살 이유가 없어지는데, 살기 위해서 그것들을 먹으면 안된다니 이 딜레마를 어쩌면 좋을까.




이석원의 인정 매뉴얼 (*제가 개인적으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1. 인정받는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2. 나를 평가해줄 사람은 내가 고른다.

3. 타인의 평가는 내가 재평가한다.

- 그가 나를 평가할 자격이 있는지, 그의 판단과 안목이 내가 신경쓰고 귀담아들을 가치가 있는 수준(내용)인지, 아닌지를 나도 따져보는 것이다.

-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남을 평가하고 그때마다 자신이 일종의 심사위원이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남을 평가하는 건 사실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는 걸 많이들 잊고 산다.

- 부정적인 평가에 가산점을 주는 우를 범하지 말 것.

4. 더 살펴보면

-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나와 비슷한 허물이 있고, 때로는 약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내 자신에게 좀 더 관대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 나는 어느 정도 회복했고 언젠가 다시 또 그 인정의 무대에 설 텐데, 그때 가서 결과가 좋지 않아 무너진다 한들, 그걸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겨내는 것이 성숙의 척도인 양 여기지는 않을 거라고.




행복해지기 위해, 다시 말해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가장 피해야 할 것은 남과 나를 비교하는 것이다. (중략) 따지고 보면 말이 안 되는 것이, 비교가 되는 처지에 놓이는 건 늘 나 한 사람인데 비교의 대상이 되는 건 온 세상 잘났다는 사람들은 다 해당이 되니, '나'는 열등한 존재에서 벗어날 날이 없는 것이다.




디제이. (중략) 우린 모두 특별하다는 멘트로 마무리를 한다. 그런데 모두가 특별하다는 말은 논리적 모순이다.(중략). 그런 욕망은 평범한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것인지 모르겠으나 살면서 나는 다른 사람과는 달랐으면 좋겠고 어딘가 특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나를 얼마나 지치게 했던가. (중략) 그런 평범성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담담함이 내게 있었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소중히 여기던 기억은 오래도록 내 자신마저도 소중하게 만든다.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 사람은 어른이 아니라고 했다.

어른이 되고 싶다는 건 결국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얘기이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건

이 삶을 잘 살아보고 싶다는 얘기가 아닐까.


나는 잘 살아보고 싶었다. 한 번뿐인 이 삶을.

진짜로 잘.



참, 언제나 그렇듯 이 모든 것들은 저 자신에게 하는 말들입니다. 아시죠? 조언이란, 남의 상황을 빌려 자신에게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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