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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주 Oct 26. 2020

힘을 많이 줬던 한 주의 주말

확실히 힘을 많이 준 한 주를 보내면 번아웃된 것 같은 신호들이 하나 둘 찾아온다. 대표적인 것이 평소에 잘 해오던 일들을 하지 않고 미루고 싶은 마음이다. 이번 주말에 청소를 전혀 하지 못했다. 바닥에 머리카락들이 보였지만 청소기조차 돌리지 못했다. 원래 토요일에 했어야 했는데 그 날 동생이 면접을 보러 갈 때 입을 옷을 봐주러 점심에 나갔어야 했고 나가기 전 게으름 피우고 넷플릭스를 보다가 졸려서 자는 걸 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요일은 늦게 일어났다. 눈은 떴는데 침대 밖을 나오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날 해야 하는 일들이 있었다. 그 일을 최대한 미룰 수 있을 때까진 미루고 싶어서 조금만 더 자면 안 될까? 조금만 더 누워서 쉬다 일어나면 되지 않을까? 간을 보다가 루틴 할 시간을 훌쩍 지나 9시 반쯤 아침 루틴을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아침에는 완전히 늦었구나 생각했는데 9시 반 정도에 루틴을 시작한 거면 예전에 무언가 하기 싫어 미루던 시절과 비교해서 놀랍게도 부지런함에 가까운 수준이긴 하다. 예전엔 정말 오후 3시까지 침대 밖을 안 나가고 뒹굴거리다가 겨우 나와서 이러다 주말이 끝나겠다 싶어 대충 준비하고 카페를 나가서 두세 시간 무언갈 하다 들어오면 그나마 생산적인 주말이었는데 말이다.


지금은 아침 루틴을 하면서 다시 정상적인 패턴을 찾고 최소한의 일들을 끝내고 오후에 할 일들을 조금이라도 더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번 아웃된 감정들이 한 번에 회복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면 번아웃이라고 하지도 않았을 테니...) 하지만 저녁엔 책도 보고 운동하고 이렇게 저녁 루틴도 정상적으로 시작해서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은 일요일 저녁)


사실 나는 원래 내 삶이 통제가 안되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고 그런 생각들에 스트레스를 받은 지 오래여서 루틴을 하나둘씩 갖추게 되면서부터의 하루하루가 처음에는 너무 신기하고 신선하고 어마어마한 감동이었다. 드디어 내 삶을 통제하고 관리하고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살 수 있는 어떤 실마리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사실 이 루틴의 효과는 일상적인 순간보다 힘든 순간에 더 빛을 발하는 것 같기도 하다. 리뷰에서도 힘든 순간 루티너리를 우연히 쓰게 되면서 어질러진 공간과 마음이 정리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공감된다고 생각했는데 주말에 루틴을 하면서 그게 어떤 기분인지 조금 더 체감이 되었다. 주말 동안 내가 루틴조차 하지 않고 하루를 보냈더라면 주말을 헛되이 보낸 것에 대한 죄책감이 더해서 분명 기분이 더 안 좋아지거나 번아웃 상태가 심해졌을 것이다. 


사실은 해야 하는 일을 온전히 다 끝냈더라면 조금 더 기뻤겠지만 목표한 것의 50% 정도밖에 하지 못한 것 같다. 이건 루틴과는 별개의 이야기인데 일정의 긴박함과 그럼에도 실현 가능성 있고 합리적인 계획을 잡는 것 사이의 조율이 아직 내게는 어렵고 잘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주말에 할 일을 너무 크게 잡은 것도 있고 (그게 부담으로 다가온 것과) 주어진 시간에 비해 집중하는 시간이 적기도 했었다. 그런 점에서 기분이 최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이렇게 회고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나서 할 저녁 스트레칭과 명상도 마찬가지로 지칠 때 건너뛰기 바빴던 이런 작은 행동들이 사실은 내가 위안을 받고 회복하는데 도움을 준다.


지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었을 누군가에게도 따뜻한 차 한잔과 혼자 조용히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이 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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