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나 왜 살고 있지
나는 오늘도 살고 있다. 오늘도 살고 있다는 말이 어색하게 들리는 거 보니 내가 살고 있다는 걸 잊고 살 때가 더 많은가 보다.
살아있다는 걸 체감하는 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살아 있다는 것은 내가 존재한다는 말이지 않을까?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했지만 그의 말에 의하면 이성적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을 알아채야만 존재를 알 수 있는 것이다.
평소에 '아 내가 생각을 하고 있군, 고로 존재하고 있군 '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내 존재를 알아야 하는 걸까? 그런 거 몰라도 살면 되는 거 아닐까 잠깐 다른 길로 빠지다가도 나는 뭘까? 나는 왜 살고 있는 걸까? 하는 질문과 함께 수시로 존재에 대한 물음이 든다.
예전에는 내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를 봐주는 누군가 나와 소통을 하고 있는 누군가 나를 비춰주는 누군가로 인해 내가 존재하게 되는 것 아닐까? 나는 완전한 존재가 아니구나 생각했던 것 같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타인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주변에 누구라도 있지 않은 게 두려웠다.
크면서 사람들에게 비친 나의 모습이 진짜가 아니구나를 깨달았다. 내가 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보이는 모습이 또는 사람들이 보는 모습이 진짜 나 같지는 않았다.
스스로를 더 되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 번은 복싱을 배우러 도장을 갔는데 체력이 워낙 안 좋은 편이라 몇 개월은 체력 단련을 했었다. 어느 정도 체력에 자신감이 붙고 체급이 비슷한 사람과 스파링을 하게 되었는데 자신만만했지만 많이 맞았다. 그런데 링 안에 있으니 도망갈 곳이 없었다. 도망갈 수 없으니 선택권이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덜 맞을까 고민하는 사이 내 모든 신경이 살아남아야겠다는 데 집중하고 있는 걸 느꼈다. 그때 나는 정말 살아있었다.
그런데 이런 느낌.. 얻어맞으면서 느끼고 싶지는 않다. 내가 느낀 살아있음은 존재에 대한 대답보단 조금 더 본능적인 것 같다.
결론은 나는 오늘도 살아있고, 살아있다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