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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 YI NA Dec 03. 2022

세월이 가면_박인환

단상


 아침에 일어나 보니 베란다 밖으로 눈이 쌓여있었다.

올해 눈은 참 빨리도 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시린 창백함으로 퍼져가는 것을 느꼈다. 제 영역도 모르고

신체의 어느 곳이든 급속도로 침범해버리는 암세포처럼

마음 곳곳이 고통으로 침식되어 갔다.


나는 웬만하면 추억의 달콤함은 느끼지 않으려 한다.

특히나 사랑했던 기억에서 오는 그 행복한 기억은...   

자꾸만 틀어보는 카세트테이프처럼 마치 지난 향수 어린

유행곡을 찾듯이 사랑이 그렇게 마모되어 가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눈은 녹으면 물이 된다. 그리고 물은 언젠가 증발한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속은 눈을 떠올리고 있다. 눈이 내렸을 때의 그 수려한 설경, 벅찬 기분이 드는 찬 공기, 너와 나의 그 순간 나눴던 대화들, 붉게 상기되어 있던 너의 볼, 그때 개봉했었던 영화...  어느 순간 마침내 찾아온 이별.


그리고 시간이 흘러 눈은 또다시 내린다.

그러나 추억은 가슴속에 없다.

오래된 빈 가처럼 황량할 뿐...


어느 소설에 구절처럼 사랑은 누군가의 존재에 강력히

침투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진실하고 열정적이었던 사랑은

오로지 그때 그 순간에만 존재할 뿐, 반창고를 붙이듯이

추억을 떠올릴 여유는 존재할 수가 없다. 메워지지 않는 자리는 잊히는 것이다. 다시 살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의미에서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 이란 시는

환상 시가 분명하다.


아무리 세월이 흐른 들 이름은 결코 잊어버릴 수가 없고,

그 입술과 그 감촉은 절대로 다시 떠올려지지 않을뿐더러

떠올리고 싶은 의지 보다 초라한 적막감만이

바람처럼 불어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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