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니 장애가 아니라 천재?
J가 소아과 전문의로부터 자폐증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예비진단을 받은 후에 의사의 권고대로 근처 데이케어 센터에 보내기 시작했다. 매우 걱정스러웠지만 당시 J는 아직 3살도 안 된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공격적인 행동으로 피해를 줄 가능성은 낮아서 다소 안심이었다. 하루는 데이케어에서 받은 일일 리포트에 J가 알파벳을 모두 알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여러 단어를 틀리지 않고 쓸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선생님들이 J가 천재성을 가지고 태어난 것 같다(maybe he is gifted)고 알림장에 쓴 적이 있다. 사실, J가 알파벳과 단어를 잘 아는 것은 그 당시 모든 관심사가 글자와 단어였기 때문이다. 그때 J는 영어는 물론이고 한글도 다 깨친 상태였으며, 또 다른 언어를 접했다면 바로 습득했을 것 같았다. 다소 느리다고 할까? 조기교육에 큰 관심이 없다고 할까? 암튼, 3세에 한글을 떼는 것이 한국에서는 너무도 평범하지만 3세에 영어 알파벳을 떼는 것은 캐나다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입장에서는 놀랄만한 일이었던 것이다.
서번트 증후군(savant syndrome)은 자폐스펙트럼장애(ASD)를 가진 사람 중에서 매우 드물게 나타나는 증상이지만 비범한 재능을 보여주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왔다. 자폐증의 일반적인 증상은 사회적 관계 결핍, 타인과의 의사소통 결핍, 반복적인 행동, 빛, 움직이는 물체 혹은 사물의 부분에 대한 집착, 소음을 극도로 싫어함, 정해진 절차를 고집하는 행동 등으로 나타난다. 자폐증은 증상에서 보이는 반복적인 행동으로 인해 강박스펙트럼장애의 일부로 간주되기도 했다. 일부 자폐인 중에는 드물게 미술, 음악, 기억력과 같은 분야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보여주기도 한다. 어디서 이런 능력이 나오는지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지만 현재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수행 중이다. 자폐증을 가진 개인은 한 가지 사물에 무한한 시간 동안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특정 객체에 대한 정보를 연장시킬 수 있어 일반 사람들이 동일한 시간 동안 집중할 수 없기 때문에 할 수 없는 일들을 해내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 결과 서번트 현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자폐 증세로 문제를 겪고 있음에도 자폐인들이 사실상 천재성을 가진 것이라는 인식을 갖게 하기도 한다.[1]
이 서번트 증후군의 원인으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능력이 있다면 바로 공감각(Synesthesia)이 아닐까 한다. 인간의 기존 오감은 자극과 반응이 일대일을 이룬다. 그러나 공감각은 하나의 자극에 대응하여 두 개 이상의 감각이 연합되어 인출되는 반응을 의미한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문학과 예술에서 주로 나타나는 경향을 보인다. 서구 근현대 문학, 가까이는 1920~1930년대 한국에서 활동했던 모더니스트들의 시들에서 흔히 보이는 공감각적 심상 등이 인문 예술 분야에서 보이는 공감각 현상의 적확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꼽는 작품인 김광균의 와사등에서, '피부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이라는 문장은 시각적 심상이 촉각적 심상의 형태로 전이되는 공감각적 현상을 잘 보여준다.[2]
공감각이 나타나는 이유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두뇌의 신경 연결이 정상인과 다르게 이루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정상인은 시각은 시각 처리 회로가 촉각은 촉각 처리 회로가 담당하는데 비해 이런 공감각을 소유한 사람들은 시각 처리 회로에 후각이 걸쳐 있고 청각 처리 회로에는 시각이, 시각 처리 회로에는 촉각도 함께 연결되어 있어 시의 표현처럼 '어두운' 시각적인 신호가 피부에 '스며드는' 촉각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즉, 공감각을 가진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기의 느낌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지만 일반인에게는 매우 신선한 느낌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공감각은 약물 복용이나 외상, 간질을 경험하거나, 시력이나 청력을 후천적으로 잃은 사람들에게서 간혹 발견되기도 하며, 이러한 사례들은 인지과학적으로 공감각을 설명하려는 이론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 이런 현상이 실제로 일어나면, 정상인은 직접 느끼지 못하는 새로운 차원의 감상이 가능한 것이다.
현재 약 10% 정도의 자폐성 인구 중에 서번트 능력이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천재적인 수학 계산, 방대한 기억력, 비범한 예술적, 음악적, 언어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시스템 관리자이자 자폐성 장애를 가졌던 게리 맥키넌(Gary McKinnon)은 2002년에 미군과 NASA의 컴퓨터 97대를 해킹했고 다수의 오류를 발견한 바 있다.[3]
우리가 자폐증을 언급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사람이 바로 레인맨(Rain Man)이다. 실제 레인맨의 주인공인 킴픽(Kim Peek)은 자폐증은 아니었으며, 좌우뇌를 연결하는 뇌량(corpus callosum)이 존재하지 않은 경우였다. 바로 이런 이유로 그는 책을 읽을 때 양쪽 페이지를 동시에 읽을 수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뇌량에 문제가 있으면, 언어 및 사회적인 상호작용에서 결손을 보인다. 가장 크게 나타나는 결손은 숙어, 속담, 아이러니, 풍자(sarcasm), 농담, 함축과 같은 문자 그대로가 아닌 표현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영어 사용자들은 "기다리는 자에게 모든 좋은 일이 생긴다 (all good things come to he who waits)"라는 속담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인내심을 강조하는 것임을 이해한다. 하지만 좌우뇌의 연결이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개인은 '기다리기만 하면 얻게 되는 모든 것이 좋다'로 해석한다. (이 해석이 더 그럴 듯 한 사람은 자폐증세가 있다고 볼 수도...) 양쪽 두뇌의 연결은 이처럼 글자 그대로의 해석을 피할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양쪽 두뇌의 연결이 부족할 경우, 엄격한 규칙과 반복이 필요한 세부적이고 국소적인 것에 뛰어난 집중력과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특징 중 일부는 자폐성 장애인에게도 보인다. 여기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ASD가 있을 경우 양쪽 두뇌의 연결이 제한되어 있어 뇌량의 연결이 완전하지 않은 개인에서 나타난 증상을 공유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4]
1. http://www.brainphysics.com/autism.php
2. https://ko.wikipedia.org/wiki/공감각
3. https://en.wikipedia.org/wiki/Gary_McKinnon
4. https://www.psychologytoday.com/blog/the-superhuman-mind/201303/the-brain-the-real-rain-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