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증 신약 임상실험
2014년 여름을 식혀주었던 '얼음 바가지 덮어쓰기(Ice Bucket Challenge)'를 기억하는가? 루게릭병(Lou Gehrig's Disease)으로도 알려진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ALS)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연구 기금 마련을 위한 캠페인이었는데, SNS를 타고 전 세계로 퍼진 행사였다. 왜 갑자기 ALS를 언급하는가 하면, 이 병에 특효약으로 알려진 리루졸(Riluzole)을 소개하기 위함이다. ALS에 관한 연구는 운동 신경 열화를 일으키는 글루탐산(glutamate)의 역할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 글루탐산은 뇌 속에 존재하는 신경전달물질 중에 하나다. 과학자들은 건강한 사람과 비교할 때 ALS 환자들의 혈청과 척수액에서 글루탐산 수준이 더 높게 나타나는 것을 발견했다. 현재 미국 식품의약청(FDA)이 ALS와 글루탐산 조절을 목표로 하는 약물 중에 유일하게 승인한 약은 리루졸뿐이다. 하지만 생존율에 큰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글루타민 과다가 ALS 발생의 유일한 원인이 아닐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전에도 신경세포(nerve cell)를 근육으로 유도하는 성장인자(growth factor)의 새로운 기능을 규명한 연구 결과가 미국의 저명한 학술지 '뉴런(Neuron)'을 통해 발표된 바 있다. 선행 연구를 통해 운동 신경단위세포(motor neuron)의 축삭(axon)이 정확하지 못한 근육의 표적에 연결하려 할 경우 이를 방해하는 물질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으며, 이 연구에서는 섬유모세포 성장인자(fibroblast growth factors ; FGFs)라는 물질이 신경세포의 축삭을 근육의 정확한 연결 위치로 유도한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전자가 네거티브 전략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포지티브 경로라는 상반된 특성으로 규정할 수 있다. 신경세포의 축삭이 표적에 연결되는 기작을 이해하게 되면 척수에 손상을 입거나 루게릭병, 척추 근육 위축(spinal muscle atrophy), 소아마비 등으로 정상적인 근육 운동이 불가능한 사람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는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또한 뇌에서 신경세포의 부정확한 연결망이 형성되는 현상은 지적 장애(mental retardation)나 자폐스펙트럼장애(ASD)에서도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들 질병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대처 방안을 마련하는데도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1]
2013년에 발표된 논문 "자폐성 장애아의 민감성을 치료하기 위한 리스페리돈(Risperidone)의 보조제로서 리루졸 사용: 이중맹검, 위약대조, 무작위 임상 실험"은 리루졸을 보조제로 사용하는 치료가 민감성과 같은 자폐증 아동의 관련 증상을 관리하는데 효과적임을 보여주었다. 또한 장기적인 효과와 안정성을 비롯하여 적절한 용량과 같은 추가 연구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바로 자폐증을 치료하는 약에서 언급한 바 있는 '적응 외 처방'의 한 예로 볼 수 있는 자폐증에 리루졸 사용 사례를 살펴보자.
과다한 글루타민이 존재하는 상태는 병태생리학적으로 자폐성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어 왔다. 리루졸은 글루타민을 조절하는 약제로서 신경을 보호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 많은 신경정신장애에 적용한 결과 긍정적인 효과를 보여 왔다. 이 연구는 이전까지 개발된 약물에 최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자폐성 장애아의 민감성을 치료하는데 있어 리스페리돈에 리루졸을 보조제로 사용하는데 따른 효과와 인내도(tolerability)를 평가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10주 동안 무작위, 이중맹검, 평행집단, 위약대조 임상 실험을 진행했다. 이 실험에는 5~12세의 DSM-IV-TR 기준을 충족하는 자폐성 장애아 중에서 비정형 행동 검사목록-지역사회(Aberrant Behavior Checklist-Community, ABC-C)의 민감도 점수가 12 이상이고 효과가 적어 다른 약물 사용을 중단한 집단이 참여했다. 실험군에게는 체중에 따라 매일 2~3 mg의 리스페리돈과 50~100 mg의 리루졸 혹은 위약이 10주 동안 투여되었다. 실험 전, 5주 차, 10주 차에 평가가 이루어졌다. 이 실험 결과 자폐성 장애아의 민감성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드러났지만 리스페리돈에 보조제를 추가하는 것은 식욕과 체중 증가를 상당히 저하시킨다는 것도 드러났다.[2]
2014년 봄, 온타리오에서 리루졸을 자폐증 치료에 적용하는 임상연구가 진행되었으며, 운 좋게도 참가할 기회를 가졌다. 임상연구는 "자폐스펙트럼장애 약물치료 연구"라는 제목으로 런던에 위치한 웨스턴(Western) 대학과 런던보건과학센터(London Health Sciences Centre) 산하 아동병원 의사들이 새로운 약물인 리루졸을 이용하여 아동 및 사춘기의 자폐성 장애아를 대상으로 효과를 검증하기 위해 진행한 것이었다.
이 연구에 참여하는 4개월 동안 수차례 아동병원을 방문해야 했다. 매 방문마다 2시간에 걸쳐 관찰과 인터뷰가 진행되었으며, 그때마다 피검사도 이루어졌다. 대부분의 피검사를 위한 채혈에서 J는 문제행동을 보이지 않았지만 다운타운의 낡은 건물에 위치한 클리닉에서 그만 일을 내고 말았다. 간호사가 주사 바늘을 찌르려고 할 때, J가 갑자기 공격적으로 바뀌면서 목근처를 할퀸 것이다. 그 간호사는 매우 화를 내면서 채혈을 거부했다. (그냥 해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조금 긁힌 것 때문에 처치를 거부하는 것이 좀 의아했지만 문화적 차이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어찌 생각하면 고소를 안 당한 것이 다행인 것 같기도 하다.) 어쩔 수 없이 다른 클리닉을 찾아 피검사용 채혈을 해야 했다.
위에 언급한 논문에 나온 보조제로서 연구 사례와 달리, 이번 임상실험은 전적으로 자폐성 장애아에 대한 리루졸의 효과에 초점을 둔 것이었다. 그 전까지 J는 자폐성 장애를 치료하기 위한 어떤 약도 복용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 연구를 통해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래서 첫 번째 약을 받았을 때, 우리는 그것이 위약이 아닌 진짜 리루졸이기를 바랬다. 하지만 실험 자체가 이중맹검 위약대조 실험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물론이고 의사와 연구에 참여하는 스탭도 J가 진짜 리루졸을 복용하는지 여부는 알지 못했다. 무엇보다 J는 정제로 된 약을 먹어본 적이 없어서 알약을 먹어야 한다는 점을 걱정했는데, 의외로 약을 잘 먹었다. 크기가 작아도 걱정이 되었는데, J는 약을 꼭꼭 씹어서 먹었다. 이상한 맛이 날텐 데도 그냥 조금 찡그릴 뿐 별 문제가 없었다. (역시 감각이 둔하네? 그런데, 자기가 싫어하는 맛은 귀신같이 찾아내는 걸 보면, 미각도 매우 선택적인 것 같다.) 기대반 걱정반으로 약을 먹인 첫날밤, 다행히도 J는 늦게까지 깨어 있지 않고 투정도 없이 잠들었다. 그리고 아침까지 깨지도 않고 잘 잤다. 우리는 매우 마음이 놓였다. '그게 진짜 리루졸이 맞나 보네...'
사실, 리루졸은 지금도 복용 중이다. 밤이 낮처럼 바뀌는 혁신적인 효과를 보인 것은 아니지만 J의 행동이 많이 진정되고 특정 요구에도 보다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무엇보다 잠을 잘 자게 해주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다면 약값인데, 한 알에 10 달러(약 만 원)가 넘는다. 그래서 임상실험에서처럼 매일 50 mg씩 먹이지는 않고 격일 혹은 좀 더 간격을 두고 먹이고 있다. 혹시라도 글루탐산을 많이 섭취한 것 같으면 좀 더 자주 먹인다. 아직까지는 계속해서 잘 자고 성질 덜 부리고 말을 잘 듣는 것 등의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볼 때, J의 경우 자폐증의 유발 원인이 과다한 글루탐산 때문일 것이라는 심증이 더 강하게 들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지켜봐야겠지만 현재로서는 MSG를 비롯한 글루탐산 제거 식단을 시도하고 과도한 글루탐산을 제거하는 약물을 부가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J에게는 가장 효과적인 치료인 것 같다. 그런데, 말이 쉽지 식품회사들이 자진해서 빼주는 기적이 있으면 좋겠지만 MSG 제거 식단은 정말 어려운 도전이다!
1. http://www.salk.edu/news-release/new-roles-for-growth-factors-enticing-nerve-cells-to-muscles/
2. Ali Ghaleiha et. al, Riluzole as an Adjunctive Therapy to Risperidone for the Treatment of Irritability in Children with Autistic Disorder: A Double-Blind, Placebo-Controlled, Randomized Trial Pediatr Drugs (2013) 15:505–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