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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직장인이지우 Feb 02. 2024

나의 ADHD와 강박의 시작

상담일지 #2

   

 2022년 7월 22일, 9회기 심리상담을 다녀왔다. 8회기 상담에서 지각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선생님은 최후의 수단이라며 시간표를 만들어할 때마다 줄을 긋는 숙제를 주셨다. "지우 씨의 강박을 여기에 사용해요!"


 이렇듯 7번의 상담을 하면서 지각과 증상에 대한 조절을 해결하기 바빴다. 그래서 가정사나 다른 이야기는 아직 선생님과 이야기 나눈 적이 없었다. 이제부터라도 이야기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이 먼저 말을 꺼내셨다.


상담선생님 : 지우 씨의 강박과 불안이 어디서 오는 것 같아요?

나 : 음... 가정환경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아빠가 알코올중독인 거 같아요. 엄마는 ADHD 이신 거 같아요. 정리를 못하시고 아침에 준비가 늦게 하셔서 아빠가 술 먹으면 그거에 대해 욕설을 하면서 화를 냈어요. 직장 동료나 친인척에 대해서 하소연할 때도 있었고요. 엄마도 저도 힘들어서 외할머니 댁에서 자고 온 적도 많았어요. 엄마랑 같은 방을 썼기 때문에 제 생활이란 게 없었어요. 고등학교 때는 기숙사를 들어갔고요.

상담선생님 : 아이고... 힘들었겠어요. 아버지가 술 안 먹을 때는 괜찮으시고요. (네) 술 먹고 취해서 사람이 바뀌는 게 아니에요. 평소에도 원래 잘 화내고 그러는 사람인 거예요. 다만 술을 먹고 표출되는 거죠. 아버지도 쌓인 게 많으신가 봐요.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으셔서 가족을 힘들게 하신 거 같아요. 지금도 술을 많이 드세요?

나 : 지금은 따로 살아서 자주 안 봐서 잘 모르겠지만 이제 나이도 있으시니까 술은 조절하신다는 거 같은데 술버릇은 여전하죠.


 내가 현재 느끼는 불안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나 : 생각해 보면 제가 작년에 회사를 다닐 때도 사실 무척 불안해 보였던 거 같아요. 여자 부장님들이 무척 신경 써주셨거든요. 차 타고 5분 거리의 사무실 가는 걸 못해서 길을 알려주실 정도였어요. 저를 부르면 "네?!" 하고 놀라기도 하고 긴장을 계속하고 있었어요. 불안한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까 지금까지도 영향을 받는 거 같아요.  약물 치료하면서 컨디션은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까지도 회사에서 상사분들이 쾅! 하고 나가시거나, 한숨 쉬시거나, 기분이 나빠 보이시면 저도 기분이 가라앉고 짜증이 나요.

상담선생님 : 지우 씨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지우 씨가 왜 이렇게 검사도 받고, 병원도 가고, 상담을 하러 왔는지 알 것 같아요. 아빠는 알코올 문제가 있고, 어머니는 ADHD가 있으셔서 적절한 대처를 못하셨을 테고 만약 지우 씨의 ADHD가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에게서 온 거라면 지금보다 더 나은 환경이었을 거 같아요. 그래서 저는 지우 씨가 엄청 대견해요. 얼마나 대견해요. 스스로 돈도 벌고, 심리검사도 하고, 병원도 가고 이렇게 상담도 하러 왔잖아요. 모닝콜하는 것도 엄청 잘했고. 지우 씨 모닝콜 덕분에 아침마다 잘 일어나고 있어요.

     

약물 치료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이번에 아빌리파이를 추가했는데 컨디션이 굉장히 좋아졌다. 일상생활도 시간표와 약 덕분에 정상적으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상담선생님: 약물이랑 상담치료가 도움이 되는 거 같아 다행이에요. (강박장애는 치료가 굉장히 오래 걸림)  이제 불안과 강박행동이 문제인데...

나 : 맞아요, 지금은 컨디션이 좋지만 아직 강박사고가 남아있고 언제 다시 불안할지 막연하게 두렵더라고요. 다시 사람 많은 곳에 가게 되면 시선을 의식하고 불안할까 봐요.

상담선생님:  나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기억해야 해요. 이런 2차 불안을 잡아야 해요. 그래서 지우 씨 마인드컨트롤이 중요해요. 다시 말하지만 지우 씨 정말 대견해요.         


 이날 상담하며 놀라운 점은, 이야기할 때 차분하게 정리가 되고 내가 산만하지 않은 게 느껴진다는 거였다. 약이 추가되고 현실 세계에 사는 것 같더니 콘서타 효과도 굉장히 좋았다. 이날 상담은 정리하자면 나의 ADHD와 불안, 강박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가정사에 대해 조금 이야기했지만 선생님과 웃으며 기분 좋게 상담을 마무리했다. 상담선생님은 항상 잘 들어주시고 대견하다고 칭찬해 주신다. 모닝콜까지 할 정도로 신경 써주셔서 늘 감사하다.     


 2주 후 상담하러 간다. 벌써 10회 차 상담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가정사와 불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생각을 하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지만, 내 안에 쌓인 작은 불씨들을 식힐 필요가 있다는 걸 아니까 솔직하게 이야기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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