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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직장인이지우 Jan 26. 2024

정신과를 가야 한다는 신호

나의 골든타임은 사실 끝나지 않았다

    

 신체적인 폭력만 폭력인가? 아빠는 술을 먹으면 언어폭력을 했다. 할아버지가 계셨을 때는 매일 할아버지와 싸웠다. 할아버지가 요양원에 가신 이후에는 엄마에게 화를 냈다. 그럼 엄마가 없으면 그 화는 누구에게 가겠는가? 당연히 자식들이었다. 엄마가 외출을 했을 때 아빠는 의처증처럼 엄마를 찾았다. 자다가도 깨워 엄마에게 전화를 걸라고 했다. 엄마가 집에 있을 때는 꼴도 보기 싫다며 욕하고 집을 나가라고 했다. 아빠는 술을 먹지 않으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됐다. 당연히 술을 거의 매일 먹었기에 정상적인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 나는 스스로가 우울한지도 모른 채 커갔다.


 중, 고등학교 때 생각해 보면 깊은 우울 속에 잠겨있었다. 정신과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나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어린아이였다. 주말과 방학에는 생활패턴이 무너졌다. 아빠가 혼자 중얼거릴 때면 나는 이불속에 파고 들어가 이어폰을 꼈고, 나만의 세상에 빠져들었다. 밤 낮이 바뀌고, 오후 늦게 일어나 누워만 있었다. 점심을 제대로 챙겨 먹었을 리 없었다. 그러나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풀었으니 살이 빠질 리 없었다. 살이 찌고 자존감은 더 낮아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나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일기를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시의 일기장에는 우울한 글들을 많이 썼다. “감기 걸려서 죽고 싶다” 같이 말이다. 병원을 가고 싶어도 가지 못했고, 상담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다. 성인이 되면 정신과를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독립을 하면서 잠시 괜찮아진 듯했었고 나는 가지 않았다. 내가 엄살을 부린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로 왜 병원을 왔냐는 듯한 눈빛을 받을까 봐 무서웠다. 그러는 사이 나는 더 감정을 잃어갔다. 정신과를 가야 하는 신호는 언제나 있었다. 하지만 괜찮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몰랐다. 그 우울과 불안이 너무나도 익숙했다. 주요 우울증상이 찾아와서야 나는 심리센터를,  정신과를 찾아갈 수 있었다.


 언제 정신과를 갔었어야 했을까? 누군가를 살릴 때 골든타임이 있듯이, 우울증에도 골든타임이 있다면 나는 진작에 끝난 건 아닐까? 그럼에도 나는 정신과를 찾아간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어쩌면 골든타임이 생각보다 길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힘들면 도움을 받아도 된다. 아니,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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