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주혜 Aug 18. 2023

네일숍에 다녀왔습니다

[연재] 인사의 뒷모습

카페 거리는 들어봤어도, 네일 거리라는 말은 그날 처음 들었다.


패션을 잘 알지도 못하고 멋지게 소화하기 위한 역량도 부족한 나는 그저 패션이란 나와 잘 어울리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수준에만 그쳐있다. 유행이 어떠한지도,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퍼스널 컬러도 잘 알지 못한 채로 지나갈 뿐이다. 이렇게 패션에 도무지 관심이 없는 나도 한 가지 관심을 두고 꾸준히 관리하는 영역이 있는데, 바로 나의 손톱이다. 손톱 위에 화려한 그림이나 보석을 채우는 것보다 나는 깔끔한 원톤을 지향한다. 이렇게 나는 네일 취향이 확실해서 네일숍에 가서도 고민이 길지 않다. 어차피 계속해서 관리를 받을 거니까. 이번에 선택한 컬러가 마음에 안 들었으면 다음에 또 하면 된다. 손톱은 자라니까, 이번에 받은 관리가 마음에 안 들면 조금 더 자라난 다음에 다시 새롭게 컬러를 바꾸면 된다. 세상 고민 없이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고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것이 네일숍 방문이다. 


언젠가 한 번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터덜터덜 동네 네일숍으로 향하는 나의 꼬락서니를 보고서는, 손톱만 예뻐지면 뭐 하나, 네일숍에는 왜 가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네일숍에 다녀온 나의 마음은 한결 기분이 좋다. 내 손이 예뻐졌기 때문이다. 네일숍에 다녀온 그날 오후 나는 미용실보다 네일숍에 자주 가는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그 생각을 글로 옮기려는데, 문득 드는 생각이 아마도 타자기 위해 올려진 나의 손이 만족스러웠으면 하는 마음에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람을 자주 만나지 않고, 고동이와 산책을 하거나 헬스장으로 운동을 가거나, 일과 중에 남편이 보고 싶어 남편 사업장에 잠깐 가 보는 일을 제외하고는 밖으로 나가지 않으니 굳이 엄청나게 외모를 꾸며야 할 이유도 잘 찾지 못한다. 어떤 이들은 자기만족을 위해 예뻐지려 한다는데, 그렇게 따지고 보면 나는 무슨 자신감으로 내 외모에 만족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굳이 더 예뻐져야겠다는 욕심. 그 동기가 잘 서지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예쁜 외모 덕분에 충분히 덕을 보고 자랐다면 그 필요성을 느꼈겠지만 외모를 칭찬했던 사람들이 주변에 없었기에 내 인생에서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무튼 서른이 훌쩍 넘은 지금도 나는 얼굴로 먹고사는 건 아니니까, 우리 고동이와 남편에게만 예쁘면 그만 아닌가 싶은 생각이 지배적인 것 같다.


내가 꾸준히 다니고 있는 네일숍 사장님과도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소위 '자기만족'에 관한 이야기다. 사장님이 봤을 때, 네일숍에 오는 사람들의 유형은 딱 두 부류도 나뉜다고 한다. 먼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관리의 끝판왕인 사람들, 두 번째 유형은 자기만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첫 번째 유형의 사람들은 손톱이 관리의 마지막 단계로 오는 사람들이고, 두 번째 유형의 사람들은 손톱만 관리하는 사람들인데, 굳이 이 두 부류의 사람을 나뉘자면 전자는 타인의 시선이 꽤 중요한 사람들이고 후자는 타인의 시선을 좀 생각해줬으면 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물론 중간에 어중간하게 위치한 사람들도 있다. 몇 년 동안 숍을 운영하다 보니, 숍에 입장하는 모습만으로도 이 사람이 전자의 사람인지. 후자의 사람인지 저절로 알게 됐다고 하셨다. 사장님의 언변이 너무 재밌어서 관리를 받는 내내 웃으면서 이야기했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득 생각했다. 무엇이 더 좋은 모습일까.


아름다움의 기준은 시대와 역사에 따라 바뀐다. 내가 어린 시절만 하더라도 네일숍은 어떤 도시에도 없었다. 대형마트에 매니큐어가 전부였을 뿐이고, 젤네일 등은 전혀 없었던 터라, 매니큐어를 바른 뒤 호호 손톱에 바람을 불어 손톱에 바른 매니큐어가 번지기 전에 굳기를 기다려야겠다. 물론 큐티클 제거도 하지 못했다. 집에서 하는 네일관리는 지저분한 손톱에 그저 색깔만 올려놓기 급급한 결과물이었고, 그러다가 누가 어깨를 툭 잘못 치기라도 하면 아세톤으로 지우고 다시 매니큐어를 발라야 했다. 나처럼 수전증이 있는 사람들은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오른손으로 왼 손톱을 다 바르면, 문제는 그다음 왼손으로 오른손톱을 발라야 하는데 엄지손톱에서 검지손톱으로 넘어가다가 이미 망해서 왼손만 끝내고 말았던 경우도 많았다. 매니큐어 시절에는 손톱까지 관리하는 사람들은 지극히 적은 숫자에 불과했는데, 요즘은 발톱까지 관리하는 시대니, 자기만족, 자기 관리의 영역에 대해 그 범주를 논하자면 조금 더 긴 이야기가 필요할 것 같다. 앞으로 미래의 몇 년. 자기만족과 자기 관리,  그로 인한 아름다움의 영역이  어떻게 또 변모하게 될까. 그 가운데서 새로운 자본주의의 흐름이 생기고 미의 기준이 세워지고 언론과 미디어에 노출되는 아이템이 달라지게 될 것이다. 유행은 돌고 돈다지만 새로운 아이콘을 찾는 대중들의 열망은 끝이 없을 테고, 자기만족과 관리로 시작한 말들은 또다시 불평등과 전에 보지 못했던 위화감을 전달할 것이다. 


내가 다니는 네일 숍은 네일거리라 불리기에는 조금 어색한 곳에 있다. 그러나 한 블록 더 들어가면 우후죽순처럼 네일숍들이 즐비해 있다. 입간판들은 손과 발 사진으로 도배가 되어 있고, 현금가로 하면 더 싸게 해 준다는 문구들도 어지럽게 쓰여 있다. 작은 손톱에 멋진 그림을 완성하는 네일숍 직원들의 솜씨를 보고 있으면 그야말로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가도 또다시 손톱은 자라고 사라지고야 말 그림이라는 사실에 조금 아깝고 아쉬운 마음도 든다. 아니, 어쩌면 요즘 같은 흐름대로라면 길게는 3주 치 분량으로 그림을 그렸다가 지워버리는 네일숍에서의 그림들이 가장 실용적이고 의미 있다 여겨지는 그림일지도 모르겠다. 마치 새로운 시장에 모두가 다 뛰어들어 화려한 모습으로 경쟁을 하지만 결국 언젠가 사라지거나 미의 기준이 변해버려 소용없고 부질없는 일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일단 뛰어들고야 마는 자본주의 시장에서의 당연한 논리가 나는 종종 불편하다. 유명인을 등에 업고 일단 팔아보는 게 중요하지 않느냐, 하는 사람들의 유혹에도 그렇죠.라고 대답하는 나 자신이 늘 아쉽다. 자기만족과 자기 관리의 간극에서, 타인의 시선과 내 삶에 대한 진지한 고찰. 그 사이에서 우리는 얼마만큼 저울질을 하고 있는가. 그런 복잡한 일들 따위는 '너나 하세요'라는 시선이 있어도 우리는 이 일을 반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내 삶에 펼쳐질 위기의 순간에 그동안 반복한 나의 단단한 가치관이 또다시 나를 이끌어갈 것을 믿기 때문이다. 다시 반복되지 않을 오늘은 언제나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손톱 끝까지 변하지 않는 아름다운 마음으로 자신만의 세상을 채우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그저 많아졌으면, 그들이 더욱 단단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우리 손은 얼굴과 같아서

사람마다 다르고 

세월의 깊이에 따라 

모양도 조금씩 달라집니다. 

어느 날 문득 설거지를 마친 뒤 장갑을 벗었는데요.

젊은 날 내 손이 이보다는 조금 예뻤는데,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손은, 우리가 인식하지 않는 모든 순간에도 바쁘게  움직이죠.

그래서 가끔 이 - 손을 자세히 바라보면

나도 모르는 상처가 있기도 하고

어느새 세월을 실감하게 하더라고요. 

지난날 나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나의 손이 보여주기도 하는 것 같아요.

언제나 무심코 일하고 있는 나의 손, 그리고

서로의 손.

우리 때로는 함께 잡아주며 

따뜻한 말 한마디도 나눠보면 어떨까요?




연재 중인 <인사의 뒷모습>은 

지난날 라디오 방송 오프닝으로 썼던 글에 더한 에세이입니다.


이전 04화 사랑보다 사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