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인사의 뒷모습
누구나 아는 거기가 있다. 어느 지역에나 존재하는 만남의 장소. 내가 학창 시절을 보냈던 작은 도시에서는 중앙 시내에 있는 농협 앞이 만남의 장소였다. 친구들과 만날 땐 물론이고 학교에서 야자를 하지 않고 합법적으로 저녁 약속으로 부모님을 만날 때에도 그곳에서 만났다. (예전엔 야자를 빠진다는 건 불법과도 같은 일처럼 여겨졌다.) 대략 시간을 정한 후 농협이라고 하면 누구든 그곳에서 일단 기다렸고 한참이 지나도 만나기로 한 사람이 오지 않으면 그제야 전화를 하는 식이었다. 퇴근 시간 무렵에는 농협 문이 굳게 닫혀 있는데도 그 앞에 사람들이 서 있었고, 당시엔 스마트 폰도 없어서 그저 의미 없이 폴더 폰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도 농협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린 적이 있다. 농협 앞에서의 만남은 대체로 기대되는 만남이었던 것 같다. 그 기다림도 괜찮았던 걸 보면 내 어린 시절 만남의 장소였던 그곳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도 좋은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지 않을까 싶다.
'만남의 장소'라는 존재는 당시 우리 삶을 꽤 간편하게 만들어줬다고 생각했다. 어디라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지도를 펼치지 않아도 되고, '거기에서 봐' 한마디면 소통이 되니까. 말이 필요 없어서 좋은 곳. 그곳이 만남의 장소였는데 지금 나에게 만남의 장소란 없다. 그렇다고 지금 누군가를 만날 때 불편해진 건 전혀 아니다. 장소를 알려주기 위해 자세한 설명을 하지도 않고 장황한 말을 늘어놓지도 않는다. 링크 하나만 톡으로 전송하면 끝. 시간 맞춰 가면 되고, 늦으면 연락하면 되니까 기다릴 필요도 없다. 스마트폰은 멍 때리는 시간을 허용하지 않는다. 인스타그램 릴스만 몇 개 보고 있으면 시간이 금방 가고, 약속시간이 좀 지났어도 지루할 틈이 없으니 괜찮다. 말을 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약속 장소에 도착하는 건 변함이 없다. 그러나 뭔가 많이 달라졌다.
예나 지금이나 만남의 과정에서 긴 말이 필요 없다는 건 동일하다. 문제는 만남 이후의 일이다. 농협 앞에서 친구를 만난 날엔 친구와 해야 할 이야기를 생각했다. 요즘 잘 돼가는 썸남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고민도 한가득 풀어놓았다.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면 장소를 옮겨야 했다. 무한리필 토스트가 있는 카페에 가서 밀크셰이크 한 잔을 시키고 빵을 먹는다.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리필 그릇을 가져다줄 때마다 주인의 눈치도 장난 아니다. 그렇게 먹고도 살이 찌지 않았던 건 말을 많이 해서였다. 그때 그 시절에 나는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고민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요즘 나는 해야 할 말을 저장해두지 않는 것 같다. 하고 싶은 말이 없는 건 아니다. 친구가 그립지 않은 것도 아니다. 왜 그럴까. 해야 할 말도, 같이 봐야 할 사진도 톡으로 이미 나눴으니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 뿐.
그런 의미에서 만남은 나에게 조금 다른 의미가 됐다. 우리가 오늘날 만난 이유는 말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는 그 누구보다 조금 더 당신을 친근하게 생각한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 바로 그때 비로소 만남을 위한 움직임을 시작한다. 만남은 그 자체로 굳이 몸을 일으켜 세워 내 시간을 들여 마음을 전하겠다는 표현이다. 꽤 많은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가 없어진 탓에 우리는 만남을 친근감의 표시로 사용할 때가 많아졌다. 나의 경우는 친밀한 정도에 따라 만남의 장소를 다르게 정해놓는다. 때론 편리함을 추구하며 정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어색함과 불편함, 친밀함과 좋아함이라는 카테고리에 따라 장소가 바뀐다. 그건 나만의 기준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관계든 만남을 약속했다는 건 마음을 굳이 당신에게 표현하고 싶다는 의미라는 사실. 왜냐, 굳이 만날 필요가 없는 지금을 살고 있으니까.
언젠가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그랬다. 누군가와 만나서 이야기하는 건 너무 좋은데, 만나러 가기까지가 너무 힘들다고 말이다. 상대방이 싫은 것도 아니고 보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닌데 만나러 나가는 것 자체가 힘들다는 이야기였다. 그 말에 옆에 있던 출연자들이 공감한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래도 나가야죠. 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그 사람의 성향으로 치부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나는 그것이 우리에게 만남의 장소가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은 큰 수고가 됐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쓰는 돈과 시간은 애를 써야 하는 마음이 됐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관계가 싫은 건 아니지만 그야말로 '나'의 생활과 '나'의 삶을 방해받고 싶지 않은 분위기에 모두 동의하기 때문이다. 그건 개인의 성품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인정하고 이해하는 현상일 뿐이다.
우리에겐 각자의 삶에 분명히 존재했던 그 만남의 장소가 있었다. 만남의 장소가 사라진 바로 지금. 우리는 오히려 그곳을 더 절실하게 그리워하고 때론 필요하다고 느껴야 한다. 흔히 말하는 '정'이 '만남'으로 성사되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우리의 만남의 장소가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그날에 우리는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를 만날 수 없게 되며, 인간사 희로애락을 그저 자본과 이윤의 원리로써만 사용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 일은 분명 혼자만의 힘으로는 어렵다.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오래 걸려도 앞으로 가기만 하면 되는데 앞으로 가지 못할 수도 있다. 함께는 금방 갈 수도 있고 생각보다 느려질 수도 있는데 분명한 건 앞으로 간다.
때론 사회가 이해하는 현상과 모두가 동의하는 편리함, 그리고 내가 안주하는 귀찮음에 대해 나는 의식적으로 반감을 갖는다. 아주 오래전의 일들을 회귀하며 앞으로 나아가기를 꿈꾼다. 우리는 생긴 게 모두 다르듯 우리가 도착할 목적지도 역시 다르다. 한 개인의 삶. 그 앞에 어떤 목적지가 있을지 모르지만 분명한 건 만남의 장소를 다시 찾는 누군가라면 누구보다, 어떤 영역에서든 유리한 삶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만남의 장소에서 만나 불량식품이라 해도 무방한 무한리필 빵을 먹으며 그들만의 이야기가 끝이 없을 땐 땐 살이 찌지 않는다는 걸 말이다.
앱으로 미리 목적지를 설정하고 택시를 타니까,
택시를 타고 기사님과 한마디도 안 하는 경우가 있어요.
카페나 음식점을 가도 그래요,
직원에게 주문하기도 하지만
꽤 많은 곳에서는 키오스크로 주문하죠.
점점 말이 줄어드는 세상인데,
문제는 대화가 없으니 허술하게 뱉은 한 마디에
상처받거나 논란이 되는 거예요,
말은 줄었어도 대화는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바로 이런 일들 때문이겠죠.
말을 하지 않으니 낯선 사람의 눈을 마주칠 일도 드물어요.
그래도 눈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을 안다고들 하잖아요.
더 좋은 세상이 되기 위해선
빨라지고 편리해지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눈을 마주치고 대화하는 게
가장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어요.
오늘도 눈 한 번 마주치고
기분 좋은 인사로 하루,
시작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