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삼킨 것은 바다였다. 아내는 작년 여름, 해양 청소 봉사를 하겠다며 집을 나갔지만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 사인은 심장마비. 진즉 전조증상이 있었는지 모를 일이나 아내는 그날 전혀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 바다에 다녀온 뒤 바로 나와 별거하기로 했기에 돌아와 짐을 마저 싸겠다는 말도 했었다. 나는 그날 마침 아내의 옷 주머니에 녹음기를 몰래 넣어두었었다. 거기에도 죽음의 단서가 될 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활달하게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배를 타고 나가며 웃고 떠드는 소리만 바람 소리에 섞여 남아 있었다. 나는 아내의 뒤를 캐보려 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지만 누구에게도 그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바다가 괘씸하게도 아내를 배신했다며 되도록 많은 사람이 듣도록 울부짖었다. 아내가 몇 년간 폐어망이나 해양 쓰레기를 치울 정도로 바다를 아꼈다는 건 사실이었다.
장례를 치르고 나자 아내를 잃은 상실감이 어쩐지 더욱 크게 다가왔다.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그나마 잠이 들어도 걸핏하면 끔찍한 꿈을 꾸었다. 커다랗고 끈적이는 거품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거나 팔과 다리가 허공에 뜬 듯 어찌할 바를 모르는 꿈이었다. 온통 깜깜한 사방에서 나를 비웃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고 왜 나를 의심했느냐는 아내의 원망 섞인 목소리가 나의 온몸에서 전기 흐르듯 울려 퍼지는 느낌에 시달리기도 했다. 잠에서 깨면 온몸의 근육이 잔뜩 굳어 있었다. 내 생활 전반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나는 결국 운영하는 시계 전문 수리점의 문도 닫아버렸다. 그러곤 잠을 자든 자지 못하든 대개의 시간을 침대에 푹 가라앉아 지냈다. 일어나 움직일 기운도, 뭘 해야겠다는 의욕도 없었다. 촘촘한 암막 커튼으로 모든 창문을 가린 채 무기력하게 일 년을 지냈고 내일은 아내의 일 주기였다.
지난밤 꿈에도 아내가 나타났다. 꿈에서 나는 물속을 유영하다 그물 사이에 껴있는 아내를 발견했다. 구해주려 얼른 다가가자 아내는 내게 손목시계를 건네며 속삭였다. 시간을 흐르게 해요. 원망의 기색은 없고 예전과 다름없는 다정한 목소리였다. 내가 시계를 받으며 얼결에 고개를 끄덕이자 아내는 어느새 은빛 물고기로 변했다. 그물을 매끄럽게 빠져나와 내 앞에서 원을 그리며 헤엄쳤다. 내가 손을 내밀자 반짝이던 아내는 해류를 타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내를 잡고 싶어 팔을 뻗으며 허둥대던 나는 하염없이 아래로 떨어지기만 했다. 소리를 질러도 목구멍 안에서만 맴돌았고 귀는 막힌 듯 먹먹했다.
잠에서 깨어난 나는 바로 아내의 유품을 떠올렸다. 침대에서 빠져나와 조명을 켜고 옷장으로 비척거리며 다가갔다. 상단에서 유품 상자를 내려 조심스레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 담겨있는, 꿈에서 본 아내의 시계를 보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팔뚝으로 눈가를 꾹 눌렀다. 그러곤 떨리는 손가락으로 시계를 꺼내 쥐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침침한 가운데 보이는 내 방은 마치 표류하던 물건들이 아무렇게나 널려있는 듯 엉망이었다. 내가 덮고 있던 이불엔 오래된 얼룩이 가득했고, 침대 밑과 바닥에 흩어진 세탁하지 않은 옷가지와 수건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올라왔다. 천장에는 거미줄이, 바닥에는 음식 찌꺼기가 눌어붙은 일회용 그릇과 술병이 나뒹굴었다.
고개를 내저으며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아내의 시계를 꼭 쥐고 있던 손을 폈다. 움직임이 멈춘 지 오래된 시계를 다른 한 손으로 쓰다듬어보았다. 아내가 오랫동안 아끼며 사용해 온 시계였다. 흔히들 쓰는 배터리만 교체하면 되는 전자식 시계나 스마트 워치가 아니었다. 크라운을 이용해 태엽을 주기적으로 감아야 하는 기계식 시계였다. 이 시계가 멈춘 것은 태엽을 돌려줄 주인을 잃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퍼뜩 꿈속에서 아내가 시간을 흐르게 하라던 말이 떠올랐다.
어깨를 으쓱했다. 살아있을 적에 아내가 원하는 대로 해 주지 못한 주제에 꿈속 소원은 들어준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그래도, 이제라도 소원을 들어줄 수 있다면. 나는 무브먼트를 재정비하는 오버홀 작업까지 한 뒤 다시 작동시키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바닥에 손을 대고 힘을 주며 일어나 아래층으로 향했다. 역시나 먼지와 거미줄이 가득한 층계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일 층도 블라인드를 내려놓은 탓에 어둑했다. 블라인드를 조금 걷고 수리점 공간을 둘러보았다. 먼지가 쌓이긴 했지만 그래도 말끔하게 정돈된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벽에 걸린 시계들을 하나하나 일별했다. 내가 사 모은, 오래되었거나 디자인이 독특한 시계들이었다. 일 년 전만 해도 모든 시계가 정확한 시간을 가리켰었는데, 이제는 제각각이었다. 몇 개는 각기 다른 시간에서 멈추었고 느리게 움직이는 시계도 있었다. 나는 문득 시간이 궁금해 휴대폰을 열었다. 오후 여섯 시 반. 쓴웃음이 나왔다. 잠에서 깬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잠시 뒤면 어두워질 시간이었다. 규칙적으로 지내던 예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수리점 작업실 쪽으로 갔다.
조명을 켜자 작업실이 환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작업대로 다가가 ‘이범우(李凡宇)’라는 내 이름이 적힌 편백 나무 명패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투박하지만 아내가 조각칼로 직접 새기고 정성껏 다듬은 거였다. 작업실을 리모델링하던 아내의 활기찬 모습이 떠올랐다. 예전에 내가 혼자 일할 적에는 칙칙한 골방 느낌이었는데, 아내는 분위기를 바꿔보자며 벽에 페인트칠을 새로 했다. 또한 내 작업을 위한 최적의 동선과 작업 효율을 따지며 배치도를 그렸다. 고개를 연신 갸웃하며 그렸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마침내 한쪽 면에는 오래된 원목으로 만든 작업대와 수납장을 놓았다. 맞춤 제작한 것으로, 작업대와 연결된 수납장 서랍에는 각종 공구와 자잘한 부품이 종류별로 가지런히 들어 있었다. 다른 한쪽에는 방수 테스트기와 시계의 이상 유무나 오차를 확인하는 기계, 자성 제거를 위한 탈자기 등 여러 장비가 적당한 간격으로 배치되었다. 아내는 그렇게 세심했다.
아내에게는 사람을 끄는 매력도 있었다. 결혼한 뒤부터 여기서 나의 일을 도왔다. 아내는 친절할 뿐 아니라 손님이 전에 방문했을 때 나눴던 이야기를 잘 기억했기에 사람들은 감탄하곤 했다. 자연스레 단골이 늘었다. 게다가 눈썰미가 좋고 손이 빨랐다. 오래지 않아 시계 줄의 관리를 도맡았다. 이를테면 시계 줄을 무엇으로 바꿔야 할지 고민하는 고객에게 어울릴만한 가죽 또는 패브릭 소재의 스트랩이나 금속 재질의 브레이슬릿을 추천했다. 낡은 스트랩을 능숙하게 교체했고 브레이슬릿의 링크 사이에 낀 먼지를 세심히 닦았다. 그런 아내가 나를 떠난 거였다. 별거하자는 아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는 아내를 붙잡고 싶었던 나는 아내가 죽었을 때 따라 죽고 싶었다. 그러나 차마 내 목숨을 스스로 거둘 수는 없었다. 산다고 다 사는 건 아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