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을 꾹 다물고 작업대의 보조 조명을 켰다. 오랜만이라 그런지 불빛이 잠시 흔들렸지만 이내 예전처럼 고요하고 환하게 빛났다. 손에 들고 있던 아내의 시계를 작업대 위에 내려놓았다. 서랍을 열어 돋보기를 꺼내어 쓰고 시계를 분해하기 시작했다. 배럴, 스크루, 밸런스 휠, 로터, 브릿지, 밸런스 스프링 등 미세한 부품들을 하나하나 분리해 늘어놓았다. 세척기에 넣어도 되었지만 내 손으로 직접 하고 싶어 부드러운 브러시와 세척액으로 그것들을 하나하나 말끔하게 닦고 말렸다. 이제 윤활유를 보충하고 순서에 맞춰 다시 조립한 뒤 잘 작동하는지 확인하면 오버홀은 마무리였다. 분리된 부품들을 내려다보며 벌써 뻐근해진 목을 주물렀다. 돋보기를 벗어 옆에 내려놓고 피로해진 눈언저리를 꾹 눌렀다. 적막한 가운데 작업실 너머 제각각 움직이는 시계 소리만 귓가에 울렸다. 괜히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몇 시간이고 아무렇지도 않게 일했던 나인데.
나는 어려서부터 혼자 있는 시간을 편하게 여겼다. 아늑한 어둠도 좋아해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걸핏하면 장롱 안에 숨어들었다. 장롱 구석 이음매 뒤쪽의 어둠, 살며시 벌어진 틈새로 들어오는 불빛과 그 빛줄기 위로 춤추는 먼지를 보면서 다른 세계를 떠올렸었다. 어딘가 있을 나의 진짜 부모를 만나 화목한 가정에 살며 사랑받는 상상을 자주 했다. 귀를 막은 채 장롱 밖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은 가짜 부모라는 식으로 현실을 외면하고 나면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던 중 부모가 싸우다 망가진 벽시계를 무심코 고친 것으로 시작해 물건 수리에 빠져들었다. 오롯이 고칠 물건에 집중하고 있으면 슬픈 생각도 들지 않고 마음이 차분해졌다. 내 힘으로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게 뿌듯하기도 했다. 밥솥, 난로, 경첩, 문고리, 전등을 비롯해 웬만한 것은 직접 고쳤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평소보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건 고장 난 물건이 생겼다는 신호나 다름없었다. 친구들과 게임을 하거나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도 고칠 게 있겠다 싶으면 슬그머니 집으로 갔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친구들은 내가 중간에 없어져도 그러려니 했다.
내 별명은 버뮤다였다.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영어 선생은 모의고사 대비라며 문제지를 나눠주었다. 한 지문에 세계의 미스터리한 지역, 그중에서도 버뮤다 삼각지대에 대해 나왔다. 지문을 해석하던 한 친구가 혼잣말하듯 버뮤다, 범우다? 라 했다. 교실이 조용했던 탓에 그 소리가 모두에게 들렸고, 친구들은 나를 보며 왁자하게 웃었다. 걸핏하면 사라지니 버뮤다 맞다며. 나는 별 관심이 없는 척 목 언저리를 긁적이고 말았다. 하지만 머릿속은 달랐다. 수년간 사라진 비행기와 선박 등이 망가진 채 버뮤다 바다 깊숙한 곳에 켜켜이 쌓여 있을 모습에 우리 집의 작은 창고가 떠올랐다. 내가 언젠가부터 동네 이웃의 물건까지 자주 고쳐주다 보니 창고에는 별의별 부품이 많았다. 내 이름뿐 아니라 그런 나의 공간에 버뮤다와 맞물리는 지점이 있는 듯했다. 게다가 비밀스럽고 신비한 느낌이라 별명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그 뒤로 더 당당하게 홀로 시간을 보냈고 점점 말이 없어졌다.
닥치는 대로 고치다가 내가 시계, 특히 기계식 시계에 빠진 건 그것이 사람이 만들어낸 기계 중 최고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작은 공간에 여러 부품이 집적되어 있으며 일체의 전기장치라든가 배터리 없이 크라운을 감아서 생긴 에너지가 내부의 휠로 전달되고, 전달된 에너지는 균일하게 배분되어 규칙적인 움직임을 만드는 장치는 예술에 가까워 보였다. 그토록 작은 부품들이 맞물려 정밀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냥 흐뭇했다. 서로의 존재에 대해 의심할 필요가 없는 아름다운 관계처럼 보였고, 한 톱니바퀴라도 사라지면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영원히 함께하는 공동체인 양 느껴지기도 했다. 내게 기계식 시계는 흠잡을 데 없는 세상이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시계 수리공이 되었다. 마침 시내 외곽에 경매로 나온 작은 건물을 매입한 나는 일 층은 수리점, 이 층은 내 생활공간으로 썼다. 소위 목 좋은 곳이라고 볼 수는 없었지만 번잡한 걸 싫어하는 내게는 딱 맞았다.
아내를 만난 것도 이 시계 수리점에서였다. 아내는 지금 내가 열어놓은 이 손목시계를 들고 와 오버홀 작업을 의뢰했었다. 그러고는 내가 작업하는 내내 가게를 기웃거리며 구경했다. 나와 비슷한 사십 대로 보였는데, 호기심과 활력이 가득해 보이는 모습에 나는 자꾸만 아내 쪽을 흘끗거렸다. 아내는 이윽고 내 쪽으로 몸을 돌려 범우 시계 수리 전문점이라는 간판명에 대해 물었다. 범우, 무슨 뜻이에요? 나는 사뭇 설레었지만 일부러 무뚝뚝하게 대답했었다. 제 이름입니다. 아내는 무릇 범에 우주의 우? 하며 나를 쳐다봤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내는 그렇다면 이곳은 우주? 와, 멋진데요? 하고 양팔을 벌리며 반달 모양 눈으로 환하게 웃었다. 그 바람에 웃음이 전염된 듯 나까지 피식 웃고 말았다. 나는 내 이름을 거대한 우주로 해석하는 아내가 특별하게 느껴졌다. 내가 생각했던 건 내세울 것 없이 평범하고 작디작은 나만의 공간이었으니까.
우리는 그 뒤로 종종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말수가 적은 나였지만 아내 앞에서는 쉽게 말문이 터졌다. 무엇보다도 내가 하는 말을 재미있게 들어주어 기뻤다. 아내는 내 별명 버뮤다에 얽힌 이야기에도 즐겁게 웃었다. 언젠가 버뮤다 섬에 가 보자고도 했다. 버뮤다 삼각지대 미스터리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뭔가 갑작스레 사라지고 마는 으스스한 섬이 아니라고. 실제로 아내가 인터넷에서 찾아 보여준 버뮤다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휴양지였다. 내가 상상했던 고립된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었다. 아내는 버뮤다가 띄워진 모니터 앞에서 눈만 끔뻑이던 나의 손을 꼭 잡더니 다짐이라도 받으려는 듯 싱긋거렸다. 나는 쑥스러워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지만 아내와 함께라면 못 갈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차라리 버뮤다 어딘가에 갇혀 둘이서만 살고 싶기도 했다. 용기를 내어 아내에게 말했다. 버뮤다는 나중에 가자고, 일단은 나, 범우와 함께 살아주겠느냐고. 몇 년 전 이혼한 적이 있는 아내는 잠시 망설였지만 끝내는 나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아내는 기계식 시계를 각별하게 여기는 나에게 그 이유를 물은 적이 있었다. 나는 대답 대신 전자식 시계와 기계식 시계를 열어 내부를 보여주며 작동 원리를 설명했다. 아내는 와, 하며 탄성을 질렀다. 쓰고 있던 자신의 시계가 주기적으로 태엽을 감아줘야 해서 다소 귀찮았다고 했다. 아버지 선물이라서 어쩔 수 없이 쓰고 있었다고. 그런데 내 설명을 듣고는 기계식 시계에 푹 빠져버렸다. 아름답고 정교해 보인다는 이유였다. 나는 무엇에든 금방 흥미를 느끼고 빠져드는 아내의 성격이 참으로 놀라웠다. 내가 작업하는 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보곤 하던 아내는 나와 결혼하면서부터 수리점에서 일했다. 부부가 되었으니 일을 돕는 게 당연하지 않냐고 했다. 아내가 곁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혼자가 편한 양 살아왔지만 따스한 사랑을 나눌 사람을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모양이었다. 늦은 나이에 결혼한 나에게 아내는 그야말로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