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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은 작가 imkylim Nov 13. 2024

버뮤다의 시간 3화

  우리는 많은 면에서 달랐다. 아내는 얼굴에 항상 웃음기가 서려 있었으며 사람을 만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내내 시계 수리공으로 일한 나와 달리 아내는 다양한 직업을 거쳐왔다. 수영 코치, 해양 구조대원, 학원 강사, 바리스타. 나와 만났던 때는 친환경 농산물 판매점의 직원이었다. 하는 일 말고는 별다른 관심이 없는 나와 달리 아내는 취미도 많았다. 탁구와 볼링 동호회에서 활동했고 바다의 생태계에 관심이 많아서 꾸준히 해양 쓰레기를 수거하는 봉사도 하고 있었다. 나에게도 함께 하자며 권했지만 나는 머뭇거릴 뿐 쉽게 나서지 못했다. 아내의 넘치는 에너지가 그저 신기하고 매력적이라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불안하기도 했다. 말이 없고 사람을 사귀지 못하는 나 같은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아내였다. 누군들 아내 같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싶었다. 별 매력이 없는 나를 사랑해 주는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다. 첫 결혼에 실패했던 이유도. 아내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한 가지에 집중할 수 있는 당신의 모습이 든든해. 변함없이 묵직한 느낌이거든. 전 남편은 뻔뻔하게도 다른 여자에게 한눈을 팔았어. 아내가 전남편을 만난 건 대학 시절 봉사동아리에서였고 그 역시 아내와 마찬가지로 활동적이었다고 했다. 나는 아내에게 되묻고 싶었다. 그렇다면 여러 가지에 관심이 많은 당신도 다른 남자한테 한눈을 팔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나는 애써 입을 다물고 고개를 내저었다. 괜한 비약을 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아내의 전남편이 우리 가게에 찾아온 뒤 내 신경은 걷잡을 수 없이 곤두섰다.


  아내가 해양 청소 봉사를 간 날이었고, 술에 취해 내 가게에 찾아온 그는 내게 해 줄 말이 있다고 했다. 아내 말에 의하면, 전남편이 다니던 회사의 여직원과 단둘이 캠핑을 다녀온 게 발각되면서 부부 사이가 틀어지고 말았다. 그가 해 준 이야기는 달랐다. 직원 단합대회였으며 캠핑을 간 건 열 명이었다고, 한 여직원이 차가 없어 그가 집에 데려다주었는데 짐이 많아 집 안까지 날라주었을 뿐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다는 건 이해하지만 절대로 아내가 화낼 만한 상황은 없었다고. 하지만 아무리 설명해 줘도 아내는 마음을 풀지 않았다고. 그는 입술 끝을 늘어뜨린 채 한껏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뒤, 그는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이혼하고 싶어서 기회를 노리고 있던 여자처럼 보일 정도였어요. 되짚어 보니 언젠가부터 못 보던 손목시계도 차고 있었지요. 어디서 났냐니까 아버님이 예전에 주신 거라 했어요. 제가 믿을 수 없다고 하자 아내는 만약 애인이라면 이렇게 오래된 시계를 줄 리가 있느냐 비아냥거리더군요. 잠시 입을 다문 채 고개를 수그리고 있던 그는 고개를 다시 번쩍 들었다. 눈빛이 사납게 변해 있었다. 내게 따지듯 물으며 한 발짝 다가왔다. 당신, 그때부터 내 마누라랑 사귄 거지? 일부러 낡은 시계를 준 거야, 그렇지?


  아무래도 그의 상태가 불안해 보였다. 나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아마도 내가 시계 수리점을 하고 있으니 그런 오해를 한 모양이지만 아내가 여기에 처음 왔던 건 당신이 말하는 그 시계의 오버홀 작업을 위해서였다고, 그러니 내가 준 시계일 수가 없다고. 게다가 그때는 이미 당신과 이혼한 상태였다고. 그는 시치미 떼지 말라며 나의 멱살을 잡았다. 그의 거친 숨결에서 역한 술 냄새가 풍겼다. 마침 그때 아내가 가게로 들어왔다. 그는 내게서 슬그머니 멀어지며 아내의 눈치를 봤다. 반면 웃으며 들어오던 아내는 전남편을 보자 눈을 부라리며 짜증을 냈다. 내 앞에 나타나지 말랬지, 여기가 어디라고 와서 술주정이야? 나는 아내의 그런 앙칼진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기에 놀랐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엉겁결에 냅다 고함을 질렀다. 그러게 왜 오해받을 만한 행동을 했어? 아내와 아내의 전남편 모두 놀란 듯 나를 쳐다봤다. 


  그날 마무리가 어떻게 되었었는지는 뚜렷하게 기억나지 않았다. 나도 어찌할 바를 몰라 입을 꾹 다물고 발로 바닥만 세게 구르는 사이 아내가 그를 내보낸 것 같았다. 그가 돌아간 뒤 아내는 내게 조심스레 물었다. 그가 어떤 말을 했느냐고. 나는 왠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기에 했던 말만 반복했다. 그러게 오해받을 행동은 말았어야지, 하고. 내 목소리는 낮고 갈라져 나왔다. 아내는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그가 한 말 중에 진지하게 들을 가치가 있는 건 하나도 없다고, 아까 내가 나타나자 기가 죽는 걸 보지 않았느냐고, 범우 씨가 이상하게 여길까 봐 미리 말하지 않았지만 그는 예전에도 괜한 말을 지어내곤 했다고, 술을 마시면 더욱 심했다고, 여러모로 이혼할 수밖에 없는 남자였다고. 이어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싫다는 듯 진저리를 치며 손을 내저었다.


  나는 그 뒤로 아내의 전남편을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의심은 점점 부풀어 올랐다. 시작은 그가 어떻게 아내가 집에 없는 시간을 알고 나를 찾아왔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만약 그가 한 말이 나와 아내 사이를 흔들기 위해 지어낸 말이라면 굳이 그래야 할 이유는 무엇일지 궁금했다. 아직도 서로 연락하고 있는 것인지, 혹은 그가 내 아내 곁을 몰래 맴돌고 있는 게 아닌지도 의심스러웠다. 그러다가 시계는 정말 아내의 아버지가 준 것일지, 그가 말한 대로 다른 남자가 준 것일지 궁금했다. 생각할수록 불쾌하고 찜찜했다. 한번 바람을 피운 사람은 또 바람을 피운다던데, 게다가 시계에 금세 빠져들었던 것처럼 무엇에도 금방 흥미를 느끼는 성향이라면 사랑에도 금방 빠지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여러 활동으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의심스러웠다. 나는 결국 아내가 외출할 때마다 어디로 가는지, 언제 돌아올지 물었다. 수시로 전화를 걸어 확인하기도 했다. 아내가 조금만 전화를 늦게 받아도 짜증이 치밀었다. 아무래도 아내가 바람을 피우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아내는 내가 불안해할 때마다 나를 달래듯 보듬어주었다. 조심하느라 손님들 앞에서도 예전처럼 웃지 않았다. 쇼핑은 가능한 한 온라인으로 했고 모임도 부쩍 줄였다. 해양 봉사처럼 아침에 나가면 저녁에나 돌아오는 행사는 내가 특히 싫은 내색을 해서인지 더는 나가지 않았다. 내심 만족스러웠던 나와 달리 아내는 점점 지치는 모양이었다. 가게와 집에만 있는 게 답답하다며 어디든 함께 다니자고 졸랐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밖으로 다니는 게 싫으니 당신도 나와 같이 집에 있자고만 했다. 참다못한 아내는 아무래도 내 증상은 의처증이라며 심리상담을 받아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에 당신만 오해할 행동 안 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며 핀잔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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