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르히아이스 Sep 20. 2018

7. 실연의 과정

실연의 과정

 이번 장의 주제는 실연이다. 이런 것을 구태여 글로 쓸 필요가 있을까? 그냥 헤어지면 당연히 아프고 그런 것 아닌가? 좀 일찍 회복하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는 것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현실은 꼭 그렇지 많은 않다. 실연은 일련의 과정이 있고 이 과정을 쉽게 무난하게 넘길 수도, 지독하게 아프게 보낼 수도 있다.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실연을 대하느냐에 이 모든 것이 달려있다.


 실연이라는 것은 어떤 과정을 거치고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인간인 이상 누구도 실연 앞에서 담담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그 의미와 과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다면 좀 더 의연하게 그 과정을 받아일 수 있게 될 것이다.


실연은 나쁜 것일까?

솔직히 실연은 나쁘다. 더 말할 것도 없이 나쁘다. 좋은 실연은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 한 번은 찾아오기 때문에 알고 있어야 한다. 첫사랑과 결혼해 지금까지 살고 있다면 당신은 신이 내린 축복을 받은 자다. 헤어지는 경험을 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도 없을 것이다.


 비교대상이 없어서 지금 사랑이 최선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그런 환경이 어쩌면 가장 사랑하기 좋은 환경이다. 된장찌개 외에는 먹어본 적 없는 사람이 그 이상의 맛을 생각하기는 어렵다.


 경험이란 인간에게 지혜를 주지만 비교를 가능케 해서 불만이 생기게 한다. 이것이 불행의 씨앗이다. 모르고 행복한 게 좋을까 진실을 알고 불만족스러운 게 좋을까? 이것은 철학적인 문제다. 원효대사의 해골물이 이런 예이다. 철학적인 문제는 다른 책에서 다뤄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사랑에 관해서 집중해보자.


 당신이 지금 사랑으로 인해 행복하다면 이 사랑이 끝날 수 있다고는 생각도 못할 것이다. 아니 생각하기 싫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사랑은 영원하지 못하고 심지어 사랑하는 순간부터 이별의 시작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왜 그럴까?


 사랑에 대해 낭만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분들의 심기를 어지럽힐 생각은 없지만 인간의 감정이란 것이 원래 불완전하기 짝이 없다. 좋은 것은 짧게 끝나고 고통은 오래 지속된다. 이걸 삶이라고 불러도 좋다. 우리에게 좋은 것이 계속 주어져도 그 행복감은 계속되지 못한다. 경제학에서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라고 다들 들어보셨을 것이다. 사랑도 그 연장선에서 생각하면 된다. 설렘은 금방 익숙함이 되고 익숙함은 지루함으로, 결국 불만으로 이어진다.

 자기는 30년 동안 한 여자(남자)만 사랑했는데 아직도 설레고 만날 때마다 좋다는 사람이 있다. 그럴 수도 있다. 세상에 많은 경우가 있으니 운 좋게 비교대상을 찾지 못하면 그렇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인도에 사는 사람이 아니고 다양한 사회생활 속에 삶의 현장에 살면서 첫 감정을 그대로 유지하기는 어렵다.


 각종 시련이 닥치고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사랑이다. 아직도 설렌다면 축하할 일이지만 마음 놓을 일은 아니다. 당신이 설렌다고 해서 당신의 파트너 역시 설렌다고 보장할 수 없다. 당신들의 내심과 무의식까지 보장할 수는 없다. 장담하지 말고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라. 그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이다.


 사랑의 시작이 어려운 만큼 끝도 그래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우리네 사랑은 어렵게 시작하지만 잠시만 신경을 놓고 있으면 금세 사그라들어 없어져버리고 종말만을 기다리는 상태가 된다. 우리가 알아채기 전에 사랑은 시작되고 끝날 때도 알아채기 전에 상황이 종료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최소한의 상처를 입고 빠르게 회복하기 위해서는 평상시 그에 대한 마인트 컨트롤이 되어있어야 한다. 이별에 대한 자기만의 주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별에 관련된 주제를 하나씩 살펴보며 자신의 생각을 정립해보자.


이별을 통보하는 방법

이별은 어느 한 사람의 통보로 시작되는 것도 있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소원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라도 명확한 언급이 있어야 서로에게 깔끔하다. 실연은 이별 통보로부터 시작되므로 이별을 통보하는 방법을 알아보자. 


 1. 만나서 대화로 하는 방법

 대화라고 하는 것은 주고받는 것인데 이별을 통보하는 대화는 모두가 알다시피 양방형 의사소통을 기대할 수 없다. 결국 통보하는 사람이 주도하게 된다. 


"이제 그만 만나자" 


 이 한마디에 상대방은 아연실색할 수도 있고 화를 낼 수도, 의외로 담담할 수도 있다. 대체로 남자보다는 여자가 통보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되는데 왜냐하면 남자들의 경우 이별을 통보하는 것 자체가 나쁜 남자로 보일 수 있어 이를 자제하는 경우가 많다.


 더 나은 상대가 나타나도 남자는 바람을 피우지 헤어지자고 먼저 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여자가 마지못해 이별을 통보하거나 먼저 이야기를 꺼내도록 유도하곤 한다. 즉 이별의 냄새를 풍기면서 여성이 이를 알아차리게 만들고 스스로 질문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전화도 잘 안 받고 연락도 없고 다른 이성을 만나는 등 불성실한 자세를 계속 취하면 여자로서는 방법이 없다. 이런 태도는 그야말로 남자가 본인만 생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실제로 많이 있다. 아직도 우리 문화에서는 이별의 모습에 남자가 주도적이면 도덕적으로 나쁘다는 인상을 준다. 여자를 버리는 남자. 그런 이미지이다. 반면 여자가 남자에게 먼저 통보하면 남자가 무슨 잘못을 해서 마음이 떠났나 보다 하고 만다. 그래서 여자와 남자가 이별 통보하는 방법도 다르다. 이것은 뒤에서 다뤄보겠다.


 아무튼 남자는 이별통보를 미루고 자신의 파트너에게 무관심해진다. 이별통보를 여자가 하도록 유도한다. 어쩌면 아주 나쁜 방법이라고 하겠는데 이별이라는 목적은 달성하면서 이별당하는 피해자의 역할까지 맡겠다는 것이니 아주 이기적인 방법이다. 최소한 내가 이별하고 싶다면 악역을 덮어쓰라. 그리고 정확하고 사실대로 말하는 게 가장 문제가 적고 상처도 작은 방법이다.


 사랑받으면서 이별을 생각하고 있는 자체가 이미 악역을 맡은 것이다.  능동적으로 이별을 고하고 악역은 짊어지고 가라. 그것이 상대방에 대한 마지막 배려가 될 것이다. 이별당하는 사람한테 악역까지 짊어지라는 것은 너무한 일이다. 만약 당신에게 이 정도 아량도 없다면 당신은 사랑을 할 자격도 없는 사람이다.


 이별통보는 상대방에게 분명히 상처가 되고 기분을 상하게 한다. 어떻게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대로 말하고 지금의 상태,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밝히는 게 좋다. 어설픈 거짓말을 늘어놓거나 끝까지 선한 사람으로 보이려 방어막을 친다면 오히려 상대방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다. 칼을 쥔 것은 이별을 통보하는 당신이다. 그 칼로 사랑했던 사람의 심장을 찌르겠지만 한 번으로 끝내라. 

 이별을 통보받는 사람은 당연히 헤어지는 이유가 궁금할 것이다. 다른 사람이 생겼는지, 사랑이 식은 것인지, 진심인지. 여기서는 사실대로 말하는 게 제일 좋다. 그 자리에서 뺨을 맞을 지라도 이별당한 사람이 명확한 이별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그 사람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이별을 부드럽게 만들려고 거짓말을 늘어놓아 봤자 상대방의 자존심만 더 상하게 할 뿐이다. 나중에 당신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충격은 두배, 세배가 된다. 마지막 순간이라도 진실할 수 있는 것이 상대방에 대한 예의이고 사랑했던 자의 최소한의 인정이다.


 2. 양쪽이 함께 소원해지는 이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소원해지는 경우이다. 연락이 뜸해지고 두 사람의 사랑이 동시에 식어간다면 누가 통보하지 않아도 이별은 옆자리에 앉아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주로 멀리 떨어져 있거나 특별한 상황(서로 일에 바쁜 경우 등)때문에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서 벌어지는 일인데 심각성을 먼저 느낀 쪽은 상대방도 자신과 똑같은 마음인지가 궁금해진다.


 이미 식어가는 사이에서 영양가 있는 대화는 상당기간 없었고 그렇다면 서로의 마음이 궁금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렇게 식었는데 상대방도 그러한 지 말이다. 그런데 두 사람의 마음이 동시에 같은 양만큼 사그라드는 경우는 많지 않다. 두 사람 사이에 정도의 차이가 있다. 


 심지어 싸우고 며칠 동안 안 만나고 있다고 해도 두 사람의 마음은 같지 않다. 한 사람은 싫어지겠지만 한 사람은 풀려있고 다시 보고 싶어 질 수 있다. 그래서 좀 귀찮고 껄끄럽다고 해서 연락을 끊거나 도망 다니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의사소통이 안되면 그 자체로 문제가 생기고 회복의 길은 멀어진다.


 3. 싸우고 헤어지는 방법

 진심이든 아니든 한번 크게 싸우는 것도 헤어지는 방법이다. 앞서 얘기했듯이 기본적으로 솔직한 게 최선이다. 하고 싶었던 말 다 해보고 원하는 것, 섭섭했던 것 다 말하는 것이다. 다만 단어는 조심해서 써야 한다. 서로 솔직하게 원하는 게 뭔지를 말하는 게 중요하지 상대방을 이기려거나 상처 주는 게 목적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헤어지고 싶고 다시 볼 것도 아닌데 아무려면 어떠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사랑은 혼자 하는 게 아니고 두 사람이 하는 것이다. 사랑이 깊어진다는 것은 두 사람이 하나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서로가 그만큼 신뢰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뢰한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해 보호막을 치지 않고 자기 마음을 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대방에게 멋대로 이별을 통보한다면 그 사람은 타인이 줄 수 있는 상처보다 훨씬 큰 상처를 받게 될 것이다.


 조금 배려하는 게 그렇게 힘든가?


 당신은 남에게 상처를 주고도 아무렇지 않은 그런 냉혈한인가? 정신적으로 하나가 된 사람을 떼어내는 과정은 당신 팔을 자르는 것 못지않게 아프고 힘든 일이다. 혼자 미리 마음을 정리하고 자기는 철저하게 준비된 상황에서 상대방에게는 감당하지 못할 폭탄을 던지는 건 사랑했던 사람에게 저지르는 테러나 다름없다.


 당신이 사이코패스가 아니라면 상대방의 감정에 공감할 줄 알 것이다. 그것만이라도 보여달라는 것이다. 우리는 성숙한 인간이고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사는 존재이다. 배려와 인지상정을 아는 동물이란 뜻이다. 내가 큰 노력 없이 선택만 잘하면 상대방의 상처를 줄여줄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실연의 과정

 이제부터는 실연의 과정을 짚어보자. 많은 학자들이 경제, 경영에는 관심이 많았지만 인간 삶에서 중요한 부분인 이런 것을 정리하지 않은 것은 아쉬운 일이다. 내가 정리하는 것도 건방진 일일 뿐이지만 이런 생각들이 모이면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개인적인 일로만 치부하지 않고 좀 더 성숙된 사랑을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서로 고민할 할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 미숙한 정리나마 해본다.


1. 사랑의 변곡점

 실연의 과정은 어떻게 이뤄질까. 우선 사랑이 감소하기 시작하는 변곡점이 있는데 이것은 한 개 혹은 몇 개가 될 수 있다. 계기라고 해서 뭔가 대단한 것은 아니다. 단지 그동안 느껴왔던 기쁨과 애틋한 마음의 자극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 순간이다. 매일 보는 상대방의 밥 먹는 모습도 오늘은 참 못나 보인다면 그것도 계기가 된다. 매일 해주던 칭찬도 갑자기 하기 싫어진다면 그때부터이다.


 인간의 기쁨이라는 것은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과 일치한다. 더 가진다고 해서 기쁨의 양이 무한정 커지는 것이 아니고 어느 시점에서는 평행선을 긋는데 이것이 사랑에도 적용된다. 가슴 뛰는 애틋함이 기쁨을 배가시키다가 어느 순간부터 그것이 작아지기 시작한다. 기쁨이 작아짐에 따라 사랑의 동력도 함께 줄어든다.


 무한정 커질 수 없는 게 사랑이다. 어느 정도 올라가 정체기를 만나면 그때부터는 줄어들기 시작하고 문제의 고비들이 찾아온다. 사람은 누구나 장단점이 있고 항상 잘할 수는 없는 '실수가 많은 존재'이기 때문에 늘 좋은 모습만 보여줄 수 없고 외부와 단절되어 살아가는 것이 아닌 이상 외부의 요인도 작용할 수 있다. 


 무심결에 한 행동이나 말 그리고 외부에서 받는 스트레스, 유혹 이런 것이 두 사람의 사랑에도 영향을 미친다. 운이 없으면 이것이 변곡점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한 번의 실수와 무관심이 수년간 쌓아온 사랑을 통째로 날려버릴 수도 있다. 든든한 삼각발(사랑의 3요소 : 사람, 믿음, 애정)이 받쳐주지 못하면 평범한 실수 하나에도 사랑은 무너질 수 있다.


 사랑한 기간이 오래되었다고 해서 혹은 단순히 믿는다고 해서 변곡점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 양을 측정할 수 없다. 굳건하다고 장담할 수 있는 때는 없다. 하루, 한 달, 10년 만에도 사랑은 무너질 수 있다. 서로 조심하는 자세는 그래서 중요하다. 사랑을 시작한 초창기에는 서로 조심하려는 노력을 많이 하는데 나중에는 그것이 약해진다. 이런 것이 가랑비에 옷 젖듯이 마음속에 젖어 들어 어느새 서로를 경멸하는 상태에 이르게 한다.


 지금까지 자신이 희생한 게 많아서 웬만한 불만은 참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충분히 있을 수 있고 인간이 경제라는 개념을 아는 이상 본전 생각을 안 할 수 없기 때문에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은 참는 게 아니다. 목적지가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결혼을 목적지로 보는 경우가 많으나 사랑의 관점에서 그것은 중간 기착지에 불과하다. 


 참는다면 어디까지 참을 것인가? 사랑을 통해 행복을 느껴도 모자랄 판에 참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서로를 존중하지 않는 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니다. 누군가의 일방적인 인내로 유지되는 사랑도 사랑이 아니다. 균형을 가지고 두 사람이 같이 행복해야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이 정체되는 상황에서 몇 개의 고비를 맞게 되면 그때부터 사랑의 그래프는 점차 하향하기 시작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사랑의 곡선이 무한 상승하는 경우는 없다. 오히려 계속 상승하다가는 파국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즉 한계치를 넘어가게 되면 병적 구속이나 집착이 되어 평범함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사랑의 지배 상태가 되어버린다. 사랑이라는 것도 독립된 개체로서 서로를 인정해야만 서로 끌림이 생길 수 있다. 모든 것을 공유하고 자기를 잊어버린다면 더 이상 사랑은 존재할 수 없다. 자웅동체를 사랑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랑의 그래프가 하향하는 상황에서는 익숙했던 것들도 싫어지기 시작하고 하향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진다. 두 사람이 느끼는 내리막의 속도는  서로 다르다. 사랑이 두터워지는 것은 두 사람이 동시에 느끼지만 내려갈 때는 한 사람만 느끼는 경우가 많다. 즉 한 사람의 사랑은 식어만 가는데 한 사람은 그것을 모르고 해왔던 대로 계속한다는 것이다. 


 사랑의 변곡점. 무슨 트로트 제목 같은데 이것을 나타내는 징후들이 있다. 표정이나, 상대방이 응답하는 태도, 상대방에게 쏟는 노력의 양 같은 것이다. 한참 사랑에 빠져있다 보면 이런 것도 잘 보이지 않는다. 좋은 방향으로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항상 냉정할 수는 없겠지만 이런 데 둔감하다면 사랑을 지키기 어렵다. 매일이 아니어도 좋으니 가끔씩 되돌아보고 마음가짐을 되새길 수 있는 계기를 꼭 가져야 한다. 이것을 놓치면 더 이상 반등의 기회는 없다.


 여자들의 경우 이런 변곡점을 잘 티 내지 않는다. 남자들은 얼굴과 행동에서 금방 드러나지만 여자들은 헤어지기 전날이나 이별 통보 한 시간 전까지도 이런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일부 남자들이 이별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이런 측면이 있다. 서로가 현재 사랑을 보는 시각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여자는 완전히 바닥을 쳤는데 남자는 아직도 멀쩡하게 사랑하고 있다고 여긴다. 매너 있게 이별을 통보하는 방법도 뒤에서 다루겠지만 가끔 이런 오해로 큰 다툼이 벌어지기도 한다. 웃으면서 이별하긴 힘들겠지만 융통성을 발휘해 이런 사태를 미리 방지하는 것도 하나의 지혜이다.

2. 이별 후 초기

 이런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랑은 종점을 고하고 깨지게 되는데 이때부터 실연의 본격적인 과정이 시작된다. 막상 아픔을 당한 며칠 동안은 별 느낌이 없다. 혼자 있는 게 즐겁기까지 할 수도 있다. 구속에서 벗어난 것은 짧은 즐거움을 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본격적인 감정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보통 남자들은 이별한 지 한참 뒤에 그것을 실감하게 되지만 여자들은 곧바로 이별을 느끼고 슬픔에 빠진다. 아마도 이것은 남성보다는 여성이 더 사랑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상황이 역전되는데 여자들은 지난 사랑을 완전히 잊게 되지만 남자들은 상시 기억으로 남는다. 보통 여자들은 첫사랑을 기억하지도 않고 기억해도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런데 남자들은 다르다. 지금까지 만난 여자를 다 기억하고 있으며 그중에서 제일 처음과 마지막 여자의 기억이 강렬하다. 대체로 첫사랑은 아쉬움이 많이 남기 때문에 더 기억에 오래 남는데 어린 시절 첫사랑으로 만난 여자들의 정신연령이 높기 때문에 남자들이 그 사랑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 그래서 남자들에겐 아쉬움이 많이 남고 여자들에겐 답답함만 기억에 남는다.


 여자들은 헤어진 뒤 깊은 슬픔에 빠져 식음을 전폐하지만 일단 회복이 되면 완전히 잊는다. 그런데 남자들은 헤어진 직후에는 아무렇지 않다가 한 달쯤 지나서 혼자 있는 시간이 지겨워질 때 비로소 이별했음을 직감한다. 이런 차이가 이별에 대한 두 가지 성의 태도마저 다르게 한다. 여자들은 이별을 생각할 경우 이별 통보하는 순간까지 헤어질지 말지를 고민한다. 그러나 남자들은 헤어질 생각이면 한참 전에 마음을 정리해버린다. 


 그래서 헤어질 징후도 남자들의 경우에는 무관심으로 나타나는 반면 여자들의 경우는 다양한 신호(Signal)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난 지금 헤어질 각오하고 있어." 

"빨리 반성해. 그렇지 않으면 헤어질 수도 있어."

"빨리 잘못했다고 해. 정말 헤어질 거야."


 여자들의 이런 신호는 남자들이 알아차리기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평소 볼터치 화장을 하던 사람이 갑자기 안 한다던가 아무 말 없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던가 이런 행동들이 다 신호이다. 남자들은 헤어진 뒤 한 참 뒤에야 그 사실을 깨닫는다. 그때 너의 옅은 미소의 의미를.



2편에서 계속...

이전 06화 6. 나쁜 여자와 나쁜 남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