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에 대한 용기
얼마 전 방을 정리하다가, 피천득 선생님의 <인연>이라는 책이 오랜만에 눈에 띄었다.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꼬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인용하기도 머쓱할 정도로 이미 너무나 유명한 글귀다. 나는 이 책을 수능 준비 때문에 읽었는데, 지루했던 수업 속에서 이 문구만큼은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아 이런 게 인연이구나. 진짜 인연이라면 내 의지와 무관하게 몇 번이고 만나게 되는구나. 한창 말랑말랑한 고등학생의 마음을 충분히 흔들만한 내용이었다. 그러고보니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말했더랬다. '아마도 우리는 그때 만나야 했기에 만났을 것이고, 그때 만나지 않았더라도 또 다른 곳에서 만났을 것이다.'
이 글귀들의 영향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나는 사물이든 사람이든 나를 스쳐가는 모든 것들과는 다 인연이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하필 그곳에, 하필 그 시간에 하필 그와 마주하게 될 확률이 얼마나 되는가. 이 '인연의 힘'에 대한 믿음은 내게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유용하게 발현되곤 했다. 내가 이 사람, 이 회사, 혹은 이 물건과 인연이라면 어떻게든 다시 엮이게 될 거고 아니라면 더 맞는 상대를 만나게 되겠지. 내 인연의 힘을 믿어보자, 라고 생각하면 상대에 집착하던 마음이 한결 수그러들면서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었다.
헤어진 대상에 대한 내 감정과 애착이 클수록 이 믿음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만약 그 친구와 내가 진짜 인연이 맞다면 앞으로 어떤 계기로든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원래 인연을 만들어가는 수 없이 많고 작은 우연들은 예측조차 하기 어려운 것들이니 지금은 너무 절망하지 말자고.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현재 상황을 우선 내려놓고, 인연의 힘에 맡긴 채 일단 나의 하루하루를 살아내보자며 믿음의 끈을 애써 붙들고 힘든 날들을 버티곤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이 인연에 대한 믿음을 회피하는데 쓰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거다. 지금 당장 마주할 용기가 없는 것들에 대해 '진짜 인연이라면 얽히게 될 자연스러운 계기가 생길 거야', '진짜 인연이라면 어떻게든 될 거야', 진짜 인연이라면.. 이렇게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과연 정말 그럴까. 여태 내가 만나게 되었던 인연들과도 그런 식으로 이루어졌던 걸까. 정말 사람들마다 모두 정해진 인연만으로 살아가는 것일까. 문득 내가 먼저 용기내어 보낸 카톡 하나, 어렵게 먼저 건네본 말 한마디로 가까워진 인연들과 생겨난 기회들이 떠올랐다.
알고 보니 피천득 선생님이 이런 말도 했었다더라.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 실상은 그도 마냥 수동적인 것만은 아니었다는 거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침대에만 누워있다가 아사꼬를 세 번이나 만나게 된 게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알고 마치 뒷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결국 내 스스로의 마음을 직면하고 용기있게 움직여야 진짜 인연과 마주할 기회라도 만들어진다는 것. 상대가 진짜 나의 인연이라는 걸 어떻게 알아보냐, 고 묻는다면 그저 나도 느낌에 따르는 수밖에 없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나의 인연이라는 느낌이 든다는 것은 일정 부분 인연으로 만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레 반영된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그런 느낌이 든다면 최대한으로 노력해봐야 나중에 후회를 덜 하지 않을까. 물론 쉽지 않다. 이게 사실은 보통 이상의 용기와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 걸 피천득 선생님도 알았기 때문에 '보통 사람'이라고 표현했을지도 모른다.
나 스스로부터 똑바로 마주할 용기를 갖자.
결국에는 내가 만들어가는 나의 인연이고, 인생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