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예주 [일러스트 에디션 제인 에어]를 읽고
" 제 주인은 오직 저 자신 뿐이에요.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동등한 인간이에요.
전 독립적인 의지를 가진 자유로운 인간이니, 이제 어디로든 갈 수 있어요"
-본문 중에서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외삼촌의 손에서 커오다 그마저 죽음에 이르자 외숙모는 친자식처럼 키워달라는 삼촌의 유언마저 무시한 채 철저히 제인을 무시해 버렸고 음산한 기운이 가득한 기숙학교로 보내버렸다.
그곳에서의 삶도 외숙모의 음모로 인해 거짓말쟁이로 낙인찍혀 감시의 대상이 되었고 힘겨운 나날을 보낼 때쯤 헬렌 번즈와 친구가 되었지만 전염병으로 인해 그녀마저 떠나게 되고 그 이후에 엄청난 수의 희생자로 기숙학교는 세간의 이목을 받으며 차츰 개선되어 갔다. 제인은 교사까지 지내다 현실에 만족할 수 없다며 광고를 내었고 손필드 저택 아델의 가정교사로 들어갔다. 그리고 로체스터에게 점점 빠져드는 자신을 보고는 세상 경험도 많고 집안도 좋은 남자가 철없는 고용인에게 마음이 있을 리가 없다며 그를 밀어내기 위한 부정문을 스스로에게 각인시켰다. 하지만 서로에게 끌림은 부인할 수 없었고 결혼식을 하던 날 과거 결혼 이력을 폭로하던 한 남자로 인해 불과 며칠 동안 행복했던 제인에서 다시 춥고 외로운 여인이 되어 로체스터를 떠난다. 어느 작고 아늑한 교회에서 지내며 시골 학교의 선생님으로 지내던 어느 날, 늦은 밤 찾아온 교회의 목사 세인트 존에 의해 자신이 친삼촌이 남긴 상당한 금액의 상속녀가 되었다고 한다. 드디어 자신도 자립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고 기뻐하던 순간 한시도 잊은 적 없던 로체스터 씨가 떠올라 손필드 저택으로 근황을 묻는 편지를 보내지만 소식이 없자 불안함에 휩싸여 한달음에 달려간다. 그녀의 눈앞에는 고풍스러운 저택이 아닌 시커멓게 불타버린 폐허의 잔해뿐이었고 사람이 살 수 있나 싶은 농장 안에 작은 집에서 장님이 된 에드워드 로체스터를 마주한다.
샬럿 브론테의 원작을 기반으로 일러스트레이터 작가의 시선에서 동화책이 주는 따뜻한 색감이 가득 담겼다. 고전을 읽고 싶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던 분들에게 직접 그린 그림 40장을 채워 넣어 마치 동화처럼 쉽고 재미있게 고전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고 작가는 글을 쓰게 된 배경을 밝혔다. 그래서인지 동글동글한 그림이 대두되어 마치 엄마품에 안겨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 편안함에 단숨에 읽혀 내려갔다.
모든 그림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비록 전부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지라도,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늘 흥미로워 그 순간만큼은 방해받지 않길 절실히 바랬던 제인 에어는 어두운 방 안으로 들이치는 한 줄기 빛이 누군가에게는 희망이라 느꼈겠지만 그녀에게는 저승에서 온 망령의 사자처럼 고통이었다 말할 만큼 책으로 소통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극도의 불안함에 휩싸이며 자랐지만 제인은 당당했다. 외숙모를 비롯한 사촌들에게 당했던 갖가지 수모와 미움, 기숙학교에서도 무시당하고 비난받으며 혼자 견뎌야 했던 외로움도 그녀는 굴복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어김없이 일어섰다.
친구 헬렌 번즈에게 외숙모의 악랄함을 토로하고 돌아온 대답은 분명 심하게 대한 건 맞지만, 그 사람이 한 행동을 너무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는 건 구박받았던 날들이 상처로 남아 그런 어두운 감정이 너를 휘두르도록 내버려 두지 말라며, 가슴에 원한을 품고 잘못을 곱씹으며 살아가기에 인생은 너무 짧다는 것이었다.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사회적인 요구와 주변의 기대, 가혹한 시련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제인 에어였기에 사랑도 그녀 편에서 운명이 판가름 나지 않았을까.
동화책의 끝은 이러했다.
그래서 공주와 왕자는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
오랜만에 느껴 보는 사랑 이야기에 설렘이 샘솟아 읽는 내내 애틋했다. 그리고 그녀가 끝까지 지켜내려 했던 동력의 힘이 안정적인 삶으로 연착할 수 있는 여정으로 이어졌던 여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사랑과 일을 다 잡은 제인 에어에게 푹 빠져보길 권한다.
예전 책이 두꺼워서 읽다가 멈춰 버린 기억이 있는데 다시 꺼내어 읽고 싶은 호기심이 일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