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60원입니다.”
나정이 우체국 직원이 가리키는 카드리더기에 카드를 꽂았다.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고 있을 계좌를 떠올리자 우편발송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느껴졌다. 그래도 어쨌든 오전 동안 열심히 퇴고해 작품을 제출하는 데 성공했기에 나정은 홀가분하게 우체국을 나서 집으로 향했다.
파란 대문을 지나 1층의 집들이 눈에 들어옴과 동시에 나정은 어제의 만남을 잠시 떠올렸다. 돌계단을 올라 집으로 돌아온 나정은 거실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 벽걸이 시계가 째깍거리는 소리만이 들렸다. 이내 방바닥에 놓여 있던 두꺼운 트레이닝복 상의를 걸치고 옥상으로 올라간 나정은 노을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웠다. 자신이 내뱉은 연기가 차가운 공기 속에서 흩어지는 걸 바라보던 중 주머니 속의 핸드폰이 울렸다. 엄마였다.
“어, 엄마. 왜?”
“왜는 무슨 왜야. 그냥 잘 있나 전화해 본 거지. 밥은 먹었어?”
몇 마디 안부를 주고받던 나정의 엄마가 본론을 꺼냈다.
“그런데 너, 지원서는 냈지? 입사지원서 말이야. 엄마가 저번에 내라고 한 것 말이야.”
나정이 심드렁한 목소리로 내지 않았다고 답하자 엄마의 언성이 높아졌다.
“그걸 왜 안 내. 되든 안 되는 일단 내 보라고 했잖아. 글은 직장에 다니면서 써도 되는 거야. 쓰려면 얼마든지 쓸 수 있지 않겠어? 뭐? 엄마가 괜히 그러니? 걱정이 돼서 그러지.”
엄마의 잔소리에 언제나처럼 통화가 말다툼이 되어가자 나정은 적당히 전화를 끊고 시린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계단을 내려갔다. 그런데 자신의 집 앞에 소영이 어제와 같은 차림을 하고 서 있었다.
“무슨 일이야? 열쇠 또 잃어버렸어?”
“저, 그게 아니고 아직 열쇠를 못 만들어서요. 죄송해요.”
“아냐, 아냐. 들어와.”
웃으며 도어록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나정이 들어가자 소영이 뒤를 따랐다. 나정이 불을 켜니 어두웠던 집안이 환해졌다.
“저녁은 먹었어?”
“예? 아뇨, 아직…”
나정이 거실 한 편에 놓인 2구짜리 인덕션 위의 찬장을 열고 라면을 두 개 꺼내며 물었다.
“라면 괜찮지?”
“네, 네.”
냄비에 물을 채워 인덕션 위에 올린 뒤 스위치를 켠 나정이 바닥에 앉아 있는 소영에게 물었다.
“엄마는 어제처럼 늦게 오시는 거야? 무슨 일 하시는지 물어봐도 돼?”
“그냥 회사에서 일하세요. 어제랑 비슷한 시간에 온대요. 감사해요, 언니.”
“감사는 무슨.”
손사래를 친 나정은 몇 마디 대화를 더 나누다가 라면을 끓인 냄비 손잡이를 행주로 잡고 뒤돌아 두리번거리며 급하게 외쳤다.
“상! 상!”
소영은 거실벽에 세워진 접이식 책상을 발견해 폈다. 그리고 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인 나무로 된 냄비받침대를 집어서 얼른 책상 가운데에 올렸다. 거기에는 얼룩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나정은 그 위에 냄비를 올린 뒤 그릇 두 개와 젓가락 두 쌍을 가져왔다. 그다음 그릇에 면을 담고 냄비를 기울여 국물을 부었다. 냄비벽을 타고 국물이 상 위로 흘러내렸다. 나정이 그릇을 소영에게 내밀었다.
“불기 전에 얼른 먹어.”
“잘 먹겠습니다.”
나정은 냄비에서 라면을 집어 남은 그릇에 덜다가, 깜빡했다고 웃으며 냉장고에서 신김치통을 꺼내와 열었다. 두 사람은 대화도 없이 허겁지겁 라면을 먹었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냄비에 남은 국물을 보고 나정이 말했다.
“찬밥이라도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네.”
“괜찮아요. 잘 먹었어요, 언니.”
인사를 마친 소영이 그릇을 들고 일어나려 하자 나정이 앉아 있으라고 말하며 그릇을 빼앗고 자리에 앉혔다. 나정은 주방 싱크대에 냄비와 그릇을 넣고 돌아왔다. 여기저기 둘러보던 소영이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