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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Sep 23. 2021

[소설] 타투를 지우며

  점심을 먹고 나서 우리는 미리 예약한 시간에 맞춰 타투샵에 방문했다. 대기하는 의자에 앉아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는데 친구가 대뜸 물었다.

  "그래서, 여자친구랑은 좀 어때? 지난번에 울면서 나한테 전화했었잖아."

  "야, 울지는 않았거든?”

  티가 났나? 울음을 완전히 그친 다음 전화할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다 알아. 안 울긴 뭘 안 울어, 인마. 그래서 헤어질 거야? 만난 지 얼마나 됐지?"

  "이미 헤어졌어. 만난 지 얼마나 됐더라… 한 1년쯤 됐던가?"

  그러니까 정확히 333일이 되던 날이었다.

  "그렇게 허무하게 헤어질 걸 왜 만날까?”

  “멍청아, 이별할 걸 알고 시작하는 사람이 어딨어. 네가 그렇게 어린애처럼 단순하니까 연애를 못 하는 거야.”

  “그렇게 울면서 힘들어할 거면 차라리 어린애이고 말지.”

  나는 반박하지 못했다. 이별할 때마다 나도 친구와 비슷한 생각을 하곤 했으니까.

  “결국 새 출발 하는 마음으로 여기 오신 거구만? 너 그전에 여자친구랑 헤어졌을 때도 그랬잖아.”

  “그런 거 아냐. 그냥 우연히 타이밍이 겹친 거야.”

  이 녀석은 예전부터 묘하게 감이 좋았다. 그렇게 빨리 알아차려줄 때가 도움이 될 때도, 아닐 때도 있다.

  “그래서 왜 헤어졌는데?”

  “…”

  “뭔데? 속시원히 말해봐.”

  “따지고 보면, 연애란 상대방의 이름을 자신의 몸에 새겨 넣는 타투와 같은 건지도 몰라. 지우지 않을 거라 기대하며 시작하지만 결국엔 수많은 사람들이 지운다는 점, 화려할수록 지우기도 어렵고, 아프고, 깨끗이 지워진다는 보장도 없다는 점, 그리고 이별의 대가가 더 비싸다는 점에서 말이야."

  '그리고, 그래 놓고 바보같이 또 새겨 넣는다는 점에서도 말이지.'

  물론, 적어도 타투는 지우고 싶을 때 맘대로 지울 수는 있지만.

  “갑자기 무슨 소리야?”

  어느새 준비가 끝난 모양이다. 의문부호를 달고 있는 친구를 뒤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우러 오신 거 맞죠?

  "네."

  “혹시 왜 지우려고 하시는 건지 물어봐도 돼요?”

  “처음엔 좋았는데, 정말 좋았는데… 이제는 마음에 안 들어서요.”

  “지난번처럼 또다시 새길 생각은 없으세요? 지울 때 미리 예약해 주시면 할인해드리는 이벤트를 하고 있거든요.”

  “아뇨. 괜찮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시작할게요. 아시겠지만, 조금 아플 거예요."

  예전처럼 아팠지만, 그래도 통증이 무뎌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쉽게 다시 새겨 넣지 않을 테니까. 쉽게 다시 시작하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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