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소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다 Oct 26. 2021

[소설] 빈 충고

  세 번이나 확인해 봤지만 분명 그의 수험번호는 합격자 명단에 없었다. 이것으로 6년째인 올해의 공무원 시험도 모두 불합격이다.

  “여기서는 공부가 잘 안 될 거다. 작은 아버지네 집 근처에 원룸을 구해줄 테니 그곳에서 공부를 해라.”

  화성시의 한 원룸 주택,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15만 원. 가족들이 함께 사는 집과 제법 번화한 편인 동네의 환경에서는 공부에 집중하기 어려울 거란 충고를 따라 이곳 원룸으로 거처를 옮겨왔다. 물론 그때는 6년 동안 여기에 살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의 부모님은 자신들이 먼저 접하고 깨달은 많은 경험과 지식들을 그에게 미리미리 전수하려 애를 써왔다.

  "친구란 믿을 만한 친구 한두 명이면 족하다. 친구를 많이 사귈 시간에 차라리 공부를 한 자라도 더 해라."

  "그렇게 행동하면 사람들이 가정교육이 잘못됐다면서 부모를 욕한단다. 그러지 말거라."

  물론 이러한 일련의 말들이 자신을 위하는 마음에서부터 나왔다는 건 틀림없었기에, 그는 부모님의 충고를 충실히 따랐다. 대학교에 진학할 때는 어땠을까?

  "겨우 그 정도 성적으로, 게다가 취업도 안 되는 과를 졸업해서 뭘 해 먹고살 수 있겠니? 빨리 다른 길을 준비해라. 좋아하는 것도 돈이 없으면 싫어지는 법이다."

  사실 이와 비슷한 말은 심지어 같은 과를 다니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자조적으로 들려오곤 했다.

  "솔직히 우리 과 나와봐야 돈 없으면 공무원 시험, 돈 많으면 카페나 차려야 돼. 준성 선배 알지? 학점도 나름 괜찮고 과대도 했었는데 아직도 취직 준비하고 있다잖아. 너도 일찍부터 준비해."

  가벼운 조언부터 무거운 충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종류의 말들이 그의 귀에, 일부는 가슴에 꽂혔다. 그리고 졸업이 다가올수록, 그 말들은 점차 조언보다는 충고에 가까워졌다. 조언으로는 말의 무게가 전해지지 않을 거라고들 생각했던 걸까? 그렇게 지속되어 온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그는 결국 충고를 받아들였다.

  어쨌든 충고대로, 처음에는 먹고살만한 직업을 가진다는 것 자체에 분명 메리트가 있을 것이라 여겼다. 하고 싶던 일, 이루고 싶던 꿈을 위한 발판을 마련한다는 생각으로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2년 안으로 시험에 합격하겠다는 계획은 이제 유명무실해졌고, 그러면서 인생의 계획 역시 함께 틀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시험의 합격은 발판이 아닌 목적이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오후 1시, 바깥 하늘은 맑았고 해가 중천에 떠 있을 시간이었지만 원룸 창문으로는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아 형광등을 켜지 않은 실내는 전체적으로 어두웠다. 그가 누워 있는 이부자리는 빨래할 때를 제외하면 언제나 바닥에 개지 않은 상태로 널브러져 있었는데,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기에는 최적의 환경이었다. 그러던 중 자신의 머리맡에서 울리는 진동소리에 누운 채로 바닥을 더듬어 핸드폰을 집어 들고 액정을 확인해 보니 어머니였다.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전화를 받았다.

  "아들, 밥 먹었어? 요새 날씨가 많이 더워졌는데 거긴 어때? 잘 지내지?"

  "먹었죠. 잘 지내요."

  "공부는 잘하고 있고? 시험은 잘 봤어? 결과는 나왔니?"

  "아직 안 나왔어요."

  예상됐던 질문이었기에 미리 생각했던 대로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그래? 시험도 끝났는데 금요일에 한 번 올라와. 얼굴 보고 같이 저녁이나 먹게."

  "...저녁이요?"

  "응, 괜찮지?"

  "알았어요."

  "그래, 그럼 언제지? 어머, 내일모레가 벌써 금요일이네. 집에서 네가 좋아하는 삼겹살이나 구워 먹자. 괜찮지?"

  "네, 그럼 그때 봐요."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며 그의 마음은 무거워졌다. 거짓말을 하기로 마음먹었던 건 미안함에서였을까, 혹은 부끄러움에서였을까, 아니면 가족들이 실망하게 되는 순간을 조금이라도 늦게 마주하고 싶은 마음에서였을까? 어쩌면 그 모두에 해당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떤 이유든 결국 시간을 버는 행위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거짓말을 선택했다는 건 그의 심정이 어떤 상태인지를 잘 나타내 주는 모습이기도 했다.

  버스와 지하철을 몇 번씩 갈아타는 긴 여정 끝에 오후 6시에 가족들이 살고 있는 서울의 집에 도착했다. 가급적 저녁시간에 맞춰서 오려고 했었는데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다. 지난 추석에 잠깐 들렀던 이후로 처음 들른 집이었다. 그렇게 오래 살아온 공간이었는데 이제는 낯설게 느껴지는 듯했다.

  “아들, 늦게 왔네?”

  어머니가 반갑게 웃으며 그를 맞아 주었다. 거실을 둘러보니 바닥에 깔려 있는 신문지 위로 휴대용 가스버너와 고기구이용 불판, 그리고 밥상 위에 올려져 있는 수저 네 쌍과 삼겹살이 담겨있는 듯한 검은색 비닐봉지가 눈에 띄었다.

  “벌써 준비를 해놓으셨어요?”

  “응, 네 아빠하고 규희도 금방 올 거야. 얼른 먼저 씻어.”

  “금요일인데 일찍 올 수 있대요?”

  규희는 그의 여동생이다. 어렸을 때부터 말썽도 잘 안 부리고 공부도 잘하더니,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의 대기업에 취업해 다니고 있는 중이었다.

  “아빠도 규희도 회사가 집이랑 가깝잖니. 금요일이어도 7시쯤이면 보통 도착해.”

  씻고 나와 자신의 방에 들어와 보니 수납함이 한편에 제법 많이 쌓여 있었다. 아들이 자주 오지 않아 공간이 아깝다고 가족들이 얼마 전부터 방을 창고 겸용으로도 이용하고 있던 터였다. 심란한 마음으로 침대에 누웠는데 오래 지나지 않아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다녀왔습니다.”

  “왔어?”

  “어, 오빠 와 있었네?”

  여동생은 그를 슬쩍 보고 짧은 인사를 건네고는 자신의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와 화장실에 들어갔다. 곧 샤워기로 물을 트는 소리가 들렸다.

  시계를 보니 7시였다. 배고플 텐데 먼저 먹으라는 어머니의 말에 따라 가스버너 위에 불판을 올리고 불을 켰다. 그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더니 어머니가 집게와 가위를 가져오며 그에게 말했다.

  “엄마가 구울 테니 가서 먹어.”

  “아니에요, 제가 구울게요.”

  계속 자신의 역할을 고집하려는 어머니를 한사코 말리며 삼겹살을 달궈진 불판 위에 올리기 시작했다. 가족들에게 시험에 불합격했음을 알리는 장면을 상상했을 때, 상에 앉아 고기쌈을 먹고 있는 모습과 고기를 굽고 있는 모습 중 자신에게 어느 쪽이 더 나은 모습일까? 얼마나 차이가 있겠냐마는, 그 조금의 차이도 지금의 그에게는 소중했다.

  여동생이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현관문에서 소리가 들렸다. 자신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어, 왔니?”

  "다녀오셨어요."

  짤막한 인사 후 아버지는 바로 안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문이 닫힌 안방을 향해 얼른 씻고 나와 밥 먹으라고 작게 소리쳤다. 여동생은 배가 고팠는지 밥상 앞에 앉아 바로 밑반찬과 함께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아버지가 안방에서 나와 자리에 앉자 그는 채 다 익지도 않은 삼겹살을 가위로 자르며,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목을 가다듬고 아무렇지 않게 말을 꺼냈다.

  "시험, 떨어졌어요."

  "응?"

  "이번 공무원 시험도 떨어졌어요. 죄송해요."

  야속하게도 어머니가 되묻자 다시 한번 더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여동생이 말했다.

  "에구, 힘내 오빠. 다음에 잘 보면 되지."

  이후로 꽤 오랜 침묵이 이어졌다. 거실에는 삼겹살이 익어가는 소리, 가위질 소리, 젓가락을 놀리며 먹는 소리만 들렸다. 눈치를 보던 여동생이 TV를 켰다. 그리고 잠시 후 밥 한 숟가락을 뜨다 말고 아버지가 말했다.

  "작년에 말했던 것처럼 학원을 다녀라. 거기 생활은 이제 그만 접고 말이다."

  "그래, 학원이 나아. 아무래도 혼자서는 쉽지 않은 것 같으니 말이야."

  어머니도 한 마디 거들었다. 그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럴 바엔 준비를 하면서 처음부터 다녔다면 좋았을 걸 하는 후회가 들까 봐 두려웠다. 또한 이번에 불합격하면서 많이 사그라들긴 했지만, 분명 혼자만의 힘으로도 합격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래도 했던 게 있어서 이제 와서 학원에 다니기는 좀 아까울 것 같아요. 커트라인 점수를 보니까 큰 차이는 안 나기도 하고..."

  "그러다가 내년에도 안 되면 어떡하려고 그러냐? 다 널 위해 하는 말이다."

  자신의 말을 가로막는 아버지의 말에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지금까지 가족들이 비난 일색의 반응을 보였다면 자리를 박차 일어나고 싶어 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이 더 잘 알다시피, 가족들은 언제나처럼 그저 충고를 건넬 뿐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결국 그 충고를 받아들여야 할 것만 같은 상황에 체념하게 되는 것이었다.

  "...알았어요. 곧 정리하고 올라올게요."

  눈치 빠른 여동생이 TV 화면에 보이고 있는 연예인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에게 이제 자신이 고기를 굽겠다며 많이 못 먹었을 텐데 가서 먹으라고 말했다. 아버지 역시 상 가까이 와서 먹으라고 말하며 자리를 옆으로 살짝 비켜줬다. 그래도 제법 괜찮은 분위기에서 식사가 끝났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난 그는 아직 잠들어 있는 부모님을 깨워 인사를 드리고는 바로 짐을 꾸려 화성시의 원룸으로 내려갔다. 적어도 지금은 집에 있고 싶지도, 집에 있을 이유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다시 이곳에 내려온 뒤로 약 일주일간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지냈다. 집으로 들어오면서 마트에서 식료품을 구입한 뒤 한 번도 밖으로 나가지 않았고, 핸드폰을 켜고 뭔가를 들여다보긴 했지만 그 행위에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고, 때로는 그런 행위를 했다는 사실조차 기억에 남지 않을 때도 있었다. 불규칙하게 잠들었다가 깨어났으며, 아무 때에 아무 곳에서나 밥을 먹었다. 메뉴는 라면 또는 즉석밥을 전자레인지로 데워 참치캔을 따서 함께 먹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렇게 무슨 요일이었는지도 모르던 어느 날 오후, 어제와 마찬가지로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진동이 울렸다. 어머니로부터 잘 내려갔냐는 안부 문자가 온 이후로 처음이었다. 액정에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알고 지낸 친한 친구의 이름이 표시되고 있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 이후로는 썩 자주 만나지 못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안부를 주고받으며 근황을 물어오던 친구였다. 그는 전화를 받았다.

  "어."

  "잘 지내냐? 별일 없고?"

  언제나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목소리를 유지하는 건 친구의 빼놓을 수 없는 특징 중 하나였다.

  "잘 있지, 뭐."

  "아직 화성에 있냐?"

  "어, 아직 화성에 살아."

  "나 거기 근처에 왔는데 있다가 잠깐 볼까?"

  "있다가? 나가기는 좀 그런데..."

  "그럼 내가 집으로 갈게. 어차피 볼 시간도 얼마 없으니까 귀찮게 나올 필요 없어. 약속이 갑자기 좀 늦어져서 시간이 붕 떴길래 연락해본 거니까."

  "그래. 그럼 그렇게 해. 주소는 알지?"

  다른 친구라면 그냥 못 만난다고 했을 텐데, 알고 지낸지도 워낙 오래되었던 데다가 이 집에 온 적도 몇 번 있어서 잠깐 와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에너지가 부족했을 뿐, 현재 겪고 있는 무기력한 악순환의 고리를 외부의 개입을 통해서라도 끊어내야 할 것 같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는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친구의 얼굴이 보고 싶기도 했다.

  통화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집 안을 대충 둘러봤다. 쌓여 있던 라면봉지와 즉석밥 용기 등이 눈에 띄었다. 모아서 현관 쪽으로 내놓은 후 이부자리를 한쪽으로 밀고 충전식 청소기를 켜서 바닥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지저분했던 내부가 그래도 그럭저럭 봐줄 만한 상태가 되었다.

  친구는 금방 도착했다.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리자 그는 현관문을 열었다. 빈 손으로 방문한 친구는 그와 짧은 인사를 주고받은 뒤 거침없이 집 안으로 들어서며 물었다.

  "얼마 전에 본 시험은 어떻게 됐냐?"

  "떨어졌어."

  "그래?"

  친구는 그 소식에도 사실 그런 건 별로 궁금하지도, 대수롭지도 않은 일이었다는 듯 표정에도, 목소리에도 변화가 없었다.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그를 바라보며 또 물었다.

  "뭐 하고 있었냐? 공부는 안 하고 있던 것 같은데?"

  "그냥 있었어. 요새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

  "요새? 얼마나 됐는데?"

  친구의 물음에 그는 시험 결과를 확인하고 집에 올라갔다가 내려와서 어떻게 지내고 있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학원에 가라는 부모님의 충고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무기력한 상태라는 것까지도.

  "너의 생각은 뭔데?"

  "모르겠어. 결국엔 학원에 가야겠지."

  그 대답에 그를 빤히 바라보던 친구가 다시 물었다.

  "학원에 가면 달라질까?"

  "그래도 지금과는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

  그의 막연한 대답에서는 별로 확신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친구 역시 그것을 눈치챈 듯했다.

  "공무원 시험을 계속 보고 싶긴 한 거야?"

  "글쎄..."

  "너 원래 하고 싶은 게 뭐였지?"

  "글쎄..."

  "우리가 알고 지낸 지 얼마나 됐지?"

  "뭐라고?"

  그는 친구의 뜬금없는 질문에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었다.

  "우리가 알고 지낸 지 얼마나 됐냐고."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니까... 벌써 15년 가까이 됐네?"

  "내가 너한테 뭔가 충고를 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음... 없었던 것 같은데?"

  말 그대로였다. 친구는 섬세하고 꼼꼼하게 신경 써서 배려해 주는 타입과는 영 거리가 멀었지만, 대신 그의 선택을 누구보다 존중해주던 친구였다. 대학에 진학할 때에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때에도, 그 어떤 결정에도 한마디 말조차 보탠 적이 없었다. 언제나 '그게 너의 선택이라면, 무엇이든 당연히 존중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나 충고 하나만 해도 되냐?"

  "그래."

  "그 어떤 선의에서 나온 친절한 충고라도 너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건 결국 충고가 아냐."

  "..."

  "그러니까 아무 충고나 무턱대고 받아들이지 마. 이게 내 충고야. 나 이제 간다. 건강히 잘 지내라."

  벌써 가냐는 그의 말에 친구는 말했지 않느냐고, 잠깐 시간 내서 얼굴이나 보러 온 거라고 말하며 다음에 또 보자는 인사를 남기며 현관문을 닫았다.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가 점차 멀어져 갔다. 현관문을 향해 멍하니 서 있던 그는 진동소리를 듣고는 바닥에 놓여 있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친구의 문자가 도착했다는 메시지였다. 그리고 거기에는 아무 내용도 적혀 있지 않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설] 수호천사는 날개를 달고 있지 않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