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활용되는 경우는 아마도 다음의 두 가지 경우가 아닌가 한다.
행위의 이유를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 그리고 알면서도 숨기는 경우.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는 이 단어의 사용자도 이유를 모르고 있으므로 일단 넘어가자. 하지만, 아마도 글을 읽고 나면 이유에 대해 나름대로 합리적인 추측을 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좀 더 흥미로운 건 나머지, 알면서도 숨기는 경우이다. 무슨 이유로 숨기는 걸까?
일단, 스스로 그 이유를 부끄럽다고 생각할 때 숨기려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 자신만의 이유는 있는데, 너무 사소하거나 바보 같은 이유라고 여겨져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하거나 무시당할 거라는 생각이 들 때.
아마도 여기에는 갑자기 뜬금없이 은행나무가 보고 싶어져 ‘그냥’ 은행나무가 심어진 길을 걸을 때, 내 손이 어디까지 닿을까 전봇대 따위 옆에서 팔을 들고 ‘그냥’ 점프해보다가 들켰을 때, 하지만 그 이유들을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지는 않을 때 등이 해당될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아마도 자신의 취향이 드러나는 것을 숨기고자 할 때일 것 같다. 분명 좋아서 선택한 것이지만,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타인이 모르길 바랄 때.
여기에는 서점에서 보편적이지 않은 취향의 책을 읽고 있다가 그 취향을 들키고 싶지 않은 친구가 오면 황급히 책을 내려놓으며 ‘그냥’ 제목이 특이해서 한 번 봤다고 대답할 때나, 좋아하는 이성에게 충동적으로 전화를 걸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왜 전화했는지 묻는 상대방에게 자신의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 얼떨결에 '그냥' 해봤다고 대답할 때 등이 해당될 것이다.
그런데 사실 전자는 후자에 포함된다고도 볼 수 있다. 따지고 보면 모두 ‘내가 하고 싶어서’, 그렇지만 ‘그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숨기고 싶어서’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다만 은행나무를 보러 가는 행위와 손이 어디에 닿을지 점프하는 행위가 그 사람의 취향에 해당할 정도로 좋아한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구분했을 뿐, 실상 '이 행위가 좋아서' 했고 그 이유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 '그냥'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는 거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추론이 사실이라면, 결국 그냥에는 '단어의 사용자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그 사용자의 진의가 포함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 그리고 그 진의란 단순하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나도 모르게 하게 됐어.'
'좋아서 했는데,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지는 않아.'
'좋아서 했지만, 이유는 숨기고 싶어.'
'얼마나' 좋아서 한 건지 알기 어려울 뿐, 어떤 행위든 결국 좋아서 했다는 거다.
아마도 당신이 '그냥'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상대방이 미묘하게 웃음 짓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진의를 들켰을지도 모른다. 그냥에 담긴 뜻은 생각보다 단순하니까.
나는 이 글을 왜 썼을까?
글쎄, 그냥 써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