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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Feb 07. 2021

그냥

그냥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활용되는 경우는 아마도 다음의 두 가지 경우가 아닌가 한다.


행위의 이유를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 그리고 알면서도 숨기는 경우.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는 이 단어의 사용자도 이유를 모르고 있으므로 일단 넘어가자. 하지만, 아마도 글을 읽고 나면 이유에 대해 나름대로 합리적인 추측을 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좀 더 흥미로운 건 나머지, 알면서도 숨기는 경우이다. 무슨 이유로 숨기는 걸까?


일단, 스스로  이유를 부끄럽다고 생각할  숨기려 할 수 있겠다 생각이 든다. 분명 자신만의 이유는 있는데, 너무 사소하거나 바보 같은 이유라고 여겨져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하거나 무시당할 거라는 생각이  .


아마도 여기에는 갑자기 뜬금없이 은행나무가 보고 싶어져 ‘그냥은행나무가 심어진 길을 걸을 ,  손이 어디까지 닿을까 전봇대 따위 옆에서 팔을 들고 ‘그냥점프해보다가 들켰을 , 하지만  이유들을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지는 않을  등이 해당될 것이다.


그리고  다른 이유는 아마도 자신의 취향이 드러나는 것을 숨기고자  때일  같다. 분명 좋아서 선택한 것이지만,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타인 모르길 바랄 .


여기에는 서점에서 보편적이지 않은 취향의 책을 읽고 있다가  취향을 들키고 싶지 않은 친구가 오면 황급히 책을 내려놓으며 ‘그냥제목이 특이해서   봤다고 대답할 때나, 좋아하는 이성에게 충동적으로 전화를 걸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전화했는지 묻는 상대방에게 자신의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 얼떨결에 '그냥' 해봤다고 대답할  등이 해당될 것이다.


그런데 사실 전자는 후자에 포함된다고도   있다. 따지고 보면 모두 ‘내가 하고 싶어서’, 그렇지만 ‘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숨기고 싶어서 해당되기 때문이다.


다만 은행나무를 보러 가는 행위와 손이 어디에 닿을지 점프하는 행위가  사람의 취향에 해당할 정도로 좋아한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구분했을 , 실상 ' 행위가 좋아서' 했고  이유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 '그냥'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는 거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추론이 사실이라면, 결국 그냥에는 '단어의 사용자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그 사용자의 진의가 포함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 그리고 그 진의란 단순하다.


'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나도 모르게 하게 됐어.'

'좋아서 했는데,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지는 않아.'

'좋아서 지만, 이유는 숨기고 싶어.'


'얼마나' 좋아서 한 건지 알기 어려울 뿐, 어떤 행위든 결국 좋아서 했다는 거다.


아마도 당신이 '그냥'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상대방이 미묘하게 웃음 짓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진의를 들켰을지도 모른다. 그냥에 담긴 뜻은 생각보다 단순하니까.


나는 글을  썼을?


글쎄, 그냥 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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