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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Dec 06. 2023

모든 삶의 마지막 장은 결국 허무하게 끝맺을까

어떻게 살든 어떤 성취를 얻든 삶의 끝이 허무함으로 귀결될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 무기력해질 때가 있다.


삶 자체가 고달프고 괴로웠으며, 심지어 죽음의 자리마저 편치 못한 이는 어떨까? 쉽게 단정 지어 말하기엔 조심스러운 부분이지만, 허무함이 크지 않을까? ‘이렇게 고통을 느끼기 위해 살아왔나’ 싶은 생각이 충분히 들 수 있을 것 같으니 말이다.


반대로, 삶의 대부분의 과정이 순탄하고 즐거웠으며 얻은 것도 많은 이는 어떨까? 행복한 삶이었으므로 만족하며 눈을 감을 수 있을까? 물론 마음먹기에 따라 충분히 그럴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죽으면 의미 없을 것들을 위해 살다가 결국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한다는 사실에 허무함을 느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 않을까?


조금 비약하여, 그래서 어떠한 삶이든 허무하게 느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 발상을 역전시킬 필요가 있다.


삶의 목적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죽는 순간의 생각이나 감정, 의미만을 위해’ 사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게 목적의 일부일 수는 있겠지만 전부일 수는 없다. 이를 위해서는 분명 다른 목적이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그 다른 목적을 위한 삶 속에서 수많은 의미를 느낀다. 어떤 이는 행복을, 어떤 이는 뿌듯함을 느낀다. 또 어떤 이는 쾌락을 느낀다. 단순히 허기를 달래기 위한 식탁 앞에서도 얼마든지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스쳐 지나가는 삶의 순간순간마저도, 감히 폄하해 표현하자면 그저 살아내기 위한 행위조차도 허무와는 거리가 멀다. 만일 매일이 허무하다 느끼고 있다면, 당장 뭐라도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먹으면서 삶의 작은 즐거움이라도 느껴야 한다. 그때 다시 삶을 영위하려는 모든 행위는 허무로부터 벗어난다.


즉, 우리는 죽음의 순간을 위해 사는 게 아니다. 삶의 순간을 위해 산다. 그래서 비록 죽음의 순간 허무함을 느끼게 될지라도, 그 사실이 삶의 허무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늘 하루가 허무하지 않다면, 혹은 내일 하루를 허무하게 보내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삶은 허무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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