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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제 전용석 Mar 25. 2024

참나는 무엇인가? 명상의 시간을 백배 천배 줄여주는 글


모두가 잘 알고 있다시피 현상적 진리의 세 가지 측면인

무상(無常) - anicca(아니짜)

고(苦) - dukkha(두카)

무아(無我) - anatta(아나따)

를 삼법인이라고 합니다.


이 중에서 무상의 번역이 가장 잘 되었지요.

무엇도 그대로인 것은 없고 형성된 것은 변화하고 소멸되므로 집착할만한 것이 없음을 나타냅니다.

두카는 흔히 괴로움이라고 하지만 원래의 의미는 불만족성임이 잘 알려져 있지요.


그런데 무아는 부처님이 무아라고 하신 적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무아라고 번역된 빨리어 anatta는 오온(존재, 몸과 마음)이 atta(산스크리트어로는 atman, 참나)가 아니다(접두어 an) 라는 뜻이죠. 빨리어 접두어 an을 아니다라고 번역하면 '오온은 참나가 아니다' 가 되고 '없다(無)' 라고 번역하더라도 '오온에는 참나가 없다' 라는 뜻이 됩니다. 


저도 처음에는 열반이면 완전히 무아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다 초기경전 읽던 중에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고 충격을 받았는데요.


형성되지 않은 (소멸되지도 않는) 불사의 세계가 있다.

- 붓다 (정확한 구절은 기록해두지 않아서 기억이 애매합니다만)


결국 이 불사의 세계가 참나인 atta(atman)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붓다께서는 어째서 참나를 찾으라고 하지 않고 오온은 atta가 아니다/없다 라고 하셨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감히 추측하건대

첫째는 사회문화적인 이유로 당시 힌두교 배경의 인도 사회에서는 atta를 찾아 전체(브라만)와 하나가 되는 범아일여 사상이 거의 진리처럼 받아들여지던 문화였지요. 존재 내에 참나가 있다고 여기기도 했고요. 그런 배경에서 참나가 무엇이다 라고 필설하는 것은 오히려 문제를 일으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둘째는 근본적으로 atta는 형성되기 이전의 무엇으로 (제가 쓴 비움과 치유의 근원에너지 책에서 설명처럼 동양에서 표현하는 도道) 언어도단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atta가 무엇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것은 atta가 아닌 것이 되는 셈이죠(노자 1장의 도가도 비상도).


우리가 흔히 말하는 현재의 불교는 붓다를 교주처럼? 내세우고 있지만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2,500년 이상을 지나면서 온갖 잡것들이 뒤섞여서 뒤죽박죽 되어있는 상태이지요.

예를 들어 어떤 스님과 종파에서는 '참나'를 찾아야 한다고 하고, 누구는 '참나'는 없다(무아)고 합니다.

혼란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본래의 가르침을 찾아서 스스로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고

온갖 종파의 다른 해설과 학설을 보며 혼란스러워하기 보다는 (아니면 이것을 믿었다가 저것을 믿었다가 하기보다) 스스로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 중심에는 부처님의 원음과 실제 행적이 담겨있는 초기경전을 직접 읽어가며 사유해보는 것이지요.


국내 빨리어 초기경전 한국어 해석의 양대 산맥은 전재성 박사(한국빠알리경전협회)와 각묵스님(초기불전연구원)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위에서 설명한 삼법인 중 셋째 항목인 anatta에 대한 해석이 실체없음(전재성)과 무아(각묵스님)로 각각 다릅니다.


전재성 박사는 위에 제가 설명한 부처님 본래 가르침을 기존의 편견없이 해석한 것으로 보이고, 각묵스님은 상좌불교와 기존 논장을 중심으로 하는 가르침 전통 속에서 보기 때문에 무아라고 번역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저는 전재성 박사의 anatta에 대해서 '실체없음'이라 번역한 쪽에 손을 들어주는 것이고요.

하지만 다른 번역의 차이에서는 얼마든지 또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바른 명상 수행의 과정이 원리원칙적으로는 탐진치를 완전히 비우면 된다는 것이기에 단순한 것일 수도 있지만 - 지능이 떨어지는 판타출라카 존자가 신발을 닦으며 흰 천이 더러워지는 것만을 보고 무상의 지혜를 깨달아 아라한이 되었듯이 - 상대적으로 머릿속이 복잡한 우리 범부들에게 갖추어져야 할 '바른 앎'이 필요하다는 면에서는 오히려 복잡하고 어려울 수 있는 것이지요.


결국 스스로 배우고 익혀서 사유하고 또 단순화해서 실천으로 적용해갈 수 밖에 없는 문제일 것입니다.


부처님 본래의 바른 가르침을 찾아서

팔정도 바른 길 위를 불방일 하여 걸으며

오늘도 한 걸음 힘내서 화이팅입니다!



- 明濟 전용석


한흐름 마음비움센터 I 한흐름 기명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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