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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제 전용석 Apr 19. 2024

존재의 소멸에 대하여


-니까야로 알려져있는 초기불교 경전을 보면 '존재의 소멸' 이라는 표현을 접하게 됩니다.


대학 다닐 때의 일이 떠오르네요.

저는 삶이 괴로움이라는 사성제 중 고성제의 관점을 깊이 체득하고 있어서인지 존재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에 대한 바람이 있었기에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리라고 여겼지요. 하지만 부분적으로는 깨달음에 대한 관심이 있던 친구조차도 (라마나 마하리쉬의 책을 읽고 울었다던 친구였는데요 ^^) 존재의 소멸은 무섭다고 표현하더군요.


이 '존재의 소멸'이라는 용어가 그 단어 하나 하나를 뜯어보면 별 것 아닌 듯이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은 참으로 고급 정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흔히 에고가 어쩌고 에고가 사라져야 한다 어쩌고 하는 말과도 일견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훨씬 더 깊은 내용이지요. 에고가 사라져야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의 열가지 장애 중 하나인 '유신견'에 해당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10분의 1에 해당되는 내용쯤 되겠지요. 하지만 유신견만 사라진다고 해서 그것이 곧 깨달음은 아닙니다 (여기서는 10가지 장애에 대해서는 생략합니다. 궁금한 분은 검색해보면 금방 나오니 참고하세요).


깨달음을 원한다는 수많은 중생들이 이것(존재의 소멸)을 몰라서 얼마나 헤매고들 있는지...


색수상행식 = 오온 = 존재

이중에서도 수와 상, 즉 상수멸이면 해탈!


혹은


탐진치가 존재를 굴러가게 하는 연료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탐진치 그 자체가 존재이기도 하므로

이것을 완전히 끊으면 또한 해탈이지요.

해탈이란 곧 괴로움의 완전한 종식!


머나먼 길이지만 바른 길 알고 보며 오늘도 한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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