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준비기간 약 반년 후 드디어 출발을 눈앞에 둔 찰나, 방심은 금물이라 했던가. 최악의 시나리오가 찾아왔다. 일일 확진자가 사오십만에 육박하던 2022년 3월, 두 줄을 받은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한다.
바이러스를 이해하기엔 인간은 아직 멀다
뉴스를 보며 마음을 졸이던 나이기에 출발 이주 전부터 외출을 자제했건만 이놈의 오미크론은 집순이의 방까지 찾아왔다. 여기까지야 그 시절엔 흔한 시나리오. 문제는 양성이 간단하지 않았다는 거다.
적어도 다섯 번은 음성이 나왔다. 매일매일 체크한 자가 키트와 병원 의사가 해 준 신속항원 검사에서마저도. 병원까지 찾아간 날은 가관이었다. 열은 38.8도를 찍고,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었다. 심지어는 한 걸음 옮길 때마다 기침, 콧물, 가래가 쏟아져 거리의 중생이 깜짝 놀라 나를 피했으니, 흡사 내가 모세가 된 기분. 그 와중에 검사는 뻔뻔하게 음성이었다. 그렇게 주말을 넘기고 나니, 가족에게까지 전파한 건 덤.
확진 후 10일을 넘겨야 하는 게 당시 공항의 규칙인지라 언제까지 음성이 나온단 보장도 없어 골머리를 앓던 찰나 아빠의 확진 소식이 날아왔다. 부녀 모두 다 나아가던 와중에 의아했지만, 다시 찾아간 같은 병원에서 그제야 양성이 나왔다.
사람 마음이 어찌나 간사한지. 그제야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일어나지도 않았던 일을 몇 번이고 걱정하며 대처방법을 고민한 나날이 무색하게 낮잠을 자고 하루 만에 계획을 안정 궤도에 올려놓은 것이다.
상황은 급변하고, 사람은
인생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코로나인 줄도 모르고 걸린 바이러스는 어찌저찌 기합으로 이겨냈고, 확진 완치자가 된 덕에 임의 검사와 입국 격리를 받을 필요가 없어져 버렸다. 삼사일 짜리 격리자용 숙소비가 굳은 데다가 임시숙소 주인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셈.
게다가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니 머리까지 맑아졌다. 이미 알뜰폰으로 전환한 휴대폰에는 국제전화 어플을 깔아 버벅대는 영어로 비행기 날짜를 변경하고, 집주인에게 숙소 변경 신청을 하고, 보험과 USIM 시작 기간을 바꾸고. 지금 생각하면 눈이 휘둥그레질 속도로 일을 처리했다. 그 결과, 비행기 변경 값 12만 원(-), 숙소 환불 값 35만 원(+), 그 사이 바뀐 휴대폰 요금제 월 4천 원(-), PCR확인서를 받지 않아도 되는 비용 10만 원(+).
사실 심각한 일이라도 된 양 호들갑을 떨었지만
이 일이 악재면 저 일이 호재고 그 일은 아무렇지도 않더라. 하나라도 수틀리면 어떡하지 싶었던 마음은 정작 놀랍도록 차분해져 일처리를 마치고 자기 전쯤엔 동생 닌텐도로 상점을 짓고 있었다. 심지어는 격리기간 동안 브런치 작가 인증까지 받아 매거진을 개설했으니,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수준이 아니라 처음부터 단추 없는 옷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새해 일출을 보러 가면 하필 그 새벽만 구름에 태양이 가리고 피자를 먹으러 가면 폐업 공지를 보던,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계속 이상한 곳에 내리던 나날이 계속되서일까. 삼재를 겪으며 웬만한 일은 그러려니 넘기게 되었고 이제는 내 삶이 바다에 둥둥 떠서 파도가 불면 부는 대로 떠다니는 뗏목 같다. 어지간한 일엔 면역이 생겼으니, 안 되겠다 싶으면 헤엄치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