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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더스 Oct 01. 2022

기념품 가게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구직과 렌트는 지역 사정에 따라 다르다. 대도시로 간다면 구직이 어려운 반면 렌트 사정은 더 나을지도 모르고, 소도시로 간다면 구직은 쉽지만 렌트가 힘들 수도 있다. 뭐, 지역 상관없이 둘 다 어렵기도 하다. 내가 이 작은 항구도시로 올 때는 일자리는 남아돌지만 방이 없다는 말로 설명이 다 되던 시기였다. 게다가 코로나로 준비기간이 열흘은 사라진 상황. 4월부터 혼자 힘으로 의식주를 해결하려던 초기 목표에 따라 일단 구직사이트와 한인 카페 등에 이력서 및 방문 연락을 돌렸다. 의외로 인연이 먼저 닿은 곳은 방이었고.


사흘 만에 살 곳을 정하고 돌아가는 길엔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문제는 구직에

어느 정도 아날로그적인 곳이니까, 빠른 연락을 노리거나 얼굴 좀 익힐 겸, 그리고... 워홀러의 로망인지라 한국에서 미리 이력서를 뽑아온 나는 도착하자마자 종이뭉치를 들고 시내로 나갔다. 예상보다 더 많은 가게에서 구인 공고를 붙여놓은 까닭에 흥분한 데다 심지어는 돌아다니며 예비 직장 후보군을 이리저리 재본 것도 사실이다. 적당히 외국인도 뽑아 줄 것 같은 대형 의류 매장 위주로 지원하던 와중에 한 기념품 가게가 보였다.


가게가 작아서 체력적 무리도 적겠다, 좁으니까 사람들과 말할 기회도 많이 찾아오겠다 싶었던 나는 들어가서 이력서를 내고 싶다고 했다. 뒤편에 딸린 작은 방으로 들어가니, 사장님이 정답게 웃고 계셨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대화.


"안녕하세요, 이력서를 내러 왔어요."

"으-흠. 좋아요, 영업 관련 경력이 있나요?"

"많은 활동을 하긴 했는데...(눈치)... 없어요."

"그렇군요. 반드시 경력이 필요한 건 아닙니다."


당연한 수순으로 왜 캐나다에 왔냐는 식의 대화가 시작됐다. 한국에서 귀에 박히도록 들은 질문인지라 은연중에 영어가 바로바로 튀어나왔다. "캐나다에서의 삶을 경험해보고 싶어요. 저는 도시에서만 자랐거든요." 그리고 다음 질문, "혼자 왔니?" 



한국이야 혈혈단신으로 떠나는 워홀러들의 사연이 차고 넘치지만, 막상 외국에서 먼저 물어보는 것은 인맥이다. '외국'으로 통칭되는 외부 유토피아의 공정성에 대한 우리의 맹신과 다르게 북미 지역은 공채가 거의 없고 지인제 추천이 주를 이룬다. 왜 그렇게 외향적인 사람들이 많은 것인지 이해할 만한 대목.


그러니 '네'라는 대답에 그녀가 놀랄 수밖에. 용감하다는 칭찬과 자기 딸의 뉴질랜드 워홀에 따라간 사연을 이야기하시며, 아무리 간단한 일을 맡게 되더라도 일 년 후엔 많은 것이 바뀔 거란 덕담에 나는 어느새 정에 약한 한국인이 되었다.


이윽고 풀타임이냐 파트타임이냐 하는 간단한 질문이 뒤따랐다. 당당히 9 to 6을 말한 내게 그녀는 당황했다. 한 철 사업이고 크루즈가 심야에 떠나는 일정상 밤에 일해야 한다는 말에 나는 너무 쉽게 단언했다. 안전 문제로 불가능할 것 같다니, 캐나다에서 가장 안전하다면 서러울 빅토리아의 치안을 몰랐으니 놓은 강짜. 아쉬워하던 그녀는 번호가 적힌 명함을 줬다. 마음이 바뀌면 찾아오라는 말과 함께.


짧은 대화 이후, 다시 구직활동을 재개했지만 어쩐지 그 일을 해야 할 것 같은 예감에 방을 구한 다음 날 문자를 보냈다. '마음을 바꿨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드리고 당신 가게의 분위기가 마음에 듭니다. 공석이 있다면 연락 주십시오...' 그러나 이 문자는 가지 못했다.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맛이 간 핸드폰 덕분에. 덕분에 망설이다 다시 가게를 들렀다. 하지만 돌아온 건 청천벽력 같은 대답.


"이걸 어쩌나... 저는 일을 주겠다고 한 게 아니에요. 그날 한 건 인터뷰가 아니라 대화였어요."



오해가 인연을 만들다

당황한 내 앞에서 사장님은 이력서 더미를 뒤졌다. 예닐곱 장짜리 종이 꾸러미에도 내 것은 없는 와중, 정리 안 된 책상에 내 이력서가 놓여 있었다.


"흠... 나는 한 번도 세일즈 경험이 없는 사람을 고용한 적 없어요."

"계산대 다룰 줄 알아요?"

"아시겠지만, 당신은 특수한 경우예요. 일본인, 중국인을 고용한 적은 있어도 보통 단체로 와서 커넥션이 있는 케이스였어요."

"그리고 도대체 왜 캐나다에 온 건가요?"    -"글을 쓰고 싶어서요."


마지막 말은 하도 들어서 눈물이 핑 돌았다. 대답을 하며 감정의 아주 깊숙한 곳까지 건드리려니 죽을 맛이었고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 솔직해 본 적도 없어서 괴로웠다. 

나는 변론을 시작했는데, 어쩌다 영어가 바로바로 튀어나왔는진 지금 생각해도 모른다.


저는 정말 빨리 배워요. 이력서의 활동은 대부분 제 전공이 아니에요. 마케팅 프로젝트를 한 적도 있어요. 협업이나 발표할 줄 알아요. 계산대, 알려주시면 배울게요. 모르면 유튜브를 찾아봐도 돼요. 말씀하신 웹사이트 작업도 스스로 배워서 할 수 있어요. 주변 정리도 잘해서 파일 정리를 맡기셔도 돼요. 그리고 단체로 온다고 했는데, 혼자 왔다는 건 모험심이 강하다는 뜻이에요. 더 좋을 수 있어요.


결국 그녀가 손을 들었다. 


"알겠어요, 당신이 절 고민하게 하네요. 남편과 상의해 볼게요."


이 기록적인 회담 이후, 가게 문을 나서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후련했다. 내가 그동안 면접을 싫어한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처럼 어렵고 두려워서라기보다는 끝 맛이 지나치게 씁쓸해서였다. 면접장을 나서면 갑작스러운 자아 탐구 시간이 찾아오며 마음이 가라앉는다. 시간을 들여 남의 입맛에 맞게 꾸미는 일이란 그런 것이라 생각해 왔다. 그런데 이번 만남은 오히려 에너지를 전부 소진해버려 삼월 날씨에 온 몸을 떨 지경이었다. 간절함 때문인지 급박함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배가 미친 듯이 고파서 자아든 뭐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는 것이다. 



배고픔은 순간의 환상에 불과했는지 시차와 오한에 시달리며 음식물을 위장에 밀어 넣는데 전화가 울렸다. 벌써 올 리가 없다며 덜덜 떨며 받으니 전화기 건너편에서 그런다. 밥 먹고 가게로 찾아와라, 일에 대해 이야기하자(We need to talk about your position.) 당연히 뜻을 아는 문장인데도 애써 낙관을 다스리려는 마음이 뒤섞여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문장 그대로 경험도 없는데 무슨 일 시킬까 의논하겠지,라고 생각하며.


도착하니 정작 사장님은 통화 중이셨다. 십여 분을 기다리자 드디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당신과 일하고 싶어요."

"오, 감사합니다."

"그래서 당신이 우리와 함께 일하는 것에 동의해주셨으면 해요."


다 말해놓고선 이 오묘한 어법이란.


당연히 예스를 외치니 뒤이어 나를 뽑은 이유가 따라왔다. '똑똑해 보이고 날 위해 열심히 일해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라...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 한편으론 큰일 났다는 자조. 그녀가 내게 원하는 건 의외로 간단했다. 첫 번째, 화폐 단위를 외울 것. 두 번째, 웃을 것. 


간... 단? 

지금 이 글을 보는 한국인들, 가슴에 손을 얹고 최근 몇 번 웃었나 생각해 보자. 동양인이 서양인에 비해 입꼬리 올리기 쉽지 않단 연구도 있다지만 다 제쳐놓고, 웃을 일이 그렇게 있었나 하는 상념에 잠긴다. 거울을 앞에 두고 입가 근육 올리기를 연습하고 있자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웃어야 하는 이유가 있어야 웃는 게 문제 아닐까 하고. 울거나 화내는 상황 말고 평상시 표정은 내 자유 아닌가. 나는 거울 보기를 그만하고 일단 밀린 잠에 들었다. 사장님이 마지막으로 한 말을 적고 이 글을 마친다.


"이봐, 너는 지금 빅토리아에 있잖아! 마음이 더 가벼워질 필요가 있어. 일을 열심히 하는 것보다는 즐기면서 하는 게 도움이 될 거야. 명심해, 즐기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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