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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는 것도 거짓말의 일종이다.
-존 르 카레,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말하지 않은 것
말하지 않은 게 거짓말인지 확답은 못 주겠지만, 말할 수 있었다면 거짓말이고 말하지 못했다면 거짓말이 아니라고 하겠다. 아무래도 나를 변호해야 하니까. 1년을 타지에서 살며 때로는 성실하게, 때로는 느슨하게 올리던 글은 선택과 집중의 원칙하에 따라 작성되었으면서도 사실은 자잘한 실패와 좌절을 지워갔다. 이는 내 에세이의 애매한 입장 때문으로, 체험이라기엔 극적인 엔딩이 부족하고 자기계발서라기엔 딱히 성취한 것도 없으면서 그렇다고 아무도 못 할 경험을 선사하지도 못해서 그럴 것이다. 정말 세상은 넓고 특이한 한국인은 뭐 그리 많은지.
어쨌거나 갑자기 글을 쓰겠다고 떠난 캐나다 생활은 육개월간의 노동과 한 달의 여행과 나머지 사개월의 근근한 버티기로 끝났다. 이면에는 열쇠가 고장 나고 심야 구급차를 부르고 통신사시스템이 다운된 해프닝이 가득했지만, 그 이면을 또 열면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고 침대에서 나오기를 두려워하고 모임을 조직했다가 허무하게 끝내거나 매일매일 형광 츄리닝을 입고 도서관에 틀어박혔던 나 자신이 있을 것이다. 이유는 하나, 자소서에도 못 쓰는 이야기니까.
우리는 이미 자극에 절어 산다. 우울한 사람은 길에 차이고 유튜브는 엄청나게 성공한 사람과 쫄딱 망한 사람으로 가득하다. 워홀 노하우도 널렸고 워홀을 추천하지 않는 동영상도 널렸고 아무튼 모두 착실하게 인생의 에스컬레이터를-누군가는 계단이고 엘리베이터고 롤러코스터겠지만-내려가거나 올라가는데 1년을 갈았다가 결론적으론 이도 저도 아니게 됐다(순화된 표현)는 글을 뭐 하러 읽을까.
그럴 수도 있다
이야기가 구구절절해지면 나는 상상 속의 독자를 끌어온다. 그는 내게 말한다. “어쩌라고.”
그래, 어쩌라고. 열심히 살던 G도 갭라이프를 경고하는데 언제까지 머리가 꽃밭인 채로 살 수 있을까. 참고로 고백하지만 내 원대한 계획은 잘되지 않았다. 약 25만자에 달하는 회차는 도입부에 들어간 채 끝났고 연재 제의도, 관심도 받지 못하고 묻혔다. 돌이켜보면 올해 사오월까지 쓸 수 있었던 원동력이 어디서 나왔는지 신기할 정도다. 이제는 내가 G처럼 나 이후의 사람에게 말해야 할 판이다. “갭라이프가 되지 않게 해.”
그런데, 그럴 수도 있다.
내가 어떻게 작가의 꿈을 버렸는지 말해볼까. 이 지난한 이야기의 가장 흥미롭고 멍청한 부분일 테니 잘 듣길 바란다. 나는 친구의 손을 잡고 점을 보러 갔다. 그리고 그날 일 년을 매몰 비용으로 넘겨버리고 돌아왔다. 변명하자면 이미 갈림길에서 서 있던 상태였으니 너무 손가락질하진 마시길. 나는 포기의 명수도 아니고 포기하는 데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앞으로도 고시촌 도림천 냄새는 잊지 못할 것과 같은 이치로.
워킹홀리데이를 정의한다면 예측할 수 없는 삶을 고밀도로 농축한 기간이라고 할 것이다. 버스에서 내린 곳이 8차선 도로의 한가운데일 수 있고 온종일 걷도는 느낌을 365일 받더라도 뒷자리에서 내린 노숙자가 열쇠를 놓고 갔다며 날 불러세울 수도 있다. 그런 기간을 버티고 버텨서 거의 11개월을 넘기고 돌아왔으므로 처음부터 미련은 갖지 않기로 했다. 게다가 돌이켜보니 내가 원했던 건 특정한 직업이 되는 게 아니라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었다면, 그 작품 하나를 쓰는 데 반년간 아무 반응이 없어도 메시지 하나로 버틸 수 있었고 공모전에서 성과를 내지 못해도 내게 파일이 남아 있다면.
이제는 잠시 묻어도 되지 않을까. 나는 포기라는 단어가 성립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어딘가에서 중단할 뿐, 그 흔적은 이뤄지지 못한 상태로 영원히 존재하기는 해도 우리가 원했듯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공부하던 기간에 글을 쓰던 기간을 더하면 오랜 시간 도서관에 앉아도 멀쩡한 정신머리를 갖게 된다. 글을 계속 만져왔기 때문에 자소서도 답안지도 잘 구성할 수 있다. 혼자 살아보느라 덤덤해졌고 시험을 망쳐도 파일이 날아가도 또 길을 잃어도 다시 내 책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 지금쯤이면 감이 왔을까. 결국 나는 책상을 떠나 다시 책상 앞에 왔으니.
마지막 이야기로 찾아뵙겠다.